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국 황제가 고려국황제에게 서를 보낸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한 지방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으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양국에 조심스럽게 사대를 해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늘의 보우를 받아 거란을 모두 섬멸 하였다. 이에 나와 화친을 하고 형제가 되는 것을 허락 한다면 세세토록 무궁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금태조 아골타의 국서.
고려 중기가 되면 여진족이 크게 성장합니다.
완안부가 등장하면서 여진을 통합하기 시작했죠
완안씨의 완안은 왕 또는 왕자라는 뜻입니다.
금사에 따르면 완안 함보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함보는 고려인이었다라고 합니다.
금나라 선종 연간 중국을 정복하자
상서성에서 금나라 선조가 중국 신화 속
고신씨라는 주장에 대해 논하게 됩니다
이에 금나라의 시조는 고려 사람이지
고신씨라는 것은 낭설이라고 정리하자
금나라 황제는 그 말이 옳다고 합니다.
송막기문에 따르면 신라인이었다 전하며
다른 기록에 따르면 신라 마의태자의 후손이
완안부를 세운 것이라고 전합니다.
다만 설화를 가지고 여진족은 우리 민족이다
이딴식으로 망상을 하면 환빠가 됩니다.
고려 왕실도 중국에 자신들을 소개하며
당나라 숙종의 후손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고려가 중국인이 아니듯
여진족 또한 그러합니다.
서양에서 게르만족, 슬라브 족들이
모두 로마 제국의 후손임을 자청했듯
보다 큰 문명과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위신을 높이는 관행입니다.
당시 여진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 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고려인이라 주장 했단 뜻 이며
여진족이 고려를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단 뜻입니다.
그런 북방의 여진이
고려를 공격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여진족이 고려 국경이 정주성 근방에 이르자
고려의 장수 임간이 이들을 토벌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너무 깊게 들어간 고려군이
여진족의 공격을 받아 패퇴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이 고려 조정에 알려지자
숙종을 비롯해 고려가 크게 놀랐습니다.
과거 100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고려 숙종은 윤관을 사령관으로 삼아
여진에 대한 정벌을 명하였으나
또 다시 고려가 크게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때 숙종은 하늘에 기도를 하며
만약 여진을 토벌 할 수 있다면
그 땅에 사찰을 건축 해 보답하겠다
맹세를 하게 됩니다.
근데 좀 이상합니다
고려가 왜 이렇게 오바 하는 것일까요
여진은 고려의 유일한 속국이기 때문입니다
고려도 그렇게 생각을 하였고
이는 여진도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고려는 거란 황제의 책봉을 받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고려는 외왕내제를 하였음으로
스스로 황제국이라고 자부했습니다.
5등 봉작을 통해 스스로 작위를 주었고
국내 기록에는 모두 황제를 칭했죠
그리고 황제를 칭하려면
반드시 제후국인 번국이 있어야 합니다
여진은 고려의 유일한 제후국이었습니다.
* 숙종 시기 탐라국은 흡수 합병되었죠
고려는 여진을 2개로 나눠서
동여진을 "동번" 서여진을 "서번"이라 했습니다
고려 숙종의 입장에서 여진은
고려의 마지막 자존심과 같은 상징입니다.
윤관이 와서 패배의 원인을 보고 하기를
여진은 기병인데 고려는 보병이라
전투에 불리함이 있다 하였음으로
기병을 본격 육성하기로 하니 그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별무반" 이죠
기존의 경군, 친위군, 지방군 등 무반이 아닌
별무반 별(別)도의 무반(武班) 이란 뜻입니다
즉 특별 원정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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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朕: 고려 예종)이 지금 다행스럽게도 달제(達制)를 마치고 국사(國事)를 보게 되었으니, 어찌 의로운 깃발을 들어 무도함을 정벌하여 아버지의 치욕을 완전히 씻지 않겠는가?’라 하셨다. 이에 명령하여, 수사도 중서시랑평장사(守司徒 中書侍郞平章事) 윤관을 행영대원수(行營大元帥)로 삼고,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知樞密院事 翰林學士承旨)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元帥)로 삼아, 정병(精兵) 300,000 명을 거느리고 정벌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 《고려사 열전, 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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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정벌을 맹세하였던 숙종은
서경을 순시하다 병을 얻어 죽었고
이후 3년 상을 치르며 원정은 잠시 중단 됩니다
그의 아들이 예종이 즉위 하여 상을 마치자
아버지가 남긴 유조를 꺼내어 보여주며
고려 조정에서 여진 토벌을 다시 맹세하니
고려의 여진 정벌이 시작됩니다.
