오래전 자살한 20대 남자의 유서

102 0 0 2025-10-22 21:08: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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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힘겨운 하루가 어서어서 지나가 

다시 어둠이건 다시 끝 없는 나락이건 

어째도 좋으니 다시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그저 하루를 버티는데 

그 하루는 너무도 길어서 

내일이 오기 까지 너무도 고통스럽게 나를 옥죈다. 


나는 비겁하고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심한 청춘이여서

더는 인생을 살아 낼 

그 무엇의 동기도 부여 받지 못했다.  

모든 삶은 핑계로 연명되었고 

모든 굴레는 남탓으로 굴러갔다.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까.... 

공장 말단으로 시작한 인생이니깐...... 

더는 이 인생이 나아지질 않을테니까.... 

이러해서 이러하고 저러해서 저러하니 

난 이러하고 저러하다. 

 
하느님은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탓이로소이다. 

가슴을 쿵쿵 치라 하셨지만 

남탓만이 가슴속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난한 것도 내 탓이고 한달 죽어라 벌어도 

집세 내고 동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그 와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도 갚아야하는... 

그래서 십원 한장 남지 않는 인생은 정녕 내탓이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없어 

그 내탓마저도 잃고야 말았지.  


양 어깨엔 중학교 3학년 짜리와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각각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내 무거웠으나 

그래도 고놈들이 내 웃음이었고 하루였음을

나는 문득 문득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

 
내 양 어깨의 그 두놈을 난 꼭 붙들어 매고 

놓지 않으려 힘을 주었고 악을 써댔지.  

나 없으면 이 어린 것들 인생은 

나보다 더 모질게 구겨져

다시는 깨끗하게 펴질 수나 있을까 생각하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나는 한대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하였는데

어째서 그 어린것들은 이런 나를 두고 먼저 떠났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하더니 

정녕 그리하여 나를 떠난 것인지

나는 그나마의 희망도 놓쳐버렸네.  

핑계와 남탓 뿐이던 인생에 올곧은 뿌리 두개가 사라지니

나는 더는 살 수가 없어 

또 어린것들 핑계를 대며 비굴한 인생을 파하네.


내가 9살 적 집을 나간 어머니가 보고싶소.

내 딱 스물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도 보고 싶소.

작년에 그리 허망하게 간 그 두놈도 보고싶소.   

보고 싶은 이들은 저세상에 천지고 

이 생엔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으니

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그만 가려고 하네.   

하늘에는 부디 가난도 귀천도 없이 

모두가 존귀하여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네.

스스로 끊어버리는 목숨이라 

나는 지옥행 입구로 곧장 불려 가겠지만

가기 전에 한번은 저 그리운 이들 보고나 가게 해달라 

마지막 간청일랑 드려야겠다.      

 
하루가 너무 길어 나는 그만 갑니다.  

어찌도 이리 하루가 긴지 살아내느라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그려.  


오래전 자살한 20대 남자의 유서 -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정희재 /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죽기 전에 새들은

날개가 처음 돋았던 시절을 기억했을까.

처음 비상을 할 때,

하늘을 우러르는 빛으로 솟아오르던

그 푸른 눈동자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후,

날개가 꺾여 파르르 떨리던 그 순간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있는 한,

죽음 역시 삶의 과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

태어난 새들은 어디서나 죽고 그러고 나면

다시 어린 새들이 태어나겠지.


흐린 이 가을날, 먼 곳 들판 한켠에서

엎드린 곤충들이 바싹바싹 말라가며 죽어가고 있고,

그 곁에 말갛게 씻은 참깨 같은 알들이 소복이 쌓여 있듯이....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의 진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 세상에 단 한 가지쯤은 변하지 않고

늘 거기 있어주는 게 한 가지쯤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진실이든

혹은 내 자신이든....


공지영 /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중에서



음악 :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 정태춘 박은옥
영상 : 영화 강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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