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는 노래 -창작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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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침묵의 첫날

1

새벽 다섯 시 십칠 분.

최진우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DJ의 목소리가 끊긴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구두 수선 작업대 위의 낡은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던 저음의 멘트가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듯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정적.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전파 잡음만이 남았다.

처음엔 방송 사고라고 생각했다. 주파수를 돌렸다. 모든 채널이 죽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맞은편 24시간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문을 열고 나와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반복하는 모습이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같았다.

진우는 작업용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의 찬 공기가 폐를 찔렀다. 거리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모두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목을 쥐고, 가슴을 두드리고.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발자국 소리는 들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자동차 엔진 소리도 여전했다. 오직 인간의 목소리만이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진우가 중얼거렸을 때, 편의점 알바생이 그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알바생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공포와 경이가 뒤섞인 표정. 그가 진우를 가리키며 입을 벌렸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알바생이 따라왔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진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망과 갈망이 공존했다.

2

진우는 작업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리듬이 없는 타격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자들의 간절한 노크.

그는 작업대 아래 숨어 무릎을 끌어안았다.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저주가 될 줄은 몰랐다.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수십 개의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아도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말이 안 나와요병원 가는 중당신도 그래요?도와주세요제발

뉴스 앱을 열었다.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곧 업데이트가 멈췄다. 아나운서도, 기자도, 모두가 목소리를 잃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올라온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속보] 전국적 실성증 발생, 원인 불명

진우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왜 나만? 왜 나는 여전히 말할 수 있는가?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도시가 깨어날 시간. 그러나 오늘 이 도시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될 것이다. 목소리 없는 도시. 침묵의 도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거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카드보드에 매직으로 쓴 글씨들.

의사 있습니까?가족을 찾습니다기도합시다왜?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소리 없는 울음.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이 흘렀지만, 흐느낌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3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도시는 이미 다른 질서로 재편되고 있었다.

진우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거리로 나섰다. 말을 하지 않는 한, 자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을 들킬 일은 없었다. 그는 도시의 변화를 관찰했다.

지하철역 입구에는 역무원이 화이트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운행 중단. 기관사 의사소통 불가.

백화점 앞에서는 직원들이 손짓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가격표 옆에는 새로운 표시들이 붙어 있었다. 동그라미는 '예', 엑스는 '아니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의사들이 수화를 모른다는 것이 이렇게 치명적일 줄은.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입 모양을 읽으려 애썼지만, 대부분은 실패했다. 응급실 앞에는 목을 움켜쥔 채 쓰러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이 겪는 것이 육체적 고통인지, 정신적 공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찰서 앞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 남자가 자신의 범죄를 종이에 적어 자수하고 있었다. 아내를 죽였습니다. 3년 전입니다. 뒷산에 묻었습니다. 경찰은 그를 연행했지만, 취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진우는 공원 벤치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목소리의 상실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의 문제였다. 목소리 없이 우리는 누구인가?

한 노파가 그의 옆에 앉았다. 주름진 손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가 다시 적었다.

제 손자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했어요. 이제 모두가 그 아이처럼 되었네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그것이 슬픔인지 안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4

해가 기울 무렵,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됐다.

한 청년이 거리 한복판에서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긁었다. 손톱에 피가 묻어났다.

그때, 그의 목에서 무언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혹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피부를 뚫고 나왔다. 하얀색의 가늘고 긴 것. 뼈?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청년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소리가 났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휘파람 소리였다. 아니, 플루트 소리에 가까웠다. 그의 목에서 자라난 것은 일종의 관악기였다.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은 울렸다.

사람들은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 그들 중 일부도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목을 움켜쥐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리고...

도시는 기괴한 악기들의 불협화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진우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그들이 알아낸다면? 여전히 목소리를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 그는 낯익은 얼굴을 봤다. 맞은편 초등학교의 교사, 채하연. 그녀는 학교 담장에 기대어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진우가 다가가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목에는 아직 아무것도 돋아나지 않았다. 그녀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당신도... 아직인가요?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그러나 필요한 거짓말이었다.

하연이 다시 적었다.

