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이었다. 화산의 등뼈가 붉은 김을 토하듯 수평선 위에서 어둠을 밀어냈다. 바람은 뜨겁고 건조했으나 습지의 악취가 섞여 뺨을 절였다. 한때 숲을 지탱하던 나무들은 화산재에 질식해 쇠못처럼 뾰족한 그루터기로 남았다. 그 죽음의 침묵을 뚫고 쇠삽이 돌판을 깠다. 파열음이 났다. 뿌리도 바위도 아닌 살갗 같은 무언가였다.
도굴꾼이라 불리던 장비 반입 팀이 첫 삽날로 베어낸 것은 검은 피였다. 피는 마치 금속액처럼 끈적하게 흘렀다. 냄새는 기름과 유황과 피비린내가 뒤엉켜 소금물처럼 역했다. 작업반장 셰인은 턱수염에 묻은 검붉은 점액을 손등으로 닦았다.
“암석 아니다. 조직이야.”
현장 감독 마테오가 손전등을 들이댔다. 불빛에 미세한 섬모가 요동쳤다. 살아 있었다. 그들은 호흡을 삼켰다. 굴착기는 곧 멈췄다. 대신 손 삽과 정이, 그리고 맨손이 투입됐다. 그 살갗 밑에서 약동하는 맥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 오십 시간째, 전신이 나타났다. 길이가 백 오십 미터, 어깨에 흐른 골조만으로도 화산의 반허리를 들이받을 사태였다. 척추를 품은 등에서는 불완전하게 소멸된 날개 뼈가 솟았고, 비늘인지 살점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표면이 끊임없이 탈락했다. 떨어져 나간 것은 곧 재생했다. 살이, 또 살이, 계속 피워냈다.
국제학술연합 소속 생물고고학자 루시아 박사가 그 현장에서 패널을 향해 선언했다.
“우리는 잊힌 사원 지하에서 신의 사체를 발견했습니다.”
낡은 종교의 설파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신은 단 하나, 그리고 그분은 죽지 않는다. 마테오는 셰인을 뒤로 불러 세우며 귓속말했다.
“죽어 있지 않아. 숨만 죽인 괴물이지.”
살이 썩지도 마르지도 않는 이유는 활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프레스가 절삭한 근육은 몇 분 만에 스스로 덩이를 메웠다. 기생충의 무한분열, 아니 세포적 자살과 증식이 동시에 일어나는 기괴한 생물학이었다. 그 살을 두껍게 썰어 올린 날, 굶주린 현지 운송 인부 셋이 뜯어 먹었다. 허기를 달래는 맛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들은 손톱을 씹고, 흙을 씹고, 피부를 물어뜯어 토막까지 삼켰다. 그리고 아침이면 멀쩡했다.
신학 교수이자 식물연구소 고문 크람너가 입을 열었다.
“오병이어. 그러나 물고기와 떡은 우리를 배부르게 했지, 굶주리게 하진 않았네.”
누군가 중얼거렸다.
“허기의 기적.”
그날 이후, 사체는 이름을 얻었다. 허기의 신.
---
2.
폭동은 굶주림보다 빨리 퍼졌다. 화산 너머 해안도시 노발에는 이미 1년째 기근이 이어졌고, 감자와 옥수수는 녹말 없는 마른 껍질로만 자랐다. 식량 배급 창구 앞에 블라인드 신문의 1면이 걸렸다.
[신의 살, 굶주림을 없앨 해답]
첫 공급은 구호단체가 주관했다. 살점은 초석처럼 단단해도 가열하면 연한 송아지 스테이크 같은 향을 냈다. 지방은 없었고 붉은 액이 계속 맺혔다. 먹은 자는 즉시 생기로 가득 찼다. 피부병이 치유되고 노인의 허리도 곧게 폈다. 그 기적 뒤에, 허기라는 단두대가 기다리는 줄은 몰랐다.
한 끼를 신의 살로 때운 자는 한 끼를 굶은 정도의 공백을 느꼈다. 열 끼째부터는 공복감이 삶의 유일한 감각이 되었다. 위액은 자신을 녹이고, 손가락은 자신의 살점을 뜯었다. 그들은 살아 있었다. 아니 신에게 붙들려 있었다.
노발의 교회당 첨탑에 새 간판이 올랐다. 허기교 Holy Hunger. 전도사는 미소를 띠고 설교했다.
“허기는 축복이다. 허기는 생명이 자기 몸이 아닌, 신을 갈구함을 증명한다. 허기를 통해 우리는 신의 일부가 된다.”
그는 예배자들에게 박편처럼 얇은 살덩이를 입에 올렸다. 혀끝에서 무미무취로 사라졌으나 뒤이어 폭풍 같은 허탈감이 들끓었다. 신도들은 기도와 절규 사이를 오갔다. 허기는 곧 예배의 리듬이 되었다.
