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발트 1410 -전쟁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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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철의 강

1.

강물에 헬름이 비친다. 물이 검다. 신이 그 속에 없다.

울프람 폰 레제는 말 위에서 몸을 숙였다. 프로이센의 가을은 차가웠고 침엽수들은 바람에 울었다. 사모기티아로 가는 길은 진창이었다. 말발굽이 땅을 찍을 때마다 검은 물이 튀었다.

그들은 백명이었다. 튜튼 기사단의 흰 망토가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떠다녔다. 울프람은 그들 중 하나였다. 시골 기사. 작은 영지의 둘째 아들. 신을 위해 검을 든 자.

대장이 손을 들었다. 행렬이 멈췄다.

마을이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타는 초가지붕의 연기였다. 울프람은 투구를 썼다. 철이 차가웠다. 그의 숨결이 투구 안에서 하얗게 맺혔다.

2.

그들은 마을로 들어갔다.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농부들이었다. 낫과 도끼를 든 채 죽어 있었다. 반란군이었다.

울프람은 말에서 내렸다. 진흙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는 시체들 사이를 걸었다. 여자. 아이. 노인. 구별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았다.

이교도들이다.

누군가 말했다. 울프람은 고개를 들었다. 교회가 보였다. 나무로 지은 작은 교회. 십자가 대신 이상한 표식이 걸려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뇌신 페르쿠나스의 표식.

불태워라.

대장의 명령이었다. 병사들이 횃불을 들었다. 곧 교회가 불탔다. 나무가 타는 소리. 뜨거운 공기가 울프람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돌아섰다. 시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소년이었다. 열 살쯤. 손에 나무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3.

그날 밤 그들은 숲에서 야영했다. 모닥불이 타올랐다. 병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울프람은 불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춤췄다. 그 속에서 무언가 보였다. 아이의 얼굴. 나무 십자가.

그게 우리의 전쟁이다.

의무사제 루카스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불빛에 붉게 물들었다.

신의 적을 무찌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울프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없었다.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렸다.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들이 울었다. 마치 철로 된 짐승이 숲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4.

다음 날 그들은 계속 북쪽으로 갔다. 비가 내렸다. 가랑비였다. 끝없이 내렸다. 갑옷이 녹슬었다. 말들이 지쳐갔다.

길은 없었다. 그들은 강을 따라갔다. 네만 강의 지류였다. 물은 검고 차가웠다. 때때로 시체가 떠내려왔다. 부풀어 오른 시체들.

저녁 무렵 그들은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텅 비어 있었다. 주민들이 도망간 것이다. 집들만 남아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바람이 드나들었다.

울프람은 한 집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 빵이 있었다.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벽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 옆에 이교의 부적도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동료들이 집을 뒤지고 있었다. 곡식. 가축. 쓸 만한 것은 모두 가져갔다. 신의 군대도 먹어야 했다.

5.

열흘째 되는 날 그들은 적을 만났다.

숲이 끝나는 곳. 넓은 들판. 그 너머에 그들이 있었다. 사모기티아 반군. 농부들이었다. 그러나 무장하고 있었다. 창. 도끼. 활.

기사단이 대열을 갖췄다. 울프람은 창을 들었다. 말이 콧김을 뿜었다. 그의 심장이 뛰었다. 전투의 순간이었다.

신이여.

그가 속삭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나팔이 울렸다. 돌격 신호였다. 울프람은 박차를 가했다. 말이 앞으로 뛰었다. 백 명의 기사가 함께 달렸다. 땅이 흔들렸다.

6.

충돌.

울프람의 창이 한 농부의 가슴을 뚫었다. 피가 튀었다. 뜨거운 피. 농부의 눈을 보았다. 놀란 눈. 고통스러운 눈. 그리고 텅 빈 눈.

창을 뽑았다. 다음 적. 또 다음 적. 죽이고 또 죽였다. 기계적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 비명을 질렀다. 화살이 말의 목에 박혔다. 울프람은 땅으로 떨어졌다. 진흙 속으로. 일어났다. 검을 뽑았다.

