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는 강' 김소현이 왕위 오른다면 역사왜곡일까 아닐까
TV삼분지계 입력 2021. 02. 17. 14:05 수정 2021. 02. 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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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는 강', 평강은 과연 태왕이 될 수 있을까
'달이 뜨는 강', 킹메이커 평강공주의 서사에서 풍기는 익숙한 향기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방영 전부터 여러모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었다. 김소현과 지수라는 두 청춘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퓨전 멜로 사극이란 점도, 실로 오랜만에 고구려를 배경으로 삼은 규모 있는 사극이란 점도 세간의 기대를 모으는 요소였다. 직전에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이 확보해 둔 높은 시청률이나, 선공개된 대규모 전투씬의 규모, <개와 늑대의 시간>, <불야성>, <99억의 여자> 등을 집필한 한지훈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도 모두 <달이 뜨는 강>의 쾌조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본 뒤에도 그 기대가 유효할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에게 첫 주 방영분을 어떻게 봤는지 물어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2회에 가서 풀리긴 했지만 1회의 불친절함이 아쉬웠다고 말하며, 팩션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니 결국 평강이 '킹메이커' 역할만 하고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남지우 평론가는 "정체성으로 꿈을 좌절시키려는 세력에도 주인공은 종국에 꿈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현대극의 정신"이라는 말과 함께, 실사영화판 <알라딘>과 사실상 동일한 서사 구조인 <달이 뜨는 강> 이 실제 역사와는 달리 평강이 태왕이 되는 결말이길 바란다는 기대를 비췄다. 킹메이커냐, 스스로 왕이 되느냐를 두고 두 평론가의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이승한 평론가는 <달이 뜨는 강>이 서사의 기반이 될 기본 설정들을 죄다 클리셰로 대체하고는 익숙한 <선덕여왕> 덕만이 서사로 달려가는 탓에 좀처럼 감정이입을 할 구석이 없다며 기본적인 만듦새를 지적했다.
◆ 결국엔 '킹메이커 평강'의 성장기 아닌가?
KBS 사극 <달이 뜨는 강> 1회는 적지 아니 불친절했다. 등장인물도 20부작치고는 많은 편인데다가 익숙지 않은 고구려 호칭이며 지명,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구성이 몰입을 방해했다. 배우 김소현이 연왕후와 그의 딸 평강 공주, 1인 2역임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면 드라마 도입부의 칼 잘 쓰는 김소현은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첫 회에 등장한 어린 온달은 철부지이긴 해도 '바보'는 분명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껏 온달을 바보로 알고 있었는데?
다행히 2회에 그 의문들이 풀린다. 8년 전 어머니 연왕후와 함께 죽었다고 알려진 평강이 실은 기억이 지워진 채 살수 '연가진'으로 길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온달(지수)은 '복수 같은 거 하지 말고 세상에 증오를 품지 말고 부디 필부로, 아니 바보로 살라'라는 아버지 온협 장군(강하늘)의 유언과 자신의 두 눈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온달의 안온한 삶을 간구하는 유모(황영희)로 인해 바보처럼 살게 된 것이고. 사람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평화주의자가 되어.
1회가 실타래가 엉킨 양 복잡했지만 그럼에도 마무리 장면 덕에 2회가 기다려졌다. 연가진을 향한 온달의 '나 너 알아. 나 너 안다구', 이 말 때문이다. 여느 드라마라면 적어도 5회 이상은 못 알아보지 싶은데 단박에 알아보네? 그러나 아뿔싸, 허무하게도 낚시질이었다. 마주한 순간 바로 연가진에게서 아내 연왕후를 발견한 이는 의외로 늘 술에 찌들어 살아가는 평원왕(김법래)이었다. 사랑, 참 무섭다. 어쨌거나 역사가 스포일러다. 팩션 드라마라 해도 엄연히 역사가 존재하니 '달'과 '강'이 바뀔 수는 없으리라. 결국은 킹메이커 평강의 성장기란 사실, 아쉬운 부분이다.
