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갈구는 직장 상사

136 0 0 2023-06-19 13:2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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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안녕하세요. 평안하셨나요. 날이 많이 선선해졌네요.

저희 부부는 평안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글을 썼던 원글자(라고 하나요?)의 남편입니다.

오늘은 오전 중에 변호사 사무실을 들러야 할 일이 있어서 연차를 냈습니다.

평생 숫자랑 기계만 보고 살았던 사람이라 문맥이 어지러울까 걱정이 되네요.

그리고... 분명 엄청 긴 글이 될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파트장은 6개월 감봉 및 지방 생산공장으로 좌천됐습니다.

직급은 그대로지만 직책은 파트장이 아닌 일반 차장으로 배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팀은 내년에 사업 철수가 확정된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년도 사업 계획을 짜고 있는 와중에 이렇다 할 실적도 낼 수 없는 한직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임시입니다. 2차 인사위원회가 올 월말에 열린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고, 결과를 궁금해하셨다는 것도 압니다.

일이 있은 후 한 달의 시간이 지났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파급력 덕분인지

회사에서도 이례적으로 빠른 결론을 지어서 긴 싸움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아내가 이곳에 글을 썼다고 보여주고, 무수한 댓글이 달렸을 때 덜컥 겁이났습니다.

너무 일이 커지는 것 아닌가, 다쳐도 나만 다치면 되는데 아내까지 험한꼴 당하는 거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보자니, 정말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이 사이트 뿐만 아니라 스치듯 들어봤던 다른 유명 사이트,

그리고 생전 처음보는 곳에까지 제 아내의 글이 정말 많이 퍼졌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저와 아내가 겪은 일이 절대 일상다반사가 아니며,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고

간과 될 수도 없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형성 되었다는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직업도 식물을 다루는 사람이라 그런지 무엇을 해도 침착하고, 필요 이상의 행동이나 말도 삼갑니다.

하지만 언제나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가 긴 시간 저와 함께하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험한 말과 표정을 했을 때

제가 잘못 한 게 없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생긴 일 같아서요.

아내는 아버님을 장지에 모시고 미쳐 정리하지 못하고 가신 아버님의 생활의 흔적을 정돈했습니다.

생전 아버님의 유언대로 처제와 협의하여 유산 정리 계획을 세우고 나서

유산 정리는 차차 하자. 미안하지만 내가 네 형부와 먼저 해결 할 일이 있다고 하더니

그날은 집에 들어와 목욕하고, 있는 찬으로 밥 먹고 저에게 내일 연차를 내라고 하기에 알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초저녁부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아내는 미동도 없이 푹 잤습니다.

후배에게 대신 연차 신청서를 올려달라고 했는데 파트장이 결재를 보고도 안해준다며 문자가 오긴했었죠.

제가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어쩌지... 하는 동안

기안을 그냥 팀장님 전결로 파트장 건너뛰고 다시 올리고

팀장님께는 상황을 설명드렸다고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참, 주변 사람 덕을 많이 봅니다.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난 아내는 제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저희 회사 홈페이지 조직도 등을 찾아보고

저에게 회사에 모든 내용을 보내도 되겠느냐. 문서는 내가 써서 보여줘도 되겠느냐 물어봤습니다.

전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아내 앞에 앉아서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아내 한마디에 결심했습니다.

커피 식는다고. 따뜻할 때 마시라구요. 그 말에 왜 이렇게 마음이 울렁거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사과와 감사과에 보낼 통화 녹음 파일과 경위를 적은 글을 보냈습니다.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침착한 글이었습니다. 사이트에 원글을 보신 분들은 상상하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우선 그렇게 내용을 정리해 보내는데까지만 하고 쉬려고 했습니다만

아내는 이 사이트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것도 나름 계산 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글이 도화선이 되어서 회사에서 이 일을 뜨거운 감자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출근을 했습니다.

파트장은 출근하면서 저를 보더니 정말 옆팀까지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로

“야~~~~ 너네 와이프 무섭더라~~~~~ 내가 군대에서도 그런 험악한 말은 못들어봤다 야~~~~”

대꾸 안했습니다. 그냥 제 일 했죠. 평소 같으면 그냥 기분 맞춰 줬겠지만 저도 결심한바가 있어서요.

