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스압] 치질 수술 후기

143 0 0 2023-02-26 07:0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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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2년 간 부끄럽다는 핑계로 참고 버텨왔지만 마취크림으로도 통증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급히 휴가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 접수를 하는 동안 마취크림의 효과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고 앉아서 기다려달라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나도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최대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며 차마 자리에는 앉지 못하고 서성이던 중 CPH 시술 팜플렛이 보였다

당일 수술과 퇴원이 가능하다니?!

심지어 다음 날 부터 일상생활도 가능하고 통증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어서 마치 동아줄을 내려받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호명되었고 마취크림의 효과가 거의 다 떨어진 상태이다보니 바지에 똥지린 사람처럼 어기적 거리면서 진료실로 향했다

진료실 한 켠에는 가림막이 쳐져있는 침대가 있었고 예상대로 그 곳에 누우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벽을보고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린 뒤 기다리라고 하는데 진짜 너무 아파서 벗겨달라고 하고싶었다

잠시 후 들어온 의사 선생님은 가림막을 걷자마자 


‘어이쿠?! 아니 엄청 아프셨을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어휴.. 이거.. 어우..‘


라고 운을 떼며 진찰을 시작하셨다

당연하지만 수술 말고는 답이 없는 상태라는 결과를 듣게되었고 당장 다음 날 오전으로 수술이 잡혔다

(당시 내 상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구글에서 치질4기 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그 어떤 이미지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간단한 짐이라도 싸와야하니 일단 귀가를 했고 입원 전 까지는 ’좌욕-마취크림 도포-30분 정도 수면‘ 을 반복했다


다음 날.. 입원 수속을 마치자마자 관장을하고 수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을 들었다

CPH라는 시술로 일단 직장의 치핵 덩어리들을 잘라내고 봉합할텐데 내 경우에는 완벽히 제거되지 않을 확률이 100% 라고 하더라

이어지는 설명은 똥참느라 머릿속이 하얘져서 기억이 잘 안난다


장을 비우고 한 20분 쯤 흘렀을까

수술실로 이동하자고해서 내 발로 걸어서 들어갔다

도착해서 본 수술대는 마치 ‘큰 대’ 모양이었으며 

알아서 엎드릴 수 있을 정도로 인체공학적이더라

간호사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엎드렸고

수술이 빨리 끝나서 이 지옥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마취를 시작하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나.. 둘.. 셋... 이내 정신이 몽롱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작게나마 눈도 떠졌다

이상함을 느낌과 동시에 심지어 몸이 움직여지는게 아닌가??

이게 바로 수술중 각성 이라는 것인가!!

그 때 들려오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


’환자분 발가락 꼼지락 거리지 마세요‘


내가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걸 어필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번엔 말을 해봤다


’저 마댄거 맞나혀??‘


이상하다.. 발음이 왜이러지??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든 것 같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남자 간호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병실로 돌아왔던 것 같고

마취가 덜 깨서인지 일주일 넘게 잠을 설치게 했던 그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이렇게 기절하듯 잠이 들어본게

오후 5~6 쯤 수술을 집도했던 원장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고 CPH 시술을 했음에도 치핵이 많이 남아 있어서 예상보다 많이 잘라내고 봉합해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다른 환자들 보다 회복 기간이 더 길어질 거라는 말도..

최소 2주 정도는 그냥 숨만 쉬어도 피가 나올거고 당연히 화장실에서도 많이 힘들거라고 했다

하지만 화장실 가는게 무서워서 밥을 제대로 안먹을 경우 장이 협착돼서 수술을 또 해야하니 주는대로 잘 먹으라고 반협박(?)을 당했다

알겠다고 대답 후 다시 눈을 붙인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무렵 영양사 선생님이 밥먹으라고 깨우셨다

입원 후 첫 식사였다

수술 환자한테 고기를 먹여도 되나 싶었지만 

내인생에 장협착 재수술은 없다는 일념으로 다 먹었다

그 땐 몰랐다

다음 날 화장실에서 염라대왕님을 마주하게될 줄..

어기적거리며 식판을 반납하고 다시 침상에 누웠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아... 식후땡...