무서워요

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떨리는 손. 그가 쓸 수 있는 위로의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삼켰다. 대신 그녀의 수첩을 빌려 적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것이 또 다른 거짓말이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제2부. 몸의 변주

1

둘째 날 새벽.

진우는 작업실 바닥에서 잠을 깼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것은 도시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수백, 수천의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것 같은. 그러나 그것은 악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들어 올렸다.

거리는 악몽이었다.

한 남자가 네 발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의 등에서는 거대한 현악기 구조물이 솟아 있었다. 척추를 따라 늘어선 현들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울렸다. 디링, 디링.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여자는 자신의 팔뚝을 쓰다듬고 있었다. 팔뚝의 피부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금속성의 관이 돋아났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관은 낮은 음을 냈다. 부우웅.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눈물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소년의 가슴에서는 작은 심벌즈 같은 것들이 자라나 심장 박동에 맞춰 부딪쳤다. 차앙, 차앙. 리듬은 불규칙했고, 소년은 그 소리에 맞춰 경련하듯 춤을 췄다.

진우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이 광경이 점차 '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진우가 돌아보니 문틈 사이로 종이가 밀려들어왔다.

나예요. 채하연.

2

진우는 문을 열었다. 하연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밤새 많이 변해 있었다.

그녀의 목에서 쇄골에 이르는 부분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피부 아래로 무언가가 형성되는 것이 보였다. 가느다란 선들. 그것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현악기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하연이 수첩을 들어 보였다.

아파요. 그런데 이상해요. 아픈데 좋아요.

진우는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그녀가 의자에 앉자, 목에서 미세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의도하지 않은 소리. 그녀의 몸이 스스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우는 펜을 들었다.

언제부터?

오늘 새벽 3시쯤. 목이 간지러웠어요. 긁었더니...

그녀가 목을 만졌다. 현들이 울렸다. 미려한 화음. 그녀의 눈이 잠시 감겼다가 떠졌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표정에 스친 것은 분명 쾌락이었다.

통제가 안 돼요. 몸이 소리를 원해요.

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아직 인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하연이 그를 올려다봤다. 눈빛에 의문이 서려 있었다.

당신은 왜... 아직도?

위험한 질문이었다. 진우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 찬장에서 붕대를 꺼냈다. 그녀의 목에 감으려 했지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요. 이미 시작됐어요.

3

오후가 되자 도시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다. 대신 거리로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자라난 악기들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소리를 교환했다. 그것은 일종의 새로운 언어였다. 음높이로 감정을, 리듬으로 의미를 전달했다.

광장에는 즉흥적인 '연주회'가 열렸다. 처음엔 혼란스러운 불협화음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는 법을 배웠다. 화음을 만들고, 멜로디를 주고받았다.

진우와 하연은 건물 옥상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봤다. 하연의 목에서는 이제 뚜렷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막을 수 없었다.

그녀가 수첩에 적었다.

보여요. 아니, 들려요. 사람들의 감정이. 저 사람은 슬퍼요. 저 사람은 화가 났어요. 저 사람은...

그녀가 펜을 놓았다. 더 이상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현이 복잡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언어를 초월한 무언가였다.

진우는 불안했다. 하연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저 아래 광장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그때, 광장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파이프들이 솟아 있었다. 크고 작은 오르간 파이프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장엄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마치 그가 무언의 신호를 보낸 것처럼.

4

날이 저물 무렵, 하연의 변화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그녀의 목과 가슴 부분이 완전히 투명해져 내부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심장에서 뻗어 나온 혈관들이 현을 진동시키는 활대 역할을 했다. 맥박에 따라 음악이 바뀌었다. 빠르고 격정적인 알레그로에서 느리고 애잔한 아다지오까지.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모든 생각과 감정이 음악으로 표현됐다. 진우가 무언가를 묻고자 몸짓을 하면, 그녀는 선율로 대답했다. 상승하는 음계는 긍정을, 하강하는 음계는 부정을 의미했다.

