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 고향에서 누님 집 뒤 산에 오르다가 눈에 익은 절에 사람들이 많길래 갔더니 스님, 목사님, 신부님께서
산행 나온 주민들에게 커피와 간식을 나눠 주고 있었습니다.
제 고향에 있는 교회, 성당, 절은 순수 그 자체입니다. 강요도 없고 봉사와 기부도 끈임없이 하는 참된 종교인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신부님은 제 중학교 동창인데 반갑더군요. 중고교 시절 문제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신부님이
되셨는지 의아하기도 했었죠. 짜식이 드뎌 사람이 된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또 한분의 인연이 거기에 계시더군요.
40년 전, 대학교 1학년 때, 12월 중순,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중 수원역에서 비구니 스님이 제 옆에 앉으셨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었습니다. 하필이면 비구니 스님이!!!, ..., 꽤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제게 먼저 과자와 음료수를 주시면서 말씀을 건네시더군요. 행선지가 저는 장성까지, 스님은 목포까지.
승가대학 학업을 마치고 정읍에 있는 절에서 수행 후 영암군에 있는 절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절 이름은 말씀하지 않으셨구요.
저도 처음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굳이 절 이름을 여쭙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의외였습니다. 이 분이 정말 스님이 맞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 트인 분이셨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연상이셨는데, 무척이나 유쾌하고 활달하셨지만, 의외로 출가하신 이유를 먼저 말씀을 하셨는데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었죠.
지금 생각해도 그 사연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한가지 여쭤보았습니다. 며칠 후면 성탄절인데 절에서는 그냥 평범한 날이지요? 라고.
그러자 스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캐롤도 부르고, TV로 예수님 관련 영화, 드라마, 다큐도 보신답니다.
게다가 절 내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설치하신다네요. 그리고 인근 교회나 성당에 기부도 하시고 같이 봉사도 하신답니다.
놀라웠습니다. 불교는 정말 트인 종교라는 걸 느꼈습니다.
4시간 가량 스님과 정말 슬픈 사연도 듣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대화를 하다가 제가 먼저 일어나면서 너무나 인상이 깊었던 스님께,
예의상, 언제 또 뵐 수 있겠죠? 라고 여쭈었더니 만나게 될 인연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하시면서 활짝 웃으 셨습니다.
마음속에 그 말씀의 여운과 아쉬움을 남기고 열차에서 내리면서 계시는 절 이름을 여쭤보지 못한 게 약간 후회를 하였습니다.
며칠 간 그 스님이 머리 속,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부처님께 딱 한번만이라도 더 만나게 해달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본능보다 이성이 더 강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인연은 아니라며 억누르면서 서서히 그 분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벗어나는 데 딱 40일이 걸렸습니다.
굳이 영암에 있는 절들을 찾아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일부러 찾아다니다가 만나게 되더라도 이건 인연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절에 딱 한번 어머니를 따라 가서 부처님께 빌었습니다. 정말로 인연이라면 한번만 더 만나게 해주시기를.
그 후 절에 가거나 길가다 여러 곳에서 스님들을 뵈면 그 비구니 스님이 생각은 났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의, 그 절에 계신 주지 스님이 비구니스님이셨는데 이상하게도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어디에선가 뵈었던 것 같았습니다.
혹시?
에이 설마!!!
아니지, 혹시???
아니야,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있어!!!
친구인 신부님께 스님의 법명을 아는 지 여쭤 보았습니다. ㅈㄱ스님이시랍니다.
맞습니다. 기억이 났습니다. 열차 안에서 그 스님이 직접 말씀하셨던 법명, ㅈㄱ스님.
주민들 수가 좀 줄고 한가해지자 스님께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습니다.
혹시 40여년 전,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목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옆자리 앉았던 학생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선 망설임 없이, 기억한다, 하시면서 저를 빤히 쳐다 보시다가 아주 깜짝 놀라십니다.
스님은 세월의 흔적이 있기는 하셨지만 4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선 제 얼굴을 보시고 세월의 폭탄을 많이 맞았다며 아주 크게 웃으시더군요. (제가 머리가 많이 빠졌거든요.)
스님과 신부님, 그리고 저는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선 주로 듣기만 하셨습니다.
대화 중, 당시 제가 스님께 언제 또 뵐 수 있겠죠? 라고 여쭈었더니 만나게 될 인연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하시면서
활짝 웃으셨는데 그 모습과 말씀이 제 마음 속에 꽤 오래 동안 있었고 이후 언제라도 스님을 한번 더 뵙고 싶었지만
정말로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뵐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씀을 드리자 스님께서 크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놀랍게도,
스님께선 저를 한번 더 보셨다고 합니다.
저를 처음 보시고 몇년 후, 공교롭게도 열차 안에서 또 저를 보셨다고 합니다.
김제 금산사에서 일을 보신 후 정읍역에서 열차를 타셨는데 자리 근처에 눈을 감고 있는 낯익은 청년이 있었는데 바로 저였답니다.
일행인 스님들이 계셨고 저는 다음 역에서 내렸기 때문에 굳이 저에게 아는 척을 하시진 않으셨지만 스님께선 그 많은 장소와
시간들 속에서 이렇게 또 다시 보게 되니 저와 인연인가 보다 라고 생각을 하셨고 언젠가는 또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으셨답니다.
저는 뭐 그 때가 언제였는지 전혀 몰랐지만요.
스님께선, 인연이란 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정말 소중하겠지만, 전혀 그러지도 않을 수가 있다라고 하시더군요.
인연은 자연스럽게 다가 오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데, 인연을 뭔가 이루어지는 끈이라 생각하면 바램이 되고 또 집착이 되고
그러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매달리게 되면서 자칫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저는 집착이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시더군요.
스님께 대한 당시의 제 심정을 말씀드릴 때 스님께선 좀 놀라신 표정 후 눈을 감으시곤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희한하게도, 어찌된 영문인지 저는 그런 스님의 심정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불자이신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자주 가셨던 절에 뫼셨는데, 두 분의 신위를 이 절로 모시고 싶다고 하자, 스님께선 그러지 말라 하시더군요.
부모님은 그대로 그 절에 모시고, 저에게는 괴롭고 힘들고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 절, 성당, 교회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 하셨고, 고향에 내려오면 누님을 만나러 온다는 생각으로 차 한잔 하러 오라고 하시더군요.
짧으면서 긴 대화가 끝난 후에, 정말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는 게 놀라웠고 스님께서는 정말 많은 수행을 하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제 마음을 잠시 동안 흔들어 놓으신 스님을 뵈었는데도 반갑다는 심정 말고는 의외로 무덤덤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스님을 딱 한번만 더 만나게 해주십사 하는 제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제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아주 소중하게 보관했던 4시간의 추억과 다시 만나 인연은 이전보다 더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다시는 꺼내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님을 다시 뵙고 나서, 스님을 다시는 뵈면 안되겠다라는 심정이었습니다.예, 다시는 그 절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 심정을 아마 여러분들께선 무슨 의미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만날 인연은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된다 ."라는 말을 이제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소중한 인연이나 추억이 있으시죠?
반면,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다시 만나거나 이어지는 인연이 더욱 먹먹하고 가슴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만나는 인연이 싫어져서도, 실망스러워서도가 아니랍니다. 그냥 아픕니다.
추억은 영원히 추억으로만, 맺어져선 안 될 인연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으로만 느끼는 게 더욱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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