정석희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 마지막 화는 김소현의 태왕 즉위식일까
왕자를 찾기보단 자신이 직접 술탄이 되겠다는 자스민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왕국 역사상 여자 술탄은 없었단다." 뭐, 영화 <알라딘>(2019)의 배경인 아라비아 국가에선 너무 당연할 얘기라 이걸 굳이 대사로 공표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영화 극초반에 나오는 이 장면에서 아, 앞으로 술탄이 되는 건 자스민이겠구나 하는 결말을 예상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다. 정체성으로 꿈을 좌절시키려는 세력에도, 주인공은 종국에 꿈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현대극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인은 태왕이 될 수 없다는 게냐?"는 어린 평강의 대사는 참으로 빤했다. 첫 화부터 이 드라마의 결말을 봐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달이 뜨는 강>은 공주가 태왕이 되는 이야기로구나. 이를 두고 '고구려엔 여왕이 없었다', '역사 왜곡이다'라고 하지는 말길. 오랜만에 여자가 주인공인 진지한 사극이 나왔으니 한번 응원해주시길.
순행에 나서는 여자들. 딸 평강을 데리고 나서는 어미 연왕후의 모습에서 국가 지도자의 배우자 역할이 재편되는 시대를 보았다. 미국의 새 영부인 질 바이든은 역사상 최초로 '백악관 바깥'에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 부통령의 남편인 '세컨드 젠틀맨' 더글라스 엠호프는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아내를 내조한다. 때맞춰 한국에도 도착한 <달이 뜨는 강>은 1인 다역 김소현의 출중한 하드캐리로 첫 삽을 떴다. 사실상 동일한 이야기로 보이는 <알라딘>이 술탄이 된 자스민의 결혼식 장면을 마지막 장면으로 택했었다면, <달이 뜨는 강>의 최종장은 평강과 온달의 결혼이 아닌, 김소현의 태왕 즉위식이 되기를 바라본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 바쁘다 바빠 고대사회
<달이 뜨는 강>은 이래저래 낯익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백성을 걱정하는 임금과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귀족들의 대립, 어려서 의로운 부모를 잃고 과거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주인공들, 기억상실, 운명적인 사랑, 대규모 전투씬, 여기에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 영웅 서사.
드라마가 익숙하고 뻔한 길을 가는 게 늘 나쁜 일인 건 아니다. 빠른 속도로 기본 설정 설명을 끝내면 그 위에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자신들만의 서사를 펼쳐 보일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달이 뜨는 강>은 너무 뻔하다. 평원왕(김법래)과 귀족들 사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어린 연 황후(김소현)가 폐인이 된 평원왕 대신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온협(강하늘)이나 연 황후에게 정서적인 애착을 가질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숨가쁘게 달린 <달이 뜨는 강>은, 1회 중반만에 주인공들의 핵심 동기가 형성되는 아역 시기를 졸업해버린다.
서사의 기반이 될 기본 설정들에 대해 좀처럼 "왜"를 설명해주지 않는 <달이 뜨는 강>은, 그 대신 뻔한 클리셰들을 던지면서 시청자들이 알아서 양해해주기를 바란다. 흡사 "아시잖아요. 신하들은 나쁘고 왕은 어질고, 과거를 잊은 채 흙수저로 살아가던 공주가 다시 돌아와 나라를 정상국가로 만드는 전형적인 <선덕여왕> 덕만이 서사거든요. 이해하셨으면 진도 나갈게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그러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마간산 식으로 뻔한 설정만 훑고 가버리니,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드라마에 몰입해야 할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왕이 의처증을 앓았다는 이유 하나로 애먼 백성들을 베고 절에 불을 지르는 일이 가능한 왕정은 귀족정보다 정의로운가? 평강이 자신의 어머니를 베라는 명을 내린 평원왕에게 굳이 돌아가 왕권을 지켜내야 할 당위가 있는가? 이입할 구석을 주지 않으니, 보는 입장에서도 "그런가 보다. 다들 바쁘게 사네." 정도 이상의 감흥이 들지 않는다. 이거 저거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건 알겠는데, 일단 진정하고 숨을 좀 돌리는 건 어떨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사진, 영상=K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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