진우는 그녀의 변화를 지켜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두려움, 연민, 그리고 묘한 질투까지. 그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통을 넘어선 무언가로. 그런데 자신은? 여전히 낡은 육체에, 낡은 목소리에 갇혀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거리의 '음악'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패턴이 있었고, 구조가 있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연이 일어섰다. 그녀의 눈빛이 간절했다. 창문을 가리켰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표시였다. 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돌아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현이 그 어느 때보다 애절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작별의 노래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문을 나섰다. 진우는 따라가지 못했다.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정상'이었으므로.



제3부. 무음 오케스트라

1

셋째 날.

도시는 이제 거대한 콘서트홀이 되어 있었다. 건물들은 음향 반사판이었고, 거리는 무대였으며, 모든 시민이 연주자였다. 그리고 중앙 광장에는 '그'가 있었다.

지휘자.

진우는 망원경으로 그를 관찰했다. 한때 인간이었을 그 존재는 이제 살아있는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얼굴이 있던 자리에는 크고 작은 관들이 솟아 있었고, 그것들은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 아니, 그것을 팔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도시 전체의 '음악'이 그에게 반응했다.

광장 주변에는 이미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관악기로 변한 자들이 안쪽에, 현악기들이 중간에, 타악기들이 바깥쪽에. 완벽한 오케스트라 배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하연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상반신 전체가 투명한 현악기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심장이 뛰는 것이 훤히 보였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에 따라 현들이 진동했고, 그것은 주변의 다른 '악기들'과 공명했다.

지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고 장엄한 동작. 그에 맞춰 전체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2

첫 번째 화음이 울렸을 때, 진우는 창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힘이었다. 음파가 공기를 때렸고, 건물을 흔들었고, 땅을 진동시켰다. 몇몇 유리창이 깨졌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연주'에만 몰두했다.

두 번째 화음. 더 강하고, 더 복잡했다. 이번에는 가로등이 휘어졌다. 아스팔트에 금이 갔다. 그러나 음악은 계속됐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광장 가장자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직 완전히 '변화'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목에 작은 피리 구멍만 뚫렸거나, 손가락 끝에 작은 탬버린이 달린 정도. 그들은 거대한 합주에 동참하려 했지만, 그들의 소리는 너무 약했고, 리듬도 맞지 않았다.

불협화음.

지휘자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그의 파이프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그리고 낮고 깊은 음을 냈다.

부우우웅.

경고였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시도했다. 맞지 않는 박자, 틀린 음정.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는 소음.

지휘자가 다시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날카롭게.

끼이이익.

그들 중 한 명이 귀를 막고 쓰러졌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다른 이들도 비틀거렸다. 그러나 지휘자는 멈추지 않았다. 음파는 점점 강해졌고, 불협화음을 낸 자들은 하나둘 무너졌다.

그들의 불완전한 악기들이 깨졌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겠지만, 그들에게는 목소리가 없었다. 오직 깨진 악기의 불쾌한 잡음만이 흘러나왔다.

곧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광장은 다시 '완벽한' 화음으로 채워졌다.

3

진우는 몸을 떨었다. 저것이 새로운 법칙이었다. 함께 연주하거나, 죽거나.

그런데 자신은? 목소리를 가진 자신은 저들에게 무엇으로 보일 것인가? 궁극의 불협화음? 제거되어야 할 잡음?

그는 작업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러나 밖의 음악은 점점 커졌다. 벽을 뚫고, 바닥을 뚫고, 그의 고막을 때렸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진동이 뼈를 통해 전달됐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리듬이 있었다. 음악의 박자에 맞춘 노크. 진우는 숨을 죽였다.

쿵. 쿵. 쿵.

더 크게. 문이 흔들렸다. 그리고 문틈으로 종이가 들어왔다.

나와요. 당신이 필요해요.

하연의 필체였다. 아니, 하연이었던 것의.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이 가진 것.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것이 필요해요.

또 다른 종이.

지휘자님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마지막 악기. 가장 오래된 악기. 목소리.

진우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미끄러져 앉았다. 그들이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와요. 그러면 아프지 않을 거예요. 함께해요. 완전해져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진우는 그들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올 때까지. 혹은 그들이 들어올 때까지.

4

밤이 되자 음악은 절정에 달했다.

