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제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오전 시간대 역시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른 투숙객들도 식사하러 이곳에 내려온 모양···.
'오늘 아침은 뭘 먹게 되려나?'
이곳은 메뉴 같은 게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에 들뜬 채 주방 쪽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여기 인기가 많은 곳인가 보네···."
엔비가 주윌 두리번거렸다.
'······.'
음식들이 서빙 카트 위에 올려져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왼쪽 첫 번째 줄부터 가로로 하나, 둘씩 차례대로 진열되어 갔다. 그러다가 우리 상에도 음식이 올라왔다. 그런데 뭔가 좀 생소했다. 왜냐면 이것은 그간 접해왔던 것들과는 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나는 상 위에 올라온 정체불명의 음식을 바라보며, 고갤 갸우뚱했다.
'······.'
음식들...
(감자, 양파, 버섯, 당근 등... 여러 건더기가 둥둥 떠 있는 황갈색 국물... 검고, 작은 깨가 위에 살짝 뿌려진 소량의 둥근 라이스... 촉촉한 옥수수 식빵...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바비큐 치킨... 신선한 샐러드... 키위 드레싱...)
'······.'
나는 황갈색 국물의 냄새를 한번 맡아봤다.
'······.'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
"이게 뭐죠?"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카레···."
그녀가 날 보며 대답했다.
"그럼 이거는요?"
"난···."
이후 우린 식사를 시작했다.
'······.'
"이거 맛있는데?"
엔비가 음식을 우물우물 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나는 카레에 라이스를 비벼 먹으며 대답했다.
"손님···."
한 청년이 내게 얘길 걸었다.
'······.'
청록색 짧은 머리카락과 눈썹과 눈동자...
(머리카락은 단정한 올백 머리이다.)
작고, 둥근 얼굴...
(눈썹은 진하다. 눈은 느끼하다. 코는 오뚝하다. 덩치는 마른 편이다. 피부는 황색이다.)
하얀색 반소매 와이셔츠, 노란색 나비 리본 넥타이, 검은색 조끼와 긴 바지...
'······.'
귀공자 같이 생긴 외모의 잘 생긴 청년··· 그는 이곳의 홀 서빙 직원 중 한 명이다.
"네?"
나는 음식을 우물우물 거리며 대답했다.
"식후 잠깐 좀 뵐 수 있을까요?"
'뭐지?'
난 음식을 우물우물 거리며 그를 바라보다가 뭔 진 모르겠지만, 일단 수락했다.
'······.'
식사가 끝난 뒤, 엔비는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아까 그 직원을 따라 주방 쪽으로 향했다.
'······.'
천장... 조명... 환기구... 벽... 바닥...
(천장, 벽, 바닥은 전부 타일이고, 하얀색이다. 조명은 동그란 LED이다. 환기구는 천장 여기저기에 매달려 돌아가고 있다.)
렌지... 튀김기... 오븐...
(레인지는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두 종류이다. 가스레인지는 일자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그 위에는 원형 자물쇠, 쇠로 된 국자가 올라가 있고, 내가 아까 먹었던 카레가 조금 남아 있었다.)
테이블... 밥솥... 냉장고...
(테이블은 2단, 3단 두 종류가 있다. 2단 맨 위에는 큰 통과 밥솥이 올라가 있고, 그 밑엔 이런저런 그릇들이 종류별로 쌓여있다. 3단은 세로로 나란히 2개가 붙어있다. 1 층에는 채로 된 것들... 2 층에는 프라이팬, 냄비... 3 층에는 국자, 뒤집기, 젓가락, 칼 등이 원형 자물쇠 안에 종류별로 꽂혀 있었고, 주방 도구는 다 이곳에 있다. 냉장고는 세로로 길쭉하고, 2단이고, 위, 아래 다 정사각형이다.)
싱크대... 개수대... 식기 세척기...
'······.'
∏ 이런 식의 구도... 오른쪽은 가스 렌지, 튀김기, 전자 렌지, 오븐... 건너편은 싱크대, 개수대, 식기 세척기... 왼쪽은 2단 테이블, 냉장고, 밥솥... 중앙은 3단 테이블, 조리 기구...
'······.'
이곳은 전체적으로 아담한 듯하면서도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으며, 구조가 꽤 간단했다.