당황한 듯 하더군요. 오전은 제가 밀린 외부 미팅들이 있어서 사무실을 금방 뜰 수 있었습니다.

오후 2시쯤 회사 감사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복귀하냐고.

회사 근방이라 금방 들어간다고 하자 자리 말고 감사과를 먼저 들르라고 했습니다.

 

감사실에는 고충 상담 담당 차장과 사측 변호사가 동석했습니다.

분위기는 저에게 잘못을 찾거나 심리적 압박으로 일을 축소시키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회유와 달램이 느껴졌습니다. 고생 많았겠다. 많이 참았겠다.

원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인간적인 사과? 타 부서 전출(둘 중 누구든 간에)? 확실한 징계?

이런 이야기들이 부드럽고 매너있는 분위기에서 오갔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한 가지. 재발 방지 였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파트장에게 징계 혹은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준하는 조치가 아니더라도 재발 방지가 약속 될 방안이 있다면 좋겠다고 했죠.

그때 변호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제가 말하기 전에 이미 조사한 모양이었습니다.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나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더군요.

그래도 언론에 직접적인 인터뷰 혹은

후속 글 등을 통해 필요 이상의 정보가 노출되면 문제 삼을 수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추후 행동 방향은 일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정보를 공개하는 방향을 선택 할 수 있어서 무엇도 지금 약속 드리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말이 좋아 어렵다지... 나 혼자 죽진 않는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잠시 변호사가 만류의 의미로 좋은 방법은 아닐거라는 말을 얹었지만 차장은 알겠다. 로 일축했습니다.

 

그 후 과정을 안내 받았습니다.

우선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있도록 유지하는 건 고발이 이루어진 상황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저에게 유급 휴가가 일주일에서 이주일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분리된 시간동안 회사에서는 면담 및 자체 조사로 실상 파악을 진행할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징계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통화 녹음본이 명확한 증거로 있기는 하지만 가해자인 파트장의 발언 또한 들어야 한다고 했고

두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 파트원 및 직속 팀장까지 면담이 진행될거라고 했습니다.

그 모든 조사와 증거, 면담을 토대로 징계처분을 위한 인사위원회가 열릴 것이며

언제 열릴지는 정하지 않고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충분하다 싶으면, 진행한단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수요일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출근하라구요. 순간 눈 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냥 나 하나 나가는걸로 끝나는 건가, 그냥 네가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보라는건가...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제가 아닌 파트장을 유급휴가로 분리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왜 피해자는 난데 내가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파트장이 보호되는 느낌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말이... 정말 가슴이 시큰하더라구요.

 

“피해자가 수석님 혼자가 아닙니다. 피해자가 파트원 전체를 넘어선 상황이라

모두 유급 휴가를 가게 되면 업무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파트장을 분리하는 것으로 부득이 결정했습니다.”

 

파트장은 감사실로부터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지만

월요일에 제가 짐싸서 나온 이후로 문자 한통 전화 한통도 안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이틀 밀린 업무를 오전 내내 처리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하셨습니다.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식사 주문하고 앉자마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 못 들은척(?)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식사 내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장인어른 잘 보내드렸냐는 인사치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못 그랬다는 거 아신다는 듯이요.

주된 이야기는 내년도 사업계획 쓸 때가 됐으니 그와 관련된 대화들이었습니다.

그 대화가 참 위로가 많이 됐습니다. 내년도 계획을 상사와 상의하고 있다는게

내년에도 내가 여기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까요.

 

파트원들도 특별히 다르게 대하는 게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통화 녹음은 물론, 카톡 캡쳐본,

회식에서 술취해서 행패부리는 동영상 등 엄청 많은 증거를 감사실에 전했더라구요.

심지어 막내 여자 직원은 성희롱 발언도 많이 참았던 모양입니다. 감사실 가서 한참 펑펑 울고 왔더라구요.

파트장이 출근을 안하니 회사 분위기가 정말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심지어 능률도 올랐구요.