한 농부가 도끼를 들고 달려왔다. 울프람은 검을 휘둘렀다. 농부의 팔이 잘렸다. 비명. 피. 그는 다시 검을 찔렀다. 농부가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수라장이었다. 비명. 쇠 부딪치는 소리. 죽어가는 말들의 울음. 진흙과 피가 섞였다. 모든 것이 붉고 검었다.

7.

전투는 끝났다. 기사단이 이겼다.

들판은 시체로 뒤덮였다. 대부분 농부들이었다. 울프람은 그들 사이를 걸었다. 발밑에서 피가 질척거렸다.

한 시체 앞에서 멈췄다. 소년이었다. 처음 본 소년과 비슷한 나이. 손에 부러진 창을 쥐고 있었다. 눈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빗물이 그 눈에 고였다.

울프람은 무릎을 꿇었다. 소년의 눈을 감겨주었다. 차가운 살갗. 이미 굳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신의 뜻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비만 계속 내렸다. 차갑고 끈질긴 비.

8.

그들은 승리를 축하하지 않았다. 죽은 동료들을 묻고 부상자를 돌봤다. 스무 명이 죽었다. 열 명이 다쳤다.

밤이 되었다. 울프람은 잠들 수 없었다. 천막 밖으로 나왔다. 비는 멈췄다. 별이 보였다. 차갑고 먼 별들.

강가로 갔다. 물은 여전히 검었다. 그는 투구를 벗고 물에 비췄다.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낯선 얼굴이었다. 피로하고 공허한 얼굴.

물을 움켜쥐었다.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찔렀다. 피 냄새가 씻겨 내려갔다. 그러나 손의 감촉은 남아 있었다. 창이 살을 뚫는 감촉.

그는 일어섰다. 돌아갔다. 천막으로.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새벽까지 그는 깨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혼자.



II. 불의 해자

1.

1410년 6월. 비스틀라 강.

여름이었다. 태양이 물 위에서 부서졌다. 울프람은 강둑에 서 있었다. 맞은편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었다.

그들이 온다.

망루의 종이 울렸다. 기사단이 집결했다. 울프람도 그들과 함께였다. 반년 전 사모기티아에서 돌아온 후 그는 변했다. 말이 줄었다. 기도도 뜸해졌다.

강을 막아라.

대마이스터 울리히 폰 융겐의 명령이었다. 그들은 강변에 방책을 세웠다. 나룻터를 봉쇄했다. 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그러나 적은 예상과 달랐다. 수가 많았다. 너무 많았다. 폴란드 기사. 리투아니아 경기병. 타타르 궁수. 체코 용병. 심지어 정교회 러시아인들까지.

2.

사흘째 되는 날 적이 움직였다.

상류로 올라갔다. 울프람과 정찰대가 따라갔다. 숲 속으로. 강을 따라. 말발굽이 젖은 땅을 팠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부교였다. 적이 부교를 놓고 있었다. 나무와 밧줄로 만든 다리. 수백 명이 일했다. 개미떼처럼. 질서정연하게.

돌아가 보고해야 한다.

대장이 말했다. 그러나 늦었다. 적의 정찰대가 나타났다. 리투아니아 경기병들. 가죽 갑옷. 가벼운 창. 빠른 말.

교전이 벌어졌다. 숲 속에서. 나무들 사이로 화살이 날았다. 창이 부딪쳤다. 울프람은 한 기병과 맞섰다. 젊은 전사였다. 눈이 맑았다.

그들의 창이 부딪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울프람의 창이 상대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전사는 물러났다. 울프람을 보았다. 무언가 말했다. 리투아니아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조는 알 수 있었다. 저주가 아니었다. 연민이었다.

3.

그들은 돌아왔다. 대마이스터에게 보고했다. 부교. 도하 준비. 예상보다 빠른 진격.

울리히 폰 융겐은 침묵했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나이든 전사. 평생을 싸워온 자.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철수한다.

그가 말했다. 장군들이 놀랐다. 강을 포기한다고? 첫 방어선을?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적이 너무 많았다. 강을 지킬 수 없었다. 그들은 짐을 쌌다. 북쪽으로 철수했다. 말보르크를 향해.

울프람은 마지막까지 강변에 남았다. 후위대였다. 그는 강 너머를 보았다. 부교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곧 적이 건너올 것이다.

