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서늘한 핏줄

234 0 0 2025-05-04 00:06: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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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나를 찾아온 건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밤이었다. 뺨은 창백했고, 입술은 조금 말라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억나는 건 그의 눈빛이었다. 매일 무언가를 조금씩 토해낸 존재의 안쪽, 오래된 서늘함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가 병들었음을 곧 알아챘다. 그것은 폐나 간이 아니라, 더 깊은 곳의 고장이었다. 먹지 못하는 것. 마시지 못하는 것. 아무도 죽이지 못하는 것.




밤이면 그가 내 방에 앉아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나는 자주 창문 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땅과 하늘을 가르는 윤곽들이 흐릿해지는 시간, 그는 내게 말했다. “심장은 아직도 뛴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언젠가 진짜였던 시절의 명령으로 스스로에게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물을 삼키지 못했고, 피 냄새가 나는 걸 두려워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고 있었고, 그것이 치유인지 병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가끔 그는 뼈가 드러난 팔을 보여주었다. 너무 말라버린 피부는 감각을 잃은 것처럼 보였고, 그 밑의 핏줄은 꿈틀대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면, 내 이름을 불러주지 마.”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오래 남는다. 언어는 사라지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아주 천천히 썩어가는 꽃의 냄새를 함께 맡으며.




그가 떠난 뒤, 나는 어느 날 밤 창문을 열었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채 베란다에 나섰을 때, 오래 전 그의 숨결처럼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훑었다. 그는 사라졌다. 뱀파이어였고, 병들었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주 조금은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무너진 도시의 폐허 위로 눈이 내리던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떨어지는 것들만이 남긴 흔적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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