도시 전체가 울렸다. 건물이 흔들렸고, 땅이 갈라졌다. 어딘가에서는 폭발음이 들렸다. 가스관이 터진 것일까, 아니면 음압에 못 이긴 무언가가 붕괴한 것일까.

진우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가서 맞설 것인가.

그는 일어섰다. 작업대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집어 들었다. 목소리를 없애면 될까? 성대를 자르면? 그러면 저들과 같아질 수 있을까?

칼날이 목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한 번만 그으면 된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이었다. 인간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 그것마저 포기한다면, 그는 무엇이 되는가?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들어왔다. 하연이 앞에 있었다. 그녀의 투명한 몸에서 현들이 빛났다. 그녀 뒤에는 수십 명의 '악기들'이 있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텅 빈 눈구멍으로, 혹은 악기로 변한 안면으로.

하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현이 부드러운 멜로디를 만들었다. 유혹의 노래. 함께하자는 노래.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노래.

진우는 뒷걸음질 쳤다. 막다른 벽에 닿을 때까지.

그리고 그때, 그는 결심했다.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작고, 떨리는, 그러나 분명한 인간의 목소리.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그들의 소리가 폭발했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불협화음. 진우는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말했다.

"나는... 인간이야!"

목소리와 악기의 전쟁이 시작됐다.



제4부. 해방의 음고(音高)

1

진우의 목소리는 칼날이었다.

"나는 말한다! 나는 숨 쉰다! 나는 존재한다!"

각각의 단어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악기들의 화음에 균열을 냈다. 그들은 더 크게, 더 격렬하게 연주했지만,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을 뚫고 나갔다.

인간의 목소리가 가진 원초적인 힘. 그것은 어떤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숨과 살과 영혼이 만들어내는 진동.

하연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현이 애절한 선율을 그렸다. 제발, 멈춰달라는 호소. 그러나 진우는 멈추지 않았다.

"하연아! 너는 하연이야! 초등학교 선생님! 아이들을 사랑했고, 매일 아침 해바라기를 보며 출근했던!"

하연의 연주가 흐트러졌다. 그녀의 투명한 몸속에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기억.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그녀를 흔들었다.

다른 악기들이 그녀를 밀어내고 진우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소리는 이제 물리적인 공격이었다. 음파가 칼날처럼 그의 피부를 베었다. 진우는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지만, 계속 말했다.

"너희는... 모두... 사람이었어..."

2

그때 지진이 일어났다.

아니, 지진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의 공명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건물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두 폭발했다. 산산조각 난 유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진우는 팔로 얼굴을 가렸다. 유리 파편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파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고층 빌딩이 흔들렸다.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철골이 비명을 질렀다. 도시가 무너지고 있었다. 음악에 취한 채로.

그러나 연주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음악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파괴의 교향곡에 자신들을 바치고 있었다.

진우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작업실 한구석에 있던 칼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제 정말로 끝내야 했다. 이 목소리를. 이 저주를.

그가 칼을 목에 대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하연이었다.

3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의지가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투명한 가슴 속에서 심장이 뛰고 있었다. 현들 사이에서, 악기가 되어버린 몸 안에서, 그러나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녀가 진우의 손을 끌어 자신의 현 중 하나에 대게 했다. 가장 굵고 팽팽한 현. 그녀의 생명과 직결된 현.

진우는 이해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안 돼."

그러나 그녀는 미소 지었다. 악기가 되어버린 얼굴로, 그러나 분명한 인간의 미소를.

그녀가 힘을 주어 현을 당겼다. 팽! 현이 끊어졌다.

그 순간, 그녀의 몸 전체가 경련했다. 다른 현들도 연쇄적으로 끊어지기 시작했다. 팽, 팽, 팽. 각각의 소리와 함께 그녀의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파괴가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의 다른 악기들도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관악기들은 숨구멍을 막았고, 타악기들은 자신의 막을 찢었다.

음악이 무너졌다. 거대한 화음이 불협화음으로, 불협화음이 침묵으로.

4

지휘자가 광장에서 포효했다.

