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중입니다

69 0 0 2025-10-18 01:4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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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은 일종의 죽음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며, 

사랑받았던 자신의 죽음이고, 

둘이서 창조했던 한 세계의 죽음인 동시에 

그토록 꿈꿨던 이상적인 사랑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연은 때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젊은 베르테르가 실연당한 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카미유 클로델이 로댕과 결별한 뒤 정신병원에 갇혀 

비운의 생을 보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실연은 분명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커다란 고통 중 하나다. 

많은 연인이 헤어진 후 

눈물과 고통으로 밤을 지샌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종종 마주하는 

이 험난한 산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얻어가게 될까.

 
실연의 산을 한번 넘어선 사람은 

앞에 놓인 또 다른 산을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생길 것이다. 

산속에서 무엇을 만나는지 알게 됐기 때문에 

다음 산행에서 예상된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산이 오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시야도 생긴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발견한 가치를 토대로 

다음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릴 때 

자아가 수축하고 감소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랑할 때 느낀 충만함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것이다. 


사랑 중에 느꼈던 합치의 희열은 반대로 

실연 후의 외로운 자아를 더욱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연인이 함께 만든 '우리'라는 세계는 

이제 '나'라는 원소로 환원된다. 

자신만이 상대방의 유일한 사랑이라 여겼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고갈되고 무가치하며 무의미한 자신만이 홀로 남는다. 

실연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자아 중심부를 강타하여 

그것을 흩트리고 부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실연의 감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실연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헤어짐은 사랑이 시작할 무렵에도, 

사랑이 오랜 기간 유지된 후에도, 

혹은 결혼 후에도 올 수 있다. 

한순간에 사랑이 식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 일은 금방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일어난다. 

사랑이 식어서 어떤 행동을 한다기보다는 

기존에 했던 행동을 조금씩 안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애정 어린 애칭을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상대에게 관심이 적어지고, 

이 문제에 관해 대화하기를 회피한다. 

변화를 눈치챈 쪽에서는 내심 불안하지만 

처음에는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한다. 

그러다가 점점 연인의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

 물러날 곳 없이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내게서 떠났다는 것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희망이 

현실에 대한 판단을 왜곡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연인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사랑을 시작할 때 

상대방을 자신의 상상대로 이상화했던 것처럼. 


이때 우리는 사랑이 끝났다는 명백한 신호를 읽지 않으려 하고, 

반대로 사랑이 회복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거짓된 신호에 집착한다. 

거짓 희망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이미 깨어진 혼자만의 약속에 매달리게 된다. 

자신이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걸 깨달은 후에도 

현실을 외면하며 우리의 이별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착각을 붙잡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희망이요, 야망이며,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끝내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은 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정도다. 

현실을 직면하고 이별 후에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며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는 것이다. 

떠나간 사랑을 붙잡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쓴다. 

선물 공세, 지킬 수 없는 약속, 

혹은 무관심한 척 질투심을 자극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자신을 더 상처 입히는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반대로 실연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포기할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실은 별 가치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일시적이었으며 

내 연인이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이번에는 내 사랑에 근거가 

그만큼 빈약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사랑의 종말은 결국 희망을 거두고 

무감각과 우울을 번갈아 경험하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행동에 몰입하기도 한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가 난 것처럼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애할 때 상대방을 떠올리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과 달리, 

그에 대한 생각은 이제 우리를 속박한다. 

그리고 결국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무기력감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보이는 애도 과정과도 비슷하다. 

영국의 심리학자 볼비는 애도 과정을 4단계로 구분했는데. 

첫 번째 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고 집착하는 것. 

세 번째 단계는 인생의 의미를 잃은 듯 절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실의 통증을 이겨내고 

현실로 복귀하며 회복의 단계를 겪는다. 


그런데 실연의 과정도 이와 비슷한 코스를 밟는다. 

실연 역시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일종의 죽음이자. 

동시에 그에게 사랑받던 자신의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종말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질 때 / 허진호





음악 : 이은미 - 헤어지는중입니다
영상 : 여기까진가요 - 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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