태양이 저물었다.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피처럼. 그는 말을 돌렸다. 북쪽으로. 어둠 속으로.

4.

그들은 신앙이 아니라 굶주림을 위해 싸운다.

울프람이 말했다. 모닥불 곁에서. 동료들이 그를 보았다.

무슨 뜻이냐.

한 기사가 물었다. 울프람은 불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춤췄다.

저들을 보라.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타타르인. 러시아인. 무엇이 그들을 묶는가. 신앙인가. 아니다. 땅이다. 부(富)다. 권력이다.

이단적인 소리 마라.

루카스 사제가 경고했다. 울프람은 그를 보았다. 사제의 눈에 광기가 있었다. 신앙의 광기. 혹은 두려움의 광기.

그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울프람이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불만 타올랐다. 나무가 타는 소리. 여름밤의 벌레 소리.

5.

7월이 왔다. 더위가 심했다. 갑옷이 화로가 되었다. 말들이 거품을 물었다.

그들은 계속 북쪽으로 갔다. 적은 따라왔다. 느리지만 꾸준히. 거대한 파도처럼. 막을 수 없는 파도.

마을들을 지나갔다. 주민들이 도망갔다. 텅 빈 집. 버려진 밭. 우물에는 시체가 던져져 있었다. 독을 탄 것이다. 적이 마시지 못하게.

울프람은 한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깊고 어두웠다. 바닥에 무언가 있었다. 아이의 시체였다. 부풀어 있었다. 구더기가 들끓었다.

그는 돌아섰다.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토하지 않았다. 익숙해진 것이다. 죽음에. 썩음에.

6.

드디어 그들은 멈췄다. 탄넨베르크 근처. 넓은 평원이었다. 좋은 전장이었다. 기병이 달리기 좋은 곳.

대마이스터가 결정했다. 여기서 싸운다. 더는 물러나지 않는다. 신의 이름으로.

진영을 세웠다. 방책을 쳤다. 대포를 설치했다. 흑색화약의 냄새가 진동했다. 울프람은 화약통을 보았다. 새로운 무기. 신의 천둥이라 불리는 것.

그러나 그는 의심했다. 신이 천둥을 내리신다면 왜 이런 쇠통이 필요한가. 인간의 교만이 아닌가.

밤이 되었다. 별이 떴다. 울프람은 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차갑게 빛났다. 무관심하게. 마치 인간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내일이면 안다. 그가 생각했다. 신이 누구 편인지. 아니면 신이 있기는 한 건지.



III. 검의 둘째날

1.

1410년 7월 15일. 새벽.

안개가 끼었다. 평원을 덮었다. 울프람은 갑옷을 입었다. 차가운 철이 몸을 감쌌다. 무거웠다. 숨쉬기 힘들었다.

그는 천막을 나왔다. 동료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말에 안장을 얹었다. 창을 점검했다. 검을 갈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루카스 사제가 집전했다. 라틴어 기도. 성체. 성혈. 울프람도 받았다. 빵이 목에 걸렸다. 포도주는 피 맛이 났다.

해가 떴다.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적을. 평원 너머. 끝없이 늘어선 군대.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2.

대열을 짰다. 기사단이 중앙과 우익에. 용병들이 좌익에. 울프람은 우익 제2열에 있었다. 앞으로 동료들의 투구가 보였다. 철의 숲이었다.

태양이 올라갔다. 더워졌다. 갑옷 안에서 땀이 흘렀다. 숨이 막혔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들은 서 있었다. 마주 보고. 천 걸음 거리를 두고. 팽팽한 긴장. 숨막히는 정적.

그때 움직임이 있었다. 기사단 진영에서 두 기사가 나갔다. 말을 천천히 몰았다.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3.

그룬발트의 검이었다.

두 자루의 검을 적장 앞에 꽂았다. 도전의 의미였다. 옛 전통이었다. 명예로운 싸움의 시작.

베라게임, 베라게임. 싸움이 부족하면 이 검으로 보태시라.

사절의 목소리가 평원에 울렸다. 오만한 목소리. 울프람은 그것을 들었다. 불편했다. 왜 도발하는가. 왜 적을 자극하는가.

