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줘도 돌아오는건 기레기 비하, 너무 우울해"

213 0 0 2022-02-07 14:04: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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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앓는 기자들 “회사 적극 대응해달라”

기사 쓴 뒤 쏟아지는 적대적·위협적 악성 인신공격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기자들

노조, 특정 병원 지정해 비용 지원하는 한국일보 심리 지원 프로그램 사례 언급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 우울증 검사하자” 제안

기자 업무와 메일 등을 통한 인신공격으로 마음을 다쳐 우울증을 앓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많아지자, 노조가 회사 차원에서 기자들의 정신 건강을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김인원)은 일하며 마음을 다쳐 힘들어하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지난달 30일 노보를 발행했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단독과 마감 압박 등 업무적으로 힘들어 우울증 치료약을 먹거나 우울한 기분을 호소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적지 않다. 또 기사를 쓴 뒤 쏟아지는 갖가지 적대적·위협적 인신공격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기자들도 있다 .


노보는 한 조선일보 기자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운을 뗐다. 우울증 치료약을 먹고 있는 10년차 이상의 조선일보 A기자는 “ 의욕이 안 생기고, 막상 쉬려고 하면 잠이 안 오고, 그러다 갑자기 낮에 정신이 꺼진 것처럼 잠이 쏟아져 고민하다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몇 달 됐다. 일하면서도 나 자신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 뒤로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때는 부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노조는 노보에서 “ 특별한 ‘사건’이 생긴 게 아니더라도 우울한 마음은 늘 조합원들 뒤를 쫓고 있다. 기자만큼 단독과 마감 압박, 번아웃 증후군 등 정신 건강 위험에 노출된 직업은 흔치 않다 ”고 했다.


조선일보의 B기자는 “ 매일 온라인 기사 처리 압박, 신문 기사 마감에 시달리면서 또 단독 없다고 한 소리라도 들은 날은 밤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급히 쓰다 보면 늘 실수를 한 건 아닐까 불안하고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옆에서 하는 것만 보면 선배들은 내가 ‘느리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등바등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주면 좋겠다 ”라고 호소했다.


조선일보의 C기자는 “ 너무 예민해지고 자존감이 무너져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신과 가기는 부담스러워 한의원에 가서 화병에 좋다는 약을 지어왔다 ”고 말했다. 5년차 미만의 조선일보 D기자는 “ 친한 선후배끼리 만나서 술을 먹다가 한 사람이 힘들다고 울음을 터뜨리니까 너도나도 다 울더라 ”고 토로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기사를 쓴 뒤 쏟아지는 갖가지 적대적·위협적 인신공격에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원을 찾기도 한다. 실제로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조선일보의 E기자가 회사에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자 돌아온 말은 “‘기자는 정신력으로 하는 일이다. 너무 그러면 며칠 쉬다 와도 된다’였다. 공감과 위로의 마음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한 마디 한 마디가 악플만큼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차장급의 F기자는 노조에 “ 기사를 쓰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후배들이 많다. 외부 세력은 이제 조직적으로 기자 개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회사가 과연 나를 도와줄지 지켜줄지 알 수 없고 회사에 배치된 법률 상담 인력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기자들이 노조를 찾아 “ 조합원들의 우울증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는 의견을 피력했다. 조합원들이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 영역’이 아닌 ‘회사 차원의 영역’에서 살펴주길 바랐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조선일보의 G기자는 “ 우울증으로 퇴사하고 휴직한 사례만 해도 수두룩하지 않느냐.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라고 쉬쉬하고 덮고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고 했다. 조선일보의 H기자도 “ 이 회사 구성원 대부분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들이 단지 개인적 이유 때문에 그런 어려움에 처했다고 치부할 수 없다 ”고 지적했다.


특정 병원을 지정해 비용을 지원하는 한국일보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조선일보도 적극적으로 기자들의 정신 건강에 신경을 써달라고 노조는 요청했다.


노조는 “ 실제로 타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 심리 지원에 나선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일보의 경우 악성 댓글이나 이메일, 재난 현장이나 강력 범죄 취재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구성원을 위한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특정 병원을 지정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회사가 가입한 단체보험(실손보험)을 통해 정신과 진료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긴 하지만, 실제 지원 사례는 극소수다 ”고 꼬집었다.


조선일보의 I기자는 “조합원 정신 건강을 살피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명확한 회사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회사 구성원을 상대로 최소 1년에 1번 이상은 우울증 검사도 받게 하는 식으로 적극적인 대책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X같이 생겼네” “가족 모두 죽길 바란다”…폭력에 노출된 기자들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과 디지털 괴롭힘’ 연구 

젠더‧대통령‧정파적 이슈 기사 쓸수록 괴롭힘 높아


“논란거리가 없을 만한 드라이한 기사에서도 ‘무식한 기레기’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경제지 기자)

“주로 이메일을 활용했고 익명이었습니다. ‘페미는 정신병이다’, ‘니가 쓰는 글은 쓰레기다’, ‘가족 모두 교통사고 나서 죽길 바란다’ 등이 기억납니다.”

