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Hein de Haas 교수의 How Migration really Works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한국어번역은 좀 뜬금없는데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네요... 좀 의아한 제목입니다.
작년 How Democracies Die가 제일 짜릿하게 읽었던 책이었다면-얘도 읽고 나서 한국어판 있는거 보고 땅을 쳤네요.- 금년의 책은 이 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헤인 데 하스 교수가 워낙 세계구급 사회학자인데가 이주파트만 한우물 판 분이라서 통찰이 장난 아닙니다.
아무튼, 이 양반 책을 보다가 어디서 들어봄직한 사건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 마리엘 사건.
내용은 이렇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쿠바의 경제가 개판납니다. 그런데 1980년 갑자기 일군의 쿠바인들이 쿠바의 남미국가들, 특히 페루와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의 대사관에 밀고 들어옵니다. 쿠바를 떠나고 싶다고 망명신청을 한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망명시도에 긁혀버린 피델 카스트로가 강공을 던집니다. "얘네들 어차피 백수lumpen이고 혁명정신 따위는 찾아볼래도 없는 잉여새끼들임. 그냥 꺼지라고 함." 많이 긁혔는지 고난의 행군시절 북한처럼 '비겁한자야, 갈테면 가라.' 해버립니다. 곧 정신을 차린 피델 카스트로는 이번 기회에 쿠바를 사회정화social cleansing하겠다는 전대갈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전대갈은 삼청교육대 같은 해괴한 괴롭힘으로 사회정화를 시켰다면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동성애자들, 범죄자들을 아예 내보낼 생각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미 국가들의 대사관으로 몰려듭니다. 특히 페루 대사관이 심각했는데 나중에는 축구장 크기 정도 되는 대사관저에 2000명이 몰려들어 우글거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화장실은 터져나갔고요.
아주 많이 긁혔던지 피델 카스트로는 여기에 한발짝 더 나아가 쿠바에 있는 마리엘 항구를 아예 개방해버립니다. 즉 쿠바를 뜨고 싶은 얘들은 마리엘항구가 유일한 출구이니 알아서 빠져나가라, 이거지요. 사실 이는 피델 카스트로의 신의 한수였습니다.
마리엘 항구 맞은편에 미국 플로리다가 떡하니 있거든요. 쿠바 혁명 이후 이주한 쿠바 반동분자들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피그만 침공 때 죽을 쓰는 등 찬밥신세였던 반동들은 이번 기회에 같은 반동들을 플로리다로 이주시킬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마치 덩케르크 탈출처럼 수많은 쿠바계 미국인들-정확히는 플로리다 사람들이 배를 몰고 와서 마리엘에서 탈출자들을 실어나릅니다.
그렇게 쿠바를 빠져나간 숫자가 물경12만명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플로리다로 유입됩니다.
카스트로의 영악한 계획대로 상당수의 범죄자들이 여기에 묻혀 갑니다.
이를 다룬 영화가 바로....
1983년 알파치노의 제대로 된 미친놈 연기가 빛을 발한 스카페이스입니다. 영화에서 알파치노는 그렇게 마리엘에서 탈출한 난민, 이른바 마리엘리토스로 묘사됩니다.
국제정치나 중남사에서 이 사건은 꽤 유명하지만 의외의 영역에서도 유명합니다. 그 의외의 영역이 바로 경제학.
왜냐? 플로리다처럼 적은 인구밀도의 제한적 지역에 단기간에 십만명에 달하는 노동인구가 급속히 유입되는 사례이니까요.
경제학자들은 이 케이스를 파다가 깜짝 놀랍니다.
특히 202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데이빗 카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저숙련 이주노동자들의 대거 유입이 당연히 지역의 저숙련 노동자 임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론은 거의 영향없음. 심지어 쿠바출신 임금노동자의 임금조차 약간만 내려갔다가 다시 정상화.
이 이례적인 현상으로 말미암아 혹시 이주가 노동비용의 절감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거 아냐? 하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주노동력의 증가가 노동시장의 공급과잉을 불러와서 당연히 임금하락으로 가는게 맞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왜냐? 제가 읽고 있는 데 하스 교수에 따르면-일단 이 양반 경제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임을 염두에 둡시다.- 이주노동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입니다. 즉 노동시장의 노동가격을 결정짓는 요인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노동가격의 영향을 받는 쪽이라는 겁니다.
이 부분이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던 부분이고 제가 마리엘 케이스를 조사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데이빗 카드나 데 하스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꽤 정부 입김이 작용하지요. 즉 일부 정치인들이 시도하듯이 이중노동가격제를 적용하면, 그러면 좀 문제가 생깁니다. 즉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 면제를 하면 내국인 실업율이 당연히 상승하겠지요. 카드나 데 하스는 서구의 기준, 즉 임금차별이 없는 상황을 전제한 논의입니다.
아무튼 며칠전 도서관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는데 상당히 신세계를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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