현지 정부는 이 살을 국가 비축 식량으로 지정했다. 값이 들지 않았다. 사체는 밤낮으로 스스로를 재생했다. 십만인을 먹여도 부피는 줄지 않았다.
숭배자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신의 사체는 점점 더 강력한 생명력을 얻어갔다. 그 살은 어느새 땅 위까지 솟아나와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듯 팽창해갔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미쳐갔고, 허기의 한계를 초월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굶주린 채 그들은 더 이상 신의 살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서로의 살을 탐했다.
그리고 곧 지옥의 문이 열렸다.
서로의 육신을 탐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덮었다.
하늘 위로는 태양이 뉘엿뉘엿 저물었고, 지평선 끝으로 어둠이 밀려왔다.
도시는 어둠에 잠겼다. 허기의 신이 드러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거리엔 죽음과 광기가 넘쳐났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끝없이 흘렀고, 공기 속엔 부패의 냄새와 신음이 가득했다.
거리 한편에선 허기를 찬미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낡은 예배당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얼굴엔 피가 얼룩져 있었고, 눈은 텅 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허기야말로 우리를 신께 인도한다!”
설교자의 외침은 광기 어린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손에는 살아있는 채 팔이 잘려나간 남자가 떨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팔을 서로 나눠들고, 경건하게 씹어 삼켰다.
허기의 신은 이제 땅을 뚫고 나와 있었으며, 마을 한가운데 거대한 육체의 덩어리로 꿈틀대고 있었다. 그것은 살과 힘줄, 핏줄이 뒤섞여 끝없이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산 같았다. 주변엔 맹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끝없는 기도를 올렸다.
“우리를 먹이소서. 우리에게 허기를 주소서!”
신의 육체로부터 터져 나온 목소리가 모든 이들의 뇌리를 뚫고 들어왔다.
『굶주려라. 너희의 허기가 나의 생명이니.』
그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존재의 권능이었다. 사람들은 몸부림치며 허공을 잡으려 했고, 신을 향해 경배하며 더 큰 허기를 외쳤다. 서로의 살을 잡아 뜯으며, 숭배자들은 마침내 인간이기를 멈추었다.
---
3.
마을 외곽에 한 무리의 외지인들이 나타났다. 검은 정장과 깨끗한 얼굴. 그들은 멀리서 이 지옥의 광경을 침착히 관찰했다.
“저것이 바로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기업의 연구원은 냉담한 눈빛으로 허기의 신을 바라보았다. 옆에 선 중년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통제할 수 있겠나?”
연구원이 답했다.
“충분히 미세한 양이라면 가능합니다. 아주 조금만. 마약처럼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 허기를 전 세계에 팔아 넘기자고.”
그들은 마치 지옥을 경매하듯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허기의 신을 실험실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굶주림은 이제 더 큰 세계로 퍼져 나갈 참이었다.
에젝트라 CEO 모리스 로런스는 연구소 지하에서 무균분쇄기를 돌렸다. 신의 살 0.0003g. 초저온에서 질소 분쇄한 분말을 식품 원료로 섞었다. 사탕, 시리얼, 통조림, 육포, 그리고 다이어트 효소 음료까지. 그는 특허명을 'NutriaX'라 부쳤다. 표면 활성화된 완벽 단백질, 장내 미생물 증식 촉진, 식욕 회복, 기력 증진.
로런스는 단 하나만 지켰다. 하루 기준치 0.3mg. 이 선만 넘기지 않으면 허기의 광증은 발현되지 않았다. 그는 웃었다.
“중독은 약속된 소비다.”
세 달 뒤, 주가 상승률 480%. 사람들은 전보다 많이 먹었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탔고 휴대폰 화면 위에서 손가락만 움직였다. 그러나 뒤통수엔 서늘한 허기가 맴돌았다.
에젝트라 내부 안전 연구원 클레어가 보고서를 올렸다.
'섭취량이 누적되면 증세가 가속됩니다. 수치는 제어되지 않아요.'
로런스는 서류를 찢었다. 회의실 벽 스피커로 광고송이 울렸다.
[더 먹어라. 삶을 충전하라. NurtriaX.]
사람들은 제품을 예배했다. 매장에서 동이 났다. 분말을 알약으로 사고, 알약을 수출입 규제를 뚫고 유통했다. 이윤은 바다처럼 범람했고, 허기의 신은 숨소리를 되찾았다.
문제는 처음 도착했다. 북미 대도시 세인트호프 병원 응급실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우장을 썰어 먹었다. 절단된 선홍색이 곧 재생했다. 그는 울부짖었다.