당시 20만 대군 또는 30만 대군이라 칭하였는데
정확하게는 17만 8천명의 병력이었습니다.
이는 과장 된 기록이 아니라
각 장수들이 거느린 병력의 수가 기록에 있습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면
중국의 왕조들은 그냥 100만 대군을 칭합니다
오히려 더 뻥튀기 하는게 정상인데
고려는 그렇게 안 했습니다.
시작은 피의 결혼식으로 했습니다.
화친을 위해 사로잡은 여진족을 풀어주겠다며
여진족 추장 400여명을 불러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두 몰살해 버렸죠
의도를 의심을 하여 연회장 밖에 있던 여진족도
척준경이 기병을 동원해 모두 쓸어 버렸습니다
이는 이후 큰 나비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룻밤에 여진족 수뇌부를 몰살 시키자
동북면 여진족 사회가 곧 혼란에 빠졌고
고려군은 이것을 신호로 본격 토벌에 나섭니다
고려 17만 대군은 총 4개 방향으로 동시 타격을 했고
고려군이 지날 때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었다 합니다
이를 보고 여진족들이 먼저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동북면의 여진족 마을들은 모두 초토화 되었습니다
단 한달만에 여진족을 모두 토벌하고
해당 지역에 9개의 성을 쌓았으니
그게 지금도 논란인 고려의 동북 9성입니다.
총사령관인 윤관은 고려 조정에 표문을 올려
이 모든 공적을 고려 국왕에게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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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주나라 왕이 험윤(玁狁)을 친 일과 한나라 황제가 흉노(凶奴)를 정벌한 것은 강토를 개척하고 백성의 피해를 없앴던 쾌거였으나 그것조차 오늘의 승리(고려의 여진정벌)에 비교하면 하찮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가 어찌 보잘것없는 신의 얕은 지혜와 둔한 재질에서 이룩된 것이겠습니까? 이야말로 폐하(고려 예종)의 거룩한 계책과 신령스러운 전략으로 조정에 앉으신 채 먼 변방을 안정시키신 결과이니 진실로 그렇지 않았으면 누가 이 일을 이루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청사에 그 업적이 빛나게 하옵소서" -고려사 열전 윤관조.----
여진 정벌을 성공 시킨 당사자는 본인이지만
이 업적을 이룬 것은 모두 고려 예종 덕분이란 뜻이죠
자고로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처음 여진 정벌을 맹세한 숙종의 유조를 받들어
해당 지역에 절을 2개나 창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윤관은 당당하게 돌아와 개선 했습니다
고려 조정과 국왕 예종은 윤관을 비롯한 원정군을
크게 치하하며 포상했고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이어 고려는 사민정책을 실시하여
7만 5천 호가 넘는 인구를 동북면이 이주 시켰죠
개척한 영토를 완전히 편입 시키려는 것입니다
동북 9성의 외성을 보강해 만들어
이주한 백성을 보호하려는 조치도 했습니다.
완안부 수장인 완안오아속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17만 대군이 단숨에 쓸어 버린 것도 그러하고
만약 고려가 거란과 함께 동시에 친다면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완안부는 끝장이죠
이때 동생인 완안아골타가 반격을 주장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 하고 또 이런 모습을 다른 부족이 안다면 그때는 진짜로 우리 부족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 한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부족이 멸망하는데
반격해서 싸워야만 희망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훗날 금나라를 건국한 금태조 완안아골타입니다
여진족은 윤관이 철수하자 마자
동북 9성을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고려의 오판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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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조정에서는 병목 지역을 취해 그 길을 막으면 오랑캐에 대한 근심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들 말했는데, 막상 공격하여 빼앗고 보니 수륙으로 도로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 전에 들은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근거지를 잃게 된 여진은 보복을 다짐하는 한편, 땅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면서 추장들이 해마다 와서 분쟁을 벌였다. 온갖 속임수를 쓰고 갖은 무기를 동원해 공격해 왔는데, 성이 험하고 견고해 좀처럼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수비하는 전투에서 아군이 많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개척한 땅이 너무 넓고 9성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며 계곡과 골짜기가 험하고 깊어서, 적들이 자주 복병을 두어 왕래하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였다. -고려사 윤관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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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동북 9성을 개척할 때에는 길목을 틀어 막으면
방어가 쉬울 것이라 판단을 하고 정벌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9성을 쌓고 보니
그런 병목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방에서 쳐들어왔죠
그리고 9성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성과 성을 왕래하는 길도 너무 길었고
그 길은 여진족의 쉬운 약탈 대상이 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은 원래 발해의 영토였습니다
그리고 발해 유민들은 고려에 대거 귀부했죠
고려가 해당 지역을 편입하려 한 이유는
이런 발해계에 대한 믿음도 분명 있었겠죠
근데 발해가 망한 지 단 2세대가 지나자
해당 지역에 대한 정보는 완전 사라진 것입니다
지역의 지리를 모르면 지역민에게 들어야 하는데
그 정보를 줄 수 있는 여진족은 원정 시작과 함께
전부 죽여 버렸기 때문에 이제 없습니다.