그의 거대한 파이프들이 일제히 울렸다. 명령이었다. 계속 연주하라는. 멈추지 말라는.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하연이 진우의 품에서 무너졌다. 그녀의 투명한 몸이 점점 불투명해졌다. 악기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진우는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도시 전체가 흔들렸다. 음악의 붕괴가 가져온 반작용이었다. 광장이 갈라졌다. 지휘자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지휘자는 마지막까지 지휘했다. 존재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를 향해, 사라져가는 음악을 향해. 그의 파이프들이 하나둘 부러지고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진우는 하연을 안은 채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봤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악기에서 인간으로. 그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되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시 인간이 되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침묵의 새벽. 그러나 이제는 다른 침묵이었다. 강요된 침묵이 아닌, 선택한 침묵.

진우가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살아있어."



제5부. 잔향과 공허

1

일주일이 지났다.

도시는 폐허 위에서 서서히 재건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과 같은 도시가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몸짓과 글로 소통했다. 모두가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진우는 임시 병원이 된 체육관에 앉아 있었다. 하연은 그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현이 자라났던 자리에는 깊은 흉터가 남았고, 가끔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몸짓을 했다.

의사들은 – 이제는 필담으로만 진료하는 –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성대는 멀쩡했다. 발성기관에는 아무런 물리적 손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인류가 집단적으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진우만이 여전히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너무나 무거운 것이 되어버렸다.

2

어느 날 밤, 하연이 수첩에 글을 썼다.

가끔 들려요. 제 안에서. 음악이.

진우가 답했다.

무서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워요.

그것은 진실이었다.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악기였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때의 완전함을. 타인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던 순간들을.

일부는 스스로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짜 악기를. 바이올린, 플루트, 드럼. 그들은 연주를 배웠다. 서툴고 어설펐지만,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음악이었다.

하연도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현을 누를 때마다 떨렸다. 마치 자신의 일부를 다시 만지는 것처럼.

3

지휘자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광장의 균열은 너무 깊었고, 그의 거대한 몸은 그 안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일부 사람들은 밤중에 땅속에서 울리는 오르간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낮고 깊은, 죽은 자의 음악을.

진우는 가끔 그 광장을 찾았다. 균열은 콘크리트로 메워졌지만, 그 아래에서 무언가가 여전히 맥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은 연주. 영원한 침묵 속의 음악.

그런 날이면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듣고 있나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말했다. 죽은 자들을 위해,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4

계절이 바뀌었다.

도시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했다. 학교에서는 수화가 필수 과목이 되었다. 방송국은 자막 방송만을 내보냈다. 거리의 표지판들은 모두 시각적 신호로 바뀌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영원히 사라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연인들의 속삭임. 어머니의 자장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진우는 여전히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다. 손님들은 종이에 요구사항을 적어 왔다. 그는 묵묵히 일했다.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모르는 옛 노래들을. 그의 목소리만이 기억하는 선율들을.

하연은 초등학교로 돌아갔다. 말 없는 아이들에게 말 없는 수업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이올린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진우에게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툴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그녀가 연주를 마치고 수첩에 적었다.

이게 제 새로운 목소리예요.

5

그리고 또 어느 날 밤.

진우는 작업실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라디오는 여전히 작업대 위에 있었다. 전원은 꺼진 채로. 그것을 켤 이유가 없었다. 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최진우입니다."

작업실의 벽이 그의 목소리를 흡수했다.

"나는 스물아홉 살이고, 구두를 고칩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나는 말합니다. 누가 들을 수 있든 없든. 왜냐하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창밖을 보았다. 침묵의 도시가 잠들어 있었다. 별들만이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니까요."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속삭임이 되었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 다시 대답할 날이 올 겁니다. 그날까지 나는 말합니다. 이 목소리가 쇳소리가 될 때까지.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는 눈을 감았다.

"우리는 목소리를 잃었지만, 노래는 잃지 않았습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여전히..."

말이 끊겼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무언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노래. 목소리 없는 노래.

도시는 침묵 속에 잠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침묵이 아니었다. 기다림의 침묵이었다. 언젠가 다시 올 소리를 위한.

그때까지, 진우는 말할 것이다. 홀로,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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