폴란드 왕이 검을 받았다. 아무 말 없이. 그리고 돌아섰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북이 울렸다. 나팔이 불렸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흙먼지가 별을 가리고, 드디어 첫 창이 부러졌다.

4.

돌격.

울프람은 박차를 가했다. 말이 달렸다. 좌우로 동료들이 함께 달렸다. 땅이 흔들렸다. 천둥소리. 아니, 만 개의 발굽 소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창이 무거웠다. 팔이 아팠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오직 앞으로.

적이 가까워졌다. 폴란드 기사들. 그들도 달려왔다. 거리가 좁혀졌다. 백 걸음. 오십 걸음. 십 걸음.

충돌의 순간. 울프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충격. 온몸을 관통하는 충격. 창이 부러졌다. 말이 비틀거렸다.

그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검을 뽑았다. 주위는 아수라장이었다. 쇠와 쇠가 부딪쳤다. 비명이 터졌다. 피가 튀었다.

5.

태양이 작열했다. 정오의 태양. 무자비한 태양.

울프람은 투구 속에서 끓어오르는 땀의 맛을 삼켰다. 짠맛. 피맛. 목이 말랐다. 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물은 없었다.

그는 검을 휘둘렀다. 한 적병을 베었다. 피가 튀었다. 뜨거운 피. 얼굴에 뿌려졌다. 눈에 들어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말이 쓰러졌다. 창에 찔렸다. 울프람은 땅으로 떨어졌다. 일어났다. 걸었다. 발밑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밟고 지나갔다.

한 폴란드 기사와 마주쳤다. 젊은 기사였다. 화려한 갑옷. 높은 깃털. 그들은 검을 맞부딪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울프람이 이겼다. 검이 상대의 목을 찔렀다.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기사는 쓰러졌다. 울프람은 계속 걸었다. 다음 적을 향해.

6.

오후 2시.

리투아니아 군이 후퇴한다!

외침이 들렸다. 울프람은 동쪽을 보았다. 정말이었다. 리투아니아 경기병들이 돌아서 달렸다. 도망치는 것처럼.

쫓아라! 놈들을 쫓아라!

기사단이 흥분했다. 많은 이들이 추격에 나섰다. 대열이 흐트러졌다. 울프람은 망설였다. 뭔가 이상했다. 너무 쉬웠다.

돌아와! 함정이다!

그가 외쳤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전장의 소음에 묻혔다. 동료들은 계속 적을 쫓았다.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그때 일어났다. 리투아니아 군이 돌아섰다. 도망이 아니었다. 유인이었다. 그들은 다시 돌격해 왔다. 측면에서. 후방에서.

쇳조각이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

7.

대포가 울렸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멈췄다.

울프람은 뒤를 보았다. 기사단의 대포가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포병들이 당황해 했다. 화약이 젖었다. 여름의 습기. 아침의 이슬.

신의 천둥은 침묵했다. 인간의 교만은 부서졌다.

전황이 급변했다. 기사단의 우익이 무너졌다. 중앙도 밀렸다. 포위되어 가고 있었다. 양쪽에서. 앞뒤에서.

울프람은 싸웠다. 기계적으로. 생각 없이. 검을 휘둘렀다. 베고 찌르고 막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적이 너무 많았다.

그때 그는 보았다. 대마이스터의 깃발이 쓰러지는 것을. 검은 십자가의 흰 깃발. 그것이 땅에 떨어졌다. 피에 젖어.

8.

울리히 폰 융겐이 죽었다.

소식이 퍼졌다. 기사단이 무너졌다. 공포가 번졌다. 지휘 체계가 붕괴됐다. 각자 살 길을 찾았다.

울프람도 도망쳤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살고 싶었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는.

그는 북쪽으로 달렸다. 숲을 향해.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이었다. 패잔병들. 부상자들. 겁에 질린 자들.

뒤에서 추격군이 왔다. 타타르 궁수들. 화살이 날아왔다. 옆의 동료가 쓰러졌다. 울프람은 계속 달렸다.

숲에 도착했다. 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어두웠다. 시원했다. 그는 나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살았다. 일단은 살았다.

9.

밤이 되었다.

울프람은 숲 속에 숨어 있었다. 다른 패잔병들과 함께. 열 명쯤 되었다. 부상자가 대부분이었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승리의 함성. 노래. 북소리. 적들이 축하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들이 이겼다.