반면 여진족은 생존이 걸렸음으로
필사적으로 고려의 성을 공격했습니다.
다행이 성은 함락이 안되었다고 하나
매번 전투를 지속하여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농업과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여진족과 수 많은 전투를 벌이던 중
길주성이 여진족에게 포위 되었단 소식을 듣고
오연총이 고려군을 이끌고 구원을 갔습니다
이때 여진족 기병대와 고려군 기병이
회전을 크게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여진 장수 사묘아리의 엄청난 활약으로
3차례 회전 끝에 고려군 7만이 격파를 당했습니다.
공험진, 갈라수 전투입니다
이 패배의 결과로 고려 조정의 입장도 바뀝니다
동북 9성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피해가 크기에
회의감을 품으로 부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완안부에서 사신을 보내 옵니다.
이때 사신이 전달한 내용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 대국 고려로 부터 나왔으니 자손 대대로 고려에 귀부하는 것이 의리에 맞는 일입니다. 지금 완안오아속은 대국인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기며 섬기고 있습니다. 근데 갑진년 궁한촌 사람들이 완완부에 복종하지 않아 이들을 단지 혼내주려 했을 뿐인데 고려에서 국경을 침범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였고 곧 수호를 하였습니다. 이후 우리는 고려를 믿고 조공을 꾸준히 바쳐왔는데 생각지도 못 하게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우리의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9성을 설치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살 곳이 없어졌습니다. 만약 이 9성을 되돌려 주어 우리가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 허락해 준다면 우리는 하늘에 맹세하여 자손 대대로 고려에 조공을 공손하게 바칠 것이며 감히 고려에 기와 조각 하나도 던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고려사 윤관 열전
고려가 처음 여진족을 정벌한 이유는
유일한 제후국임으로 이들을 복속 시키기 위함인데
여진족이 다시 공손하게 나오며 복속을 자청하니
그 가장 큰 명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더불어 직전에 벌어진 큰 패전으로
향후 동북 9성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죠
결국 고려는 여진에게 9성을 되돌려주고
모든 물자와 사람을 철수 시키라 명합니다
결국 고려의 여진 정벌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윤관은 돌아와 패전의 책임을 지고
공신 칭호를 박탈 당하게 되었습니다.
공을 세운 것은 왕의 업적이지만
과오를 만든 것은 신하의 책임입니다.
드러운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것이죠
더불어 이 전쟁의 결과로
여진족 완안부는 모든 부락을 제패하며
한층 도약해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고려가 여진 정벌을 시작하며
여진족 부족장을 모두 학살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반대로 완안부에 대항하는 적수가
여진족 내부에서 모두 사라졌음을 뜻하며
고려의 동북 9성을 완안부가 돌려 받았으니
완안부는 여진족을 구원한 영웅이자
이들 지역은 이제 모두 완안부 수하가 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완안오아속을 이어
동생 완안아골타가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한편 가장 중요한 논쟁이 남았습니다.
대체 동북 9성의 위치가 어디냐? 입니다
학계에서 여전히 심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
어떤 것이 맞다고 정의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중 함흥 평야설은 폐기된 이론입니다
그 중에 다수설은 길주 이남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훗날 세종의 4군 6진이 개척 되
오늘날 한반도 국경이 만들어졌다 봅니다
이 기나 긴 논쟁이 종식이 되려면
이 유적이 반드시 발견 되야 합니다
윤관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세운 뒤
그 경계를 정한다며 세운 "선춘령비" 입니다.
동북 9성의 최북단 성이라는 공험진이
대체 어디에 있는 성인지
비석을 세웠다는 선춘령이 어디인지
현재 고고학적으로 아무것도 밝혀진게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발견된다면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인 발견이 됩니다
현재는 미스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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