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소고

96 0 0 2024-01-26 21:44: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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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느 여름 날 아내가 마음이 떠났고 남녀로서의 관계도 끝난 것 같다고 이혼을 통보했습니다.

아직 어린 자녀가 있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고

저에게 법률적인 유책사유는 하나도 없었기에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이 커서 불행하다고 느끼고 내 옆에 늘 있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까

왜 그렇게 된 건지 계속 원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물질적, 정신적 등등 그동안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일 중에 

희한하게 제가 상처를 준 것 같은 상황만 계속 떠올랐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빨리 원인을 찾아서 예전처럼 되돌려야지 라는 생각...


대화는 잘 안되었고 전 그저 답답한 마음에 내 탓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돌보지 않고

그 친구가 이혼 통보를 철회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살아온 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친구는 변하는 게 있었고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다른 사람과 연락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물어보니 이혼을 통보하고 3개월 정도 지난 가을부터 연인관계로 발전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전 무너졌습니다. 

그 상대방은 제가 한두번 본 안면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학연으로도 얽힌...

속에서 천불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전 제 마음의 소리를 기울이고 나를 변호하기보다 스스로 자책하고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네....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어요. 소화가 안되니 몸무게는 아픈사람 처럼 많이 빠지고 

매일 같이 술에 의존해서 잠이 들고 극단적인 생각을 달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큰 상처를 줄 것을 알면서도 

그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실제 결심도 했었고요. 


이 사실을 그 친구에게 말하니

다신 연락도 안하고  안 만나겠다고 해서 당시엔 그 말을 믿고 아주 약간은 나아졌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완전히 없애진 못했지만 많이 흐려졌어요. 

저를 속이고 또 연락하고 만나더군요. 평상시에는 잘 맞지도 않은 촉이라서 

정말 맞지 않길 바랐는데 비겁한 방법으로 거짓말을 확인했습니다. 

전 다시 완전히 무너졌어요. 하루하루가 나락이고 분노고 절망이었습니다.

애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자산이 다 분해돼서 저와 아이들이 더 힘들어질 까봐 

가능한 이혼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까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당연하고 제 편이 돼 줄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첫째는 제 눈치를 봅니다. 아빠가 외로워 보인다고 하면서 울더라고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곳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편에 서주는 친구들에게도 이런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다들 한 목소리를 내더군요 저의 마음.. 제 안부를 묻고, 제가 행복해져야 한다며 약한 모습 애들에게 보이지 말고

밥 잘 먹고 술에 의존하지 말고 네 삶을 찾으라고 합니다.


찾아간 곳에서는 저에게 더 실용적인 메시지도 많이 주시더군요, 

이혼을 하고 싶던 해주기 싫던 지금은 제가 상처를 받은 상황인데 

먼저 자신을 잘 돌보고 삶의 주인 의식을 되찾고 그러고 나서 생각을 정리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라고 합니다. 

지금의 전 여러 지표상 상식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의 결혼 생활에 대해 저보다도 더 제가 겪었던 상황이나 감정을 잘 묘사해 주시고 공감해주셨어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혼이 지금의 결혼의 실패일 수 있어도 인생의 실패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 지나가면 괜찮아질 수 있는 일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많이 미안하네요.

유책사유가 있는 상대방 좋으라고 합의 이혼 같은 거 해주지 말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 등등의

이런저런 여러 가지의 저를 위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있자니 복잡하다는 생각 보다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진작에 이런 상황을 나눌 걸 이라는 후회도 됩니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일단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부모가 함께 있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가 떠날 수도 있다는 무서움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트라우마로 남는가를 직접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렇게 실질적인 가정의 해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금 서로 말은 섞지 않아도 같은 집에 있으면서 애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쇼윈도 부부를 원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 때문에 함께는 살지만 각자 서로의 삶을 터치 하지 않는거..


그냥...  뭐...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저의 대응이나 행동이 호구이고 바보 같을 수 있어요.

제가 봐도 그런걸요..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저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 겁니다. 

비록 하루에도 몇번씩 울컥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힘들긴 합니다. 


여기도 저에겐 20년이나 함께한 공간이기에 넋두리 한번 해봤습니다. 

내용은 언제든지 삭제 할 수 있습니다. 곧바로라도 없어질 수 있어요. 양해바랍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 

댓글을 다 달 수가 없어서 여기에 덧 붙입니다. 많은 위로의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 그 상대방은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 엄마역할에 대해서는 걱정한 적은 없습니다. 늘 아이들에겐 의식주를 포함해서 잘 놀아주고 동성이라 공감도 잘 합니다. 아이들에게 여러방법으로 물어보고 확인해도 답은 항상 아이들 입장에선 최고의 엄마입니다.

-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 아빠가 좋냐고 물어보니 행복한 아빠와 엄마가 좋다고 합니다. 

- 첫째는 저에게 찾아와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결정난 건 없지만 저도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55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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