한 부상병이 신음했다. 배에 창이 박혀 있었다. 피가 계속 흘렀다. 곧 죽을 것이다. 울프람은 그를 보았다. 젊은 기사였다.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였다.

물...

부상병이 속삭였다. 울프람은 물통을 꺼냈다. 비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부상병은 울프람을 보았다. 눈에 공포가 있었다. 죽음의 공포. 그리고 또 다른 것. 배신감. 신은 어디 있는가. 왜 우리를 버렸는가.

울프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모르니까.

10.

새벽이 왔다.

부상병은 죽어 있었다. 눈을 뜬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울프람은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들은 숲을 나왔다. 조심스럽게. 평원이 보였다. 어제의 전장. 이제는 시체의 들판.

수천의 시체. 아니 만을 넘는 시체. 대부분 기사단 병사들. 흰 망토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까마귀들이 모여들었다. 시체를 쪼아 먹었다.

울프람은 그 사이를 걸었다. 동료들을 찾았다. 죽은 동료들.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놀란 얼굴. 고통스러운 얼굴. 텅 빈 얼굴.

그는 무릎을 꿇었다. 기도하려 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산 자를 위한 기도? 아니면 침묵하는 신을 위한 기도?

그는 일어났다. 북쪽으로 걸었다. 말보르크를 향해. 다른 패잔병들과 함께.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IV. 잿빛 길

1.

패주는 길었다.

울프람과 패잔병들은 북쪽으로 갔다. 낮에는 숨고 밤에 걸었다. 적의 추격을 피해. 수치를 피해.

먹을 것이 없었다. 마을들은 비어 있었다. 주민들이 도망갔다. 혹은 숨었다. 우물은 말라 있었다. 밭은 불탔다.

그들은 풀뿌리를 캤다. 나무껍질을 벗겼다. 개구리를 잡았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었다. 그래도 배고팠다.

한 동료가 쓰러졌다. 더는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썩어가고 있었다. 상처가 곪았다. 구더기가 들끓었다.

두고 가자.

누군가 말했다. 울프람은 반대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다수가 원했다. 그들은 동료를 버리고 갔다. 숲 속에. 혼자 죽도록.

2.

비가 왔다. 검은 비였다.

하늘이 열리고 쏟아졌다. 차갑고 끈질긴 비. 옷이 젖었다. 갑옷이 녹슬었다. 발이 진창에 빠졌다.

그들은 계속 걸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멈추면 죽는다. 추위로. 굶주림으로. 혹은 절망으로.

또 한 명이 쓰러졌다. 이번엔 열병이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헛소리를 했다. 어머니를 불렀다. 신을 불렀다.

울프람은 그의 이마를 짚었다. 뜨거웠다. 불타고 있었다.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약도 없고 의사도 없었다.

동료는 밤에 죽었다. 조용히. 울프람이 깨어났을 때 이미 차가웠다. 그들은 시체를 묻지 않았다. 힘이 없었다. 그냥 두고 갔다.

3.

말들이 나타났다.

죽은 말들.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기사단의 군마들. 화살에 맞아 죽었다. 창에 찔려 죽었다. 혹은 탈진해서 죽었다.

썩어가고 있었다. 부풀어 올랐다. 파리가 들끓었다.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춰 섰다.

고기다.

한 병사가 말했다. 그는 칼을 뽑았다. 말의 배를 갈랐다. 내장이 쏟아졌다.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그래도 그는 고기를 잘랐다. 다른 이들도 따라했다. 울프람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픔이 혐오감을 이겼다.

그들은 불을 피웠다. 고기를 구웠다. 썩은 냄새가 났다. 그래도 먹었다. 씹고 삼켰다. 토하지 않으려 애썼다.

4.

숲이 끝났다. 평원이 시작됐다.

멀리 연기가 보였다.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연합군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혹은 다른 패잔병들의 짓이었다.

울프람 일행은 마을로 갔다. 주의 깊게.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텅 비어 있었다. 시체만 있었다.

농부들이었다. 남자. 여자. 아이. 무차별적으로 죽여졌다. 약탈당했다. 집은 불탔다. 교회도 무너졌다.

