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계장... 유난히 클레임이 심했던 원청의 생산현장을 돌며 책임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뛰어다녔더니. 외근하는 이틀동안 4시간 남짓 잘 수밖에 없었다.
고작 몇시간 쪽잠을 자는데에 근처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애매해서 원청 현장 구석에 있는 당직실에서 잠을 청했던 것이다. 납품된 제품에 더이상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회사와 연락하는 동안 진땀으로 젖어있던 와이셔츠와 머리에선 딸래미가 그토록 싫어하던 중년 남성 특유의 카타르성 체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소원해진 가족들이 있는 집에 냄세나는 노숙자꼴을 보여선 안되겠지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 목에까지 비누칠을 하고 연거푸 세수를 한다.
간신히 일을 끝내고 난 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로 향했다.
김밥에 라면이라도 챙겨먹고 갈까 했지만 지갑에 있는 만원짜리 하나가 천원짜리로 쪼개지는 것이 싫어 슈퍼에 손가는 데로 에이스 하나와 공복만 달래줄 우유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놈의 에이스 포장은 왜 그리 뜯기가 어렵던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수전증은 심해지고 이젠 서 있는 체로 과자 봉지 하나 뜯기도 이리 힘이든다.
좌석에 앉으면 그때 먹어야겠지 생각하며 에이스와 우유를 한손에, 다른 손엔 손잡이가 땀으로 축축해진 가방을 쥐고 노란 안전선 밖에 우두커니 서서 어두운 터널 너머로 빛이 나타나길 멀거니 기다리고 기다렸다.
주머니 속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진동에 확인을 해보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들었다.
노는 손이 없어 어차피 휴대폰을 꺼내기도 번거롭다. 회사의 일은 이미 해결이 됐고 문제가 있다면 전화가 올 것이다. 몇 년 동안 동창회 한번 간적 없는 나로서는 친구에게 문자가 올 일도 없다.
가족....그래 가족이라면 문자를 보내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모든 세월을 통틀어 내게 가족이 먼저 연락을 보내오는 경우는 없다.
지금의 경우라도 그런 작은 반전은 기대할 수 없겠지... 그리곤 이 문자를 보내온 사람이 김미영 팀장일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휴대폰으로부터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전차가 도착하고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원들이 무수하게 나의 어깨를 스치고 부딪혀 지나간다.
그 와중에도 우유를 쥔 한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그곳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시원한 냉기를 느끼고 있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작은 혼란 속에서 나는 빈자리 하나를 발견했다.
본능으로부터 이끌리는 몸은 그대로 빈 자리에 쓰러지듯이 엉덩이를 떨어뜨린다.
뒤에서 한 소녀가 작게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도 이자리를 보고 앉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던듯 싶다.
괜스레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기도 민망하기도 하고 죄지은 건 없어도 왠지 당당하지 못한 마음에 고개가 들리지는 않는다. 순전히 허기에 이력이난 몸은 눈 앞에 있는 과자봉지를 뜯어내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냉장실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유는 이미 이 지하철 안의 모든 것과 다름없이 미지근해졌다. 어둠을 가르는 열차의 전조등이 지나가도. 금방 어둠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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