매일 같이 비효율적으로 야근하던 팀이 딱 일주일 고생하더니 야근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팀장님이 우리 파트 고생한다고 저녁 8시 넘어 배달음식 시켜주려고 했다가 다 퇴근해서 놀라셨더라구요.

그 시간에 저희 파트는 늘 남아 있어서 오늘도 있겠거니 하셨다더라구요.

저는 그렇게 생긴 저녁 시간에 신경정신과 진료를 꾸준히 받았습니다. 소송에도 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요.

 

징계 위원회 날짜가 전체적으로 공지 된 건 9월 3일이었습니다. 9월 10일로요.

사내 게시판과 인트라넷 게시판에 모두 공지되었고 어느 안건인가 까지 공개되었습니다.

대상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모두 아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9월 6~8일에 걸쳐 피해를 고발했던 직원들이 차레로 감사실 호출을 받았습니다.

저도 7일에 다녀왔구요. 징계 여부는 10일 당일에 정해질거고 공고는 전체공개 되지 않을 것이며

대신 당사자인 사람들은 볼 수 있는 보안문서로 공람될 거라고 했습니다.

감사실에서는 따로 준비 중인 법적조치가 있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내가 장례식 방해와 모욕, 정신적 피해보상 등을 걸어 준비중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대상에 혹시 회사도 있는지 물었고 회사는 현재로서는 계획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징계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로 이해하겠다고 감사실측에서 정리해줬고. 네라고 말했습니다.

공론화 할 여지도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묻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공론화 되는 상황까지는 빚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제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9월 10일. 2주의 유급휴가와 2주간의 연가를 쓰고 거의 한달만에 파트장이 출근했습니다.

세상 단정해보이는 복장이었습니다. 저와 눈도 못 마주쳤습니다.

오후 2시에 있던 징계위원회는 오후 3시가 안돼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9월 13일, 내부문서로 처음에 말씀드린 임시 징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현재 파트장은 저와 아내가 준비중인 소송 외에도 막내 여직원의 성희롱 관련 소송도 걸릴 예정입니다.

사실 금품수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건 을의 입장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협력업체들이 함께 처벌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 협력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와 오래 일한 한 협력업체 대표님이 나서주시겠다고 호기롭게 말씀은 하셨지만 제가 말렸습니다.

소송은 현재 본격적이지 않고 준비 중이어서 아마 9월 말 2차 징계위원회가 열릴 때 쯤이면

가시화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 2차 징계위원회 결과에도 어느정도 무게가 실리리라 예상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인것도 맞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저희 부부가 서로 티는 안냈지만 속으로 우려하던 억울한 상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온라인에서 여러분들이 자기 일처럼 화내주신 부분이 회사에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정말 끝이 날때까지 힘내서 정신 똑바로차리고 제 가족 지켜내겠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회사에 들였던 정성이 배신당한 일이 없기에

구체적인 회사의 정체에 대한 추측은 잠시 멈춰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 일이 끝끝내 회사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형태로 끝나길 기대합니다.

 

계속... 세상은 흉흉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불합리한 괴롭힘이 비단 남초회사 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회사든 그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렇게 울며 불며 배워야 기억에 남는 거다.

그런것도 다 견디는게 월급에 포함되어 있는 거다.

너만 힘든거 아니다. 다 힘들 다.

밥벌이가 쉬운 줄 알았느냐. 여기 아니라 어디도 다 마찬가지다..

이런 말들 뒤에서 쓸개즙 같은 마른 침을 삼켜오셨다는거... 정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조금은 변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최선을 다 하셨고, 진정 억울하시다면, 더 이상 참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누군가에게 월급을 받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부하직원이라서

당해도 괜찮은 일 같은 건 없습니다. 모두 존중 받으셔야합니다.

 

참는 분들이 비겁하다는 건 아닙니다. 두렵고, 많은 걸 포기할 결심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불구덩입니다.

그리고 참는 분들도, 참을 수 있는 그 강단과 용기와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100명중에 한명이라면, 나중에는 두명이, 더 나중에는 열명이 용기 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모두 평안한 가을날 되시길 바랍니다.

보내주신 성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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