“이 직업을 그만두기 싫지만, 한번 신상을 털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방송사 기자)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과 모욕은 다르다. 비판을 가장한 모욕은 기자들에게 ‘괴롭힘’으로 다가올 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7월21일부터 8월15일까지 404명의 기자(여성 200명, 남성 204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에 나선 결과 기자 이름을 부르며 모욕하는 경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신문사(78.4%)‧인터넷신문(78.8%)‧방송사(83.3%)‧뉴스통신사(89.2%) 등 기자 대다수에게 ‘일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찾아가서 혼내주겠다”, “난 네가 누군지 안다” 등의 위협성 발언 행위도 신문사(53.4%)‧방송사(51.5%)‧뉴스통신사(64.9%) 기자들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레기야”‧“기사를 발로 썼냐”처럼 모욕적‧공격적 언어 행위를 ‘일주일에 수차례’ 겪고 있다는 응답은 33.4%였으며 “X같이 생겼네”‧“놈”‧“년” 등이 섞여 명백하게 욕을 하는 경우도 ‘일주일에 수차례’ 겪고 있다는 응답은 10.4%로 나타났다. 언론재단은 이 같은 설문 결과와 기자 심층 면접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언론인과 디지털 괴롭힘’(박아란‧이나연)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괴롭힘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고 응답한 기사 주제는 정파적 이슈 50.7%, 젠더 이슈/페미니즘 48.3%, 대통령 관련 주제 47% 순이었다. 디지털 괴롭힘 원인에 대해서는 ‘기사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라는 평가에 88.3%가 동의했고, ‘근무하는 언론사를 싫어하기 때문에’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응답도 61.4%로 나타났다. ‘기사의 완성도/전문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비율은 14.1%에 그쳤다. 기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이 정당하지 않으며,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향되어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라는 기자에게서 더 높은 비율을 보인 디지털 괴롭힘 유형은 ‘명백하게 욕을 한 경우’(진보 77.8%, 보수 70.6%),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이 여러 기사에 댓글을 다는 등 스토킹처럼 느껴지는 행위’(진보 51.9%, 보수 43.5%) 등이었다. 반면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는 기자에게서 더 높은 비율을 보인 유형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대상으로 모욕이나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 행위’(진보 88.9%, 보수 93.8%)였다. 


‘성희롱적이거나 성차별적 발언’ 경험 빈도에서는 여성 기자의 76.5%가 ‘경험했다’고 답한 반면, 남성 기자는 40.2%만 ‘경험했다’고 답해 격차가 컸다. 한 달에 1회 이상 경험한다는 응답에서도 여성(40%)과 남성(17.2%)의 격차는 컸다. ‘기자의 외모에 대한 평가’로 디지털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도 여성 기자는 62.5%였던 반면 남성은 47.1%였다. ‘성적으로 당혹스러운 문자나 사진을 받았다’는 응답도 여성(12%)이 남성(8.8%)보다 높았다. 여성 기자들의 경우 입에 담기도 힘든 성적 욕설을 이메일로 받는데 그 정도가 범죄 수준이다. 


기자를 향한 디지털 괴롭힘이 주로 발생하는 경로는 1순위가 댓글(68.8%)이었으며, 1‧2‧3순위 합산 결과에선 댓글 92.8%, 이메일 74.3%, 특정사이트나 커뮤니티 63.6% 순이었다. 특정 기사 또는 기자를 ‘박제’하는 사이트와 관련해선 ‘박제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4.7%로 나타났는데 정치성향이 진보적인 경우 경험 비율이 72.2%로 보수(52.5%)보다 높았다. ‘박제가 기사 쓸 때 긍정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20.1%, ‘동의하지 않는다’ 49.2%로 부정 의견이 높았다. ‘기사가 박제될 만큼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79.2%로 압도적이었고 ‘동의한다’는 4.7%에 불과했다. 


‘소속 언론사에 디지털 괴롭힘이나 온라인 명예훼손 문제를 상담할 전문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는 응답은 15.8%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이번 보고서에서 “최근 1년 동안 경험한 디지털 괴롭힘의 정도는 이직 의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으며 “인터넷 폭력을 당한 언론인에 대해서는 치료 시스템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사들은 점차 조직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특정 문구나 단어가 포함된 이메일이 자동 수신 차단되도록 회사 메일 시스템을 개편해달라”는 등 사내 기자들의 ‘악성 외부 공격 대응’ 요구에 조만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경향신문은 회사 대표 신고계정을 마련하고 개별 기자들이 인신공격성 이메일을 받을 경우 전달(포워딩)하도록 했다. 악성 이메일 발신자에게 회사 차원의 1차 경고 이메일을 발송하고 모욕 수위가 심각하거나 반복될 경우 법적 조치에 들어가는 식이다.


앞서 한국기자협회는 지난해 9월 기자 신상 수집‧공개 사이트 ‘마이기레기닷컴’ 운영진을 고소한 바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기자들은 디지털 괴롭힘을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개인이 아니라 회사나 협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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