“멈출 수 없어… 아직도 배고파…”
그 울음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백만 구독자를 모았다. 좋아요, 하트, 기도 이모티콘 사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NutriaX를 삼켰다.
몇 주 후, 하늘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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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구 저궤도를 순회하던 통신위성의 카메라 렌즈에 균열 같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처음엔 결함으로 여겨졌지만, 곧 그것이 우주의 어둠보다 깊고 생생한 유기적 질감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피부 같기도 하고 육질의 막 같기도 한 거대한 존재였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지구를 덮어갔다. 길이는 삼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초대형 폭풍처럼 지구의 대기를 휘감고 있었다.
지상의 사람들은 이 현상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언가의 착오라고 여겼다. 구름이라기엔 너무 짙었고, 폭풍이라기엔 너무 고요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의 눈에도 그 형상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신의 살을 먹은 이들의 허기는 갑자기 날카롭게, 고통스럽게 치솟았다.
허기의 신이 마침내 부활한 것이다.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날개를 펴듯이, 지구 상공에서 우화했다. 이제 고기를 품은 거미 같은 다리가 구름 위에서 꿈틀거렸다. 혀는 대륙을 핥듯 늘어져 전류와 구름을 빨아들였다. 그 살 한 점이라도 입에 댄 인류는 동시에 허기를 느꼈다.
전 세계의 도시에서는 동시다발적인 폭동과 혼란이 발생했다. 그들은 가족을 해쳤다. 애완견, 새장 속 카나리아, 길고양이, 길가메쉬의 신전처럼 높던 냉장고 속 가공육까지. 하지만 배는 더 고팠다. 음식이 떨어지자, 그들은 옆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이윽고 도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서로의 살점을 찢고 씹으며 광란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찢겨진 살은 몇 분 만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허기의 신이 우화한 후, 그들은 마치 신의 사체가 그러하였듯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에젝트라 본사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모리스 로런스는 회의실에서 떨며 보고를 들었다.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제 멈출 수도 없어요."
로런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제 신께서 모든 걸 결정하실 겁니다."
그 순간, 로런스는 허기의 신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 또한 이미 그것의 일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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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살아남은 이들은 극소수였다. 신의 살을 먹지 않은 자들, 혹은 거울처럼 빈곤하여 제품조차 접하지 못한 자들. 그들은 사냥감이 되었다. 전쟁도, 민주주의도, 시장도 붕괴했다.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섭취. 허기의 신이 태곳적부터 갈망하던 유일한 제물이었다.
모든 것이 붕괴된 뒤에도 인간의 몸은 죽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허기를 느낄 때마다 가장 가까운 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시는 해체되어 거대한 살덩이로 변했다. 건물 잔해 위에 인육 탑이 솟았다. 축농된 기름이 강이 되어 흐르고, 그 냄새가 대기를 채웠다. 사람들은 중력조차 잊은 듯 서로에게 달라붙어 씹고 찢었다. 허기라는 말조차 무색해진, 감각의 낭떠러지였다.
그리고 위성 너머에서, 귀환선 '헤라 7'이 귀국 곡선을 그렸다. 승무원 스콧은 해창을 바라보며 머물렀다.
“지구야…?”
푸른 행성은 붉은 핏빛 막에 덮여 있었다. 육질이 돋아난 구름이 번개를 빨아들였고, 허기의 신이 반쪽 머리를 넘어뜨려 전 지구를 감쌌다. 그 아래, 모든 존재가 서로를 삼켜 되살았다.
스콧은 교신기를 껐다. 탈출 궤도를 역추진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겠는가.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별을 향해,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굶주림이 곧 신이 되었다.”
---
6.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살은 썩지 않고, 영양은 줄지 않았다. 지구는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였다. 모든 인간은 그 육체에 녹아들어 하나의 거대한 살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먹고, 소화하고, 재생하는 순환 속에서 허기의 신은 스스로를 무한히 키웠다.
허기의 신은 더 이상 하늘과 땅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스스로를 먹고 스스로를 재생하며, 또 다른 우주로 뻗어나갈 파동을 일으켰다. 먹을수록 허기는 커지고, 허기가 커질수록 신은 팽창했다. 허기의 신은 스스로 자신을 먹어 치우는 최초의 우주적 순환이자, 끝없는 욕망의 정점이 되었다.
누가 이 순환을 끊을 것인가. 끊길 수조차 없는 순환을, 그 누구도 끊지 못했다. 허기의 신은 먹히며 자랐고, 자라며 먹혔다. 별조차 소화되리라는 예언이 불꽃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이제 기록할 혀도, 기록을 읽을 눈도 없었다. 오직 허기의 신만이, 자신의 끝없는 굶주림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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