네이x에 ‘치질수술 후 흡연’ 을 검색해본다

술만 안마시면 된다는 의견이 99%였던 것 같다

바로 몸을 일으켰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수술 후 입술이 너무 텁텁하다고 한 뒤 차에서 립밤을 가져오는걸 허락받았고 링겔을 끌며 병원 밖으로 외출에 성공했다

입술이 텁텁했던건 진짜였으므로 거짓말을 한건 아니라며 위안을 삼았다

차에서 립밤을 꺼낸 뒤 아프지만 신나는 발걸음으로 1층 주차장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크흐~! 뿅가네 아주‘


잠시 어지러워 넘어질 뻔 했다

이제 다시 병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런데 문득 ‘지금 들어가면 담배는 또 언제 필 수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전자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환자복 입고 덜그럭 거리며 링겔을 끌고있어서인지 편의점까지 가는 길 내내 사람들이 너무 잘 비켜줬다

심지어 편의점 문을 열어주는 커플도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서니 갑자기 하늘보리가 땡겼고 작은 병으로 골라서 계산대로 항했다

줄을 선 네명이 있었는데 다들 나에게 차례를 양보해주셨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중얼거리며 링겔을 끌고 계산대 앞에 섰다

하늘보리를 올려놓으며


’저.. 전자담배는 없나요?‘


없을리가 없지

편의점 직원분이 전자담배를 꺼내주는 사이에 차례를 양보해줬던 맨 앞의 또래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은 마치 ’이건 뭐하는 새끼지?‘ 라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마스크도 썼으니까 상관없었다

계산을 마치고 병실로 무사 귀환에 성공했다

침대에 누워 티비를 켜고 스르륵 잠이들 뻔 했는데 양치질을 안한게 생각났다

다시 링겔을 끌고 화장실을 갔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수술 이후로 소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일단 양치를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있는 데스크로 향했다


‘선생님 저 오줌이 안나와요...’


수술 후 자기도 모르게 겁이나서 아랫배에 힘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거니 앉아서 시도해보라고 하시더라

내가?? 무서워서 힘을 못준다고??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약 10분 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기위해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고

남자의 자존심 때문인지 앉아서 싸기는 싫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앉아나 보자 하고 변기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더라

역시 간호사 선생님들 말 들어서 나쁜건 없나보다


다음 날은 잠을 잘자서인지 아침이 너무 상쾌했다

아침밥을 알리며 깨워주시는 영양사 선생님과도 밝게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난 열심히 먹었다

밥이 맛있었거든

티비를 보다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던 나는 양치질을 안했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아랫배에 신호가 왔고 드디어 첫 사투의 시간이었다

수술 전의 통증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봉합 부위가 벌어지며 싸는 똥은 통증이 달랐다

그 순간.. 밥을 잘 먹어야한다고 했던 선생님에게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많이 먹으라고 한건 아닌지 후회와 원망을 하며 나도모르게 흘러내린 두어방울의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을 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저... 화장...실이에요......’


화장실 문 너머로 고통에 찬 내 목소리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배변 후 좌욕을 하면 통증이 많이 내려앉는다고.. 나중에 다시온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좌욕을 시작하자마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절반 이상 사라졌다

역시 선생님들 말은 들어서 나쁠게 없는 것 같다

밥 잘먹으라는거 빼곤

그 때 이후로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밥은 반공기도 안되게 먹었지만 여기 생선구이가 진짜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주는 족족 다 먹었다


그 후 퇴원할 때 까지 이렇다할 일은 없었고 물사러 간다그러고 연초피러 두 번 더 나갔었다

운전해서 귀가한 뒤 샤워를 하며 2박3일 동안 못감았던 머리를 한 10분은 감았다

빨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박박

개운한 몸뚱이를 침상에 눕히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거동 자체가 진짜 너무 아파서 속으로 복층 오피스텔 욕을 어마어마하게 했다

수술 및 입원으로 화~목 휴가를 써둔 상태여서 금요일은 출근을 해야했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수술 전 보다는 괜찮은 편이니 출근을 했고 30분도 안돼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몸뚱이로는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1주일 간 재택 근무를 요청했고 다행히도 승인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의 회복 방향에 대해 고민해봤다

일주일 후에도 일상생활이 안될 것 같았다

일단 건강을 생각해서 최소 1일 1식은 해야했고 밥 대신 죽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허기질 때 죽 대신 먹을 대체음식으로 베지밀 달콤한 맛, 비피더스 사과맛, 딸기맛 요플레 큰사이즈를 대량 구매했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죽이고 뭐고 물만 먹으면서 최대한 버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합한 살이 붙을만 하면 다시 똥싸면서 찢어지고

약바르고 좌욕하면서 다시 좀 달래노면 죽이 그걸 또 찢고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요플레를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하나 더 먹었다

디저트로 비피더스도 한병 먹었다

그리고 그 날.. 화장실을 열 번 넘게가면서 수술 후 가장 힘든 하루를 보냈다


수술 12일 차인 지금은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다

평범하게 걸을 수 있고 계단도 잘 오르락내리락 한다

똥싸고 나서 30분 정도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것 빼고는...

혹시 당신에게도 치질이라는 저주받은 질병이 찾아갈 경우 한 시도 지체하지말고 병원을 찾길 바란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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