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117 0 0 2025-11-10 18:52: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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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는 찰나였을 뿐인데

나는 여생을 연신 콜록대며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서덕준 / 환절기

​

"응, 나야 그래, 알았어"

목소리만으로도

너는 나의 푸르디 푸른 그리움이다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들어있다

바람이 가득하다

네가 몹시 보고 싶을 땐

혼자서 가만히 너를 흉내낸다

"응, 나야 그래, 알았어"

​
이해인 / 너의 목소리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정도 사이였기에 오래 연락이 없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도 서로 멀리 있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창문 밖에서 귓바퀴를 쫑긋 세운 나뭇잎들이

머리통을 맞댄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럴 때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참 내밀해 보였다

저렇게 귀 기울인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바람과 강물과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그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


건강한 슬픔 / 강연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슬픈 나머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슬픈 일까지 보이게 된다

도무지 끝이 없다

나는 너와 만나기 전의 나날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 시절에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행복한 아이였다


요시모토 바나나 / 물거품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랬던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 조차 없어서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 했던

그 날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나를

나는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 구석에 밀어넣은 

그 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 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
남진우 / 사랑의 어두운 저편



소리 내어 울지 못하던 울음이

네 앞에서 툭 터지면 어쩌나

바람만 가득 삼키는 이 밤

아릿아릿 몸살기 푸르게 돋아나고

어디선가 돌아와

살같에 머무는 너의 향기를 베고 누워

오월이 다 저물도록

소리 내어 부르질 못했다

그리움 가득한 가슴으로

까실한 자작나무 등줄기 어루만지던

지난 꿈길이 더욱 환하여

서럽게 깨어나던

오월의 밤은 더 깊어지는데

너는 여전히 부재중이고

나는 하얗게 떨어지는 꽃잎이 된다

서로 깊게 호명하고 싶은 계절

그윽한 눈길에 넌 또 다시

꽃인 듯 피었다 진다

그 먼 새벽바람만 끌어안고


정기모 / 유월의 안부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너와 나 / 김춘수




그대 그다지 사랑했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 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평생 못 올 사람인 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어여쁜 그대는 내내 어여쁘소서

 
이런 시 / 이상

 


음악 : 이소라 -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영상 : 정세운 - 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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