'······.'
하얀색 두건과 가운... 검은색 긴 바지... 할머니 한 분과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성...
(둘 다 같은 의상을 입고 있다. 할머니는 현재 중앙에서 식칼을 들고 이런저런 재료를 다듬고 있다.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성은 설거지하고 있다.)
'······.'
"고생들 하십니다."
사내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려, 너도..."
할머니가 그를 보며 대답했다.
"레온이구나?"
아줌마가 그를 보며 말했다.
"처음 보는 아가씨네? 그새 또 여자친구를···."
"그런 거 아닙니다, 사모님···."
레온이 아줌마의 말을 자른 뒤,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가씨? 여자친구??'
나는 고갤 갸우뚱거렸다.
"이쪽으로···."
그가 어딘갈 가리켰다. 그곳엔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
문을 열자, 색다른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눈 앞에... 웬 정원이 보였다. 나는 정원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
천장... 조명... 바닥... 벽... 창문...
(천장은 하얀색이다. 조명은 큰 샹들리에가 하나 매달려 있다. 바닥은 갈색 벽돌이다. 벽은 온통 수풀로 뒤덮여 있다. 창문은 커다랗고, 살짝 열려있고, 둥근 모양이다. ←, ↖, ↗, →. 방향으로 벽에 매달려 있다.)
분수대... 화분...
(분수대는 동그랗고, 테두리는 하얗고, 은빛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금빛 전구 장식이 맨 위에 매달려 있고, 3단이다. 이것은 정원 중앙 부근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맨 위에서부터 물이 졸졸졸 밑으로 타고, 흘러내려 갔다. 화분은 분수대 테두리 쪽에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다.)
울타리... 꽃...
(울타리는 하얀색이다. 왼쪽부터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꽃들이 각각 4분의 1씩 그 안에 피어 자리 잡고 있고, 분수대 건너편에 있다.)
수도꼭지... 호스... 바가지... 분무기...
'······.'
∩ 모양의 내부... 이리저리 유유히 날아다니는 형형색색의 나비들...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꽃내음... 이곳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향기롭고, 눈 부시고, 운치 있고, 넓었다.
'······.'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이요?"
"네, 아름다운 아가씨···."
'아가씨?'
아까도 이런 얘길 들었던 것 같은데···.
"전···."
"실례··· 제 이름을 먼저 알려 드렸어야 했는데, 당신의 장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에 넋이 나가 버려서 저도 모르게 무례를 범한 것 같군요··· 그 점 사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레온이라고 합니다···."
'아까 들었다, 이놈아···.'
"아가씨의 이름은 어찌 되시는지요?"
그가 내게 느끼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 숙소에 가서 쉬고 싶었다.
"잭이에요..."
"잭···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가? 당신의 대서양과도 같은 깊고 푸른 눈망울만 봐도 그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얘 왜 이러니?'
난감했다.
"당신은 어째서 절 이렇게 고달프게 만드시는 겁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당신을 만난 뒤로 전 잠 한숨 편히 들지 못한 채 하루하루 끙끙 앓으며, 공허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마치 가슴 속에 거대한 구멍이 난 것처럼요···."
'······.'
"제가 뭘 잘못한 지는 모르겠지만, 아프게 했다면 미안해요···."
"당신은 아무런 잘못 없습니다. 단지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고결하고, 위대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마치 신성의 빛처럼 눈 부시게 빛나기에, 저처럼 보잘것없는 이들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볼품이 없어지고, 나약해질 뿐이지요. 그래서 너무나도 우울하고, 슬픕니다. 제가 이것밖에 안 되고, 못 한다는 좌절감에··· 너무나도 질투가 납니다. 원래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게 인간들이지만, 흠조차도 잡을 게 하나 없는 당신... 그리고 그런 당신이란 빛에 그만 눈이 멀어 버린 이 어린양··· 신이시여! 전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
'어쩔···.'
"그래서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까요?"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런 부족하고 모자란 저이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최고의 상대가 되기 위해 밤낮 할 것 없이 항상 온 힘을 다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가 내게 무릎을 꿇고 고백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벼락이 내리쳤다.
'······.'
"미안해요. 그럴 수 없어요···."