한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제였다. 제단 앞에 쓰러져 있었다. 목이 잘렸다. 피가 제단을 물들였다.

신이 우리를 버렸다.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울프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제단을 보았다. 십자가가 거꾸로 걸려 있었다. 누군가의 조롱이었다.

5.

그들 중 하나가 미쳤다.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의 병사였다. 어느 날 아침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계속 웃었다. 이유 없이.

왜 웃느냐.

동료가 물었다. 프리드리히는 대답했다.

재밌잖아. 우리가 신의 전사라니. 신이 어디 있어? 봤어? 난 못 봤는데.

그는 계속 웃었다. 다른 이들은 불편해했다. 미친 웃음소리. 그것은 전염성이 있었다. 공포의 전염.

닥쳐!

한 병사가 소리쳤다. 프리드리히를 때렸다. 그래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웃었다.

결국 그들은 그를 버렸다. 길가에. 웃고 있는 채로. 울프람은 뒤돌아보았다. 프리드리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혼자서. 텅 빈 들판에서.

6.

또 다른 마을. 이번엔 사람이 있었다.

농부들이 숨어 있다가 나왔다. 겁에 질려 있었다. 울프람 일행을 보고 더 겁먹었다. 기사단 병사들. 패잔병들.

제발... 우린 아무것도 없어요...

노인이 말했다. 폴란드어였다. 울프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변경에서 오래 지내 배운 것이다.

먹을 것만 좀.

울프람이 말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없었다. 이미 약탈당했다. 여러 번.

그때 한 병사가 움직였다. 칼을 뽑았다. 노인에게 다가갔다.

거짓말하지 마!

병사가 소리쳤다. 칼을 휘둘렀다. 노인이 쓰러졌다. 피가 흘렀다. 다른 농부들이 비명을 질렀다.

7.

싸움이 벌어졌다.

울프람이 말렸다. 다른 병사가 가담했다. 편이 갈렸다. 약탈파와 자제파. 칼이 맞부딪쳤다.

우습게도 그들은 동료끼리 싸웠다. 적이 아니라. 굶주림과 절망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울프람은 약탈파의 리더와 맞섰다. 큰 병사였다. 힘이 셌다. 그들은 칼을 부딪쳤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울프람이 찔렸다. 옆구리를. 깊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가 났다. 그는 비틀거렸다.

동료가 그를 도왔다. 때렸다. 약탈파 리더의 머리를. 곤봉으로. 리더가 쓰러졌다. 피를 흘리며.

신은 우리 방패가 아니라 재가 되었다.

울프람이 중얼거렸다. 피를 누르며. 동료가 그를 부축했다. 그들은 마을을 떠났다. 패배자들. 모든 것의 패배자들.

8.

말보르크가 보였다.

멀리서. 붉은 벽돌의 거대한 성. 기사단의 수도.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 깃발이 펄럭였다.

그러나 포위되어 있었다. 연합군이 둘러싸고 있었다. 천막들이 즐비했다. 포위 병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동료가 물었다. 불가능해 보였다.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울프람은 상처를 만졌다. 곪아가고 있었다. 열이 났다.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자. 어떻게든.

그가 말했다. 그들은 밤을 기다렸다. 어둠을 틈타 포위망에 접근했다. 조심스럽게. 숨죽이고.

그러나 발각됐다. 보초가 그들을 봤다. 경보가 울렸다. 화살이 날아왔다. 그들은 달렸다. 절망적으로.

9.

기적적으로 그들은 성문에 도달했다.

아군이다! 문을 열어라!

그들이 외쳤다. 성문이 열렸다. 그들은 안으로 뛰어들었다. 화살을 피해. 죽음을 피해.

성 안은 난민촌이었다. 부상병. 피난민. 패잔병. 모두가 여기 모여 있었다. 절망의 집합소.

울프람은 쓰러졌다.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다. 동료들이 그를 의무실로 옮겼다. 의사가 왔다. 상처를 보았다.

늦었군.

의사가 말했다. 상처가 너무 깊이 곪았다. 피가 썩어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울프람은 천장을 보았다. 돌로 된 천장. 차갑고 단단한. 신이 있다면 저 너머 어딘가에. 그러나 너무 멀었다. 닿을 수 없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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