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가 낮추고 운영비 줄여
정가 대비 반값 이하로 낮춰
지방까지 난립 유통질서 교란
빙과업계 정찰제 무용지물로
여름철에만 반짝 운영하는 소자본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최근 서울·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까지 우후죽순 생겨나며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아이스크림 가격을 정가의 절반 이하로 후려쳐 빙과업계의 가격정찰제 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판매 품목도 과자, 젤리, 맥주 등으로 확대하며 편의점의 성수기 매출도 갉아먹고 있다. 무인점포들이 새롭게 출현한 유통 채널이라 유통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기존 업체들이 역차별 받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가 다주면 손해…가격정찰제 무색=빙과업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는 아이스크림 가격 정찰제다. 어떤 채널에서 구입하냐에 따라 아이스크림 가격이 다르다보니 소비자들의 불신도 커진 탓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슈퍼나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펼치는 할인 정책 때문에 정찰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신흥 강자로 등장하며 정찰제를 위협하고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24시간 종업원 없이 소비자가 직접 계산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매장으로, 최근에는 주요 상권 뿐아니라 거주지에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소재지 역시 서울·수도권 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가격은 보통 바 아이스크림은 300~400원, 쭈쭈바는 400~500원으로 시세보다 매우 저렴하다. 빙과업체로부터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도매가를 낮추고, 가게 운영비를 줄여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무인가게의 가격 정책 때문에 빙과업계의 가격정찰제 도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채널에 제품을 넣어야 하는 빙과업체는 사실상 ‘을’에 가깝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과자·라면과 달리 아이스크림은 쉽게 다른 업체의 제품으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빙과업체 관계자는 “할인 안 하고 정가 받자고 하면 ‘OO(업체명) 방빼!’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누가 나서겠냐”며 “일단 채널에 입점하는 게 중요하니 쉽지 않다”고 했다.
때문에 빙과업체가 수년째 정찰제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해도 실제 시행되는 제품 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빙그레는 지난 2018년 투게더와 엑설런트에 가격정찰제를 시행했고, 지난해 12월 붕어싸만코, 빵또아도 정찰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롯데제과는 셀렉션·조안나 등 총 5개 제품, 롯데푸드는 홈타입 제품과 모나카류 제품을 정찰제로 판매 중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경제에서 일물다가(한 재화 여러 가격)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지금처럼 소비자 기만 수준으로 가면 문제”라며 “채널에서 가격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빙과업체는 그 아이스크림 아니면 안 되는, 대체 불가한 상품을 내는데 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접거리 출점에 편의점 성수기 장사도 영향=무인가게는 빙과업계 뿐아니라 편의점 업계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무인가게들이 여름 한철 치고 빠지는 식으로 장사를 하면서 판매 품목도 과자, 젤리, 맥주 등의 품목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성수기 매출로 겨울 비수기를 견디는 편의점 영업의 특성 상 여름 매출이 부실한 편의점은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충남 당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은종성(37·남) 씨는 지난 3월 매장에서 60~70m 떨어진 곳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생긴 뒤 일 매출이 크게 줄어 걱정이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 5~6만원 가량 나오던 여름 아이스크림 매출이 올해 들어 20%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말만 아이스크림 할인점이지 세계 과자나 젤리 등 여러 품목을 다 파는 편의점”이라며 “이런 매장이 편의점 바로 옆에 들어오면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인가게가 편의점 주변에 자리를 잡고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인가게가 기존의 유통 규제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의 경우 매장 간 과당 경쟁을 막고자 지난 2018년 12월부터 편의점 50~100m 이내에 다른 편의점 출점을 지양하는 근접 출점 제한 자율 규약이 시행 중이다. 하지만 무인가게는 아이스크림 뿐 아니라 음료, 과자 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다수 판매하는데도 이 규제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런 할인점이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지방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홍성길 편의점협의회 사무국장은 “(무인가게라는)비정상적인 유통구조 때문에 소비자의 가격 신뢰가 깨지고 다른 소매업체와의 갈등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빛나·박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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