나는 그의 고백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내가 고백해서 차이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그가 현실을 부정했다.
"잭 아가씨... 수줍어하지 않으셔도 되니 다시 한 번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
"그럴 수 없어요."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대답했다.
'······.'
대륙에 위치한 여러 연방들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공화국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이후 50개의 흰색 별이 그려진 성조기가 찢겨져 나간 뒤, 서아시아 일대에서 핵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레온은 하얗게 불탄 모습으로 변했다.
'······.'
"왜 안 넘어오는 거지? 지금까진 백 발 백중이었는데··· 멍청한 여자들은 내 얼굴만 봐도 금세 다 헤벌레 해 지던데 어째서···."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
"이런 앙큼쟁이 같으니라고··· 아가씨, 나 같은 상대는 천 년, 만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상대라고? 아니면 혹시 내가 너무 잘 생기고, 잘 빠지고, 잘 나서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야? 그렇지? 그런 거지? 그래서 지금 그렇게 내숭 떨고 있는 거지? 난 다 알고 있어... 여자들은 가식 빼면 시체니깐 말이야···."
그가 현실 부정을 넘어,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
한 섬나라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런 뒤, 그곳은 침몰돼 버렸다. 이후 레온은 하얗게 불탄 모습으로 변했다.
'······.'
"진짜 차인 거야? 내가 차였다고?"
"그런 것 같네요···."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리에 주저앉아 질질 짰다.
'아까 그냥 숙소로 갈 걸···.'
난감하고, 후회스러웠다.
"잭... 다음번에는 당신을 반드시 공략하고 말겠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
"엄마!!"
그가 꼴사납게 뛰쳐나갔다.
'······.'
'나, 남잔데···.'
나는 현장에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숙소로 향했다.
'······.'
"무슨 일이야?"
엔비가 침대 위에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난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나저나 카레 나중에도 또 먹어 보고 싶구만..."
엔비가 자리에 누운 뒤 말했다.
"그럼 나중에도 또 여기 와서 같이 먹자! 그때도 같은 음식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난 그의 옆에 앉아서 말했다.
"나올 때 까지 있으면 되지!"
"여기서 계속 지내려고?"
"그것도 나쁘진 않지... 네 생각엔 어때?"
엔비가 실실 쪼개며 물었다.
'······.'
"나쁘지 않을지도?"
"그렇다는데, 아가씬 어찌 생각하시나?"
엔비가 살짝 열린 문을 주시하며 말했다.
'······.'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붉은색 머리카락... 연두색 눈동자... 유니폼...
'······.'
그녀였다.
"실례합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런 것 가지고..."
엔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여긴 어쩐 일로?"
난 그녈 보며 물었다.
"이제 출발 준비해도 되나 물어보려고···."
"상관없어요."
"무슨 말이야?"
엔비가 날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엔비에겐 아직 아무런 얘기도 안 해 줬지···.'
"그게 뭐냐면···."
'······.'
나는 그에게 (목욕탕에서의 일은 제외)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뜻이 맞아서 함께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괜찮겠어? 이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여관 일은 어쩌려고 그래?"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허락이라면 이미 진작에 받아뒀고, 이래 봬도 튼튼한 편이니 아마 걸림돌이 되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그녀가 당차게 대답했다.
"그럼 됐지만···."
'······.'
그녀는 준비할 게 있다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우린 숙소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정말 괜찮겠어?"
엔비가 옆으로 누운 채 말했다.
"뭐가?"
"위험하지 않겠어? 우린 상관없을지 몰라도 그 여잔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이잖아? 괜히 데리고 갔다가 짐만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닐걸?'
내 기억 상으로는 그녀는 강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 오세요."
나는 방문을 보며 말했다.
'······.'
문이 열렸다. 그녀가 복장을 갈아입은 채 서 있었다.
'······.'
검은색 반소매 티... 노란색 조끼... 갈색 반바지... 조명이 달린 노란 헬맷... 고글... 곡괭이...
'······.'
"우린 지금 광산에 가는 게 아니라고!"
'······.'
"그랬군요!"
'······.'
"갑시다!"
재정비를 하고 온 그녀가 우릴 보며 말했다.
"이제 어찌 되도 난 모른다?"
엔비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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