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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에서 조선측에 항왜인 출신 김충선(사야가)도 참전했다는거 처음알았습니다. 아마, 김경서의 지휘를 받아 움직였으리라 추측됩니다.(김경서가 항왜인들을 거느렸던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했었지요.)
이 전투에서 왜장 가등청정은 할복하기 직전까지 몰렸으나, 결국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데 성공하여 간신히 일본으로 돌아갔죠.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가등청정은 축성술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며, 울산에서 포로들을 엄청나게 끌고 갔는데 구마모토 성을 지은 조선인 포로들이었지요.
일본 3대 성 중 하나로 꼽히는 성인 구마모토 성은 임진왜란에서 귀환한 뒤인 1601년부터 개축하기 시작하여 1607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가등청정은 울산성 전투때 겪은 굶주림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 평소 도시락을 항상 싸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고, 성 내의 건물에 까는 다다미도 식용이 가능하도록 토란 줄기를 넣고 짜도록 했으며 성벽에는 조롱박을 기르도록 도배를 해버리고 성 안의 우물은 무려 120개나 팠다고 합니다.
여러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전투.. 빈사직전까지 몰아넣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