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뉴진스를 둘러싼 긴 분쟁은 느닷없이 결말이 나버렸다. 지난 12일, 어도어 레이블 측은 공식 성명을 냈다. 하이브와 전속 계약 효력을 다투고 있는 뉴진스 멤버 중 해린과 혜인이 어도어 레이블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뉴진스를 변호하는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달 전속 계약 효력 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뒤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곧장 밝혔기에 뜻밖의 뉴스였다. 두 시간 뒤 나머지 뉴진스 멤버 세 명, 민지와 하니, 다니엘도 어도어로 돌아가겠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로서 뉴진스 모든 멤버가 어도어에 복귀하게 되었고, 이들의 활동을 다시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상황이 말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린과 혜인은 어도어 측과 막후에서 소통을 나눈 끝에 합의한 것이지만, 민지 하니 다니엘은 합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어도어 측은 이들의 진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곧바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연한 반응이다. 회사와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회사 측과 아무런 조율 없이 복귀를 통보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뉴진스 3인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항소 시한이 14일 자정까지라 그전까지 거취를 결정해야만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한 배를 타고 있던 팀원 중 두 명이 구명보트를 내리고 빠져나갔다. 항소를 진행할 여건도 되지 않고 남은 선택지가 사실상 복귀 외에는 없다.
하이브와 뉴진스 3인은 대화의 필요성에 합의한 상태고 며칠 뒤 개별 면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서 실질적 합의와 향후 계획이 도출될 전망이 있다. 하지만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 레이블에 돌아가고 싶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지 않고는 아이돌 인생을 이어 갈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돌린 것에 가깝다. 이런 심정은 먼저 복귀에 합의한 해린과 혜인조차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선시 돼야 하는 건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수습하는 것이다. 그간 사태는 몇 번의 반전을 거치며 뉴진스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우세한 상태다. 멤버들의 복귀 소식은 세상의 쓴 맛을 본 철부지들의 투항처럼 손가락질당한다. 현재 어도어는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주도권을 쥔 측면이 있지만 가능한 낮은 자세로 멤버들을 품어야 한다. 강화 조약에 서명하는 승전국처럼 군다면 뉴진스 멤버들의 불안감을 풀어 줄 수 없고 뉴진스 팬들의 적대감도 부추기는 일이다. 그 상태로 지속 가능한 매니지먼트가 수행될 리 없다. 가능한 한 빨리 멤버들의 대외 활동을 재개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민희진 없는 어도어에서도 뉴진스는 건재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뉴진스 측에도 관계를 풀 책임이 있다. 신뢰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일굴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위야 어찌 되었건 뉴진스는 전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민희진 전 대표가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어도어 임원과 스태프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에게 귀를 열고 대화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곧 있을 면담은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신뢰가 회복될 때 의미 있는 결론을 맺을 수 있다.
말했듯이, 현재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그중에서도 뉴진스 3인 중 민지와 하니의 민심이 특히 나쁘다. 그 둘이 기자회견과 국정감사 등 공식 석상에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왔기에 맞게 된 반작용이다. 달리 말해, 민희진과 하이브의 분쟁으로 시작된 다툼에서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희진을 대신하는 방패막이가 됐고, 여론에 의해 퇴로가 끊기며 운신도 제한되고 말았다. 하이브는 비난 여론으로부터 두 멤버를 보호하는 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뉴진스 멤버들을 조력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가족들 역시 이 상황이 단지 하이브의 여론전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들에 교훈을 얻어야 한다.
뉴진스가 어도어로 돌아가 활동을 재개한다면 그들의 활동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챕터, 말하자면 뉴진스 2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전까지 그들의 활동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던 기획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룹의 색채가 변질되지 않을지 되묻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아니라 흥미로운 쟁점이다. 케이팝은 원래 개인의 예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예술이다. 뉴진스는 여타 아이돌들과 구분되는 환경에 안치돼 있었지만 이제 다시 케이팝 본연의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활동 조건의 변화에 따라 아이돌의 ‘콘셉트’가 바뀌는 건 일상적인 사건이다.
지금껏 ‘작가’가 만들어 온 기획과 앞으로 ‘시스템’이 만들어 갈 기획은 얼마나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포스트 민희진 체제의 뉴진스는 이 질문을 두고 상반된 관점이 경합하고 충돌하며 또 다른 결론을 요구하는 케이팝 신의 첨예한 논점이 될 잠재력이 있다. 이는 이 산업이 품는 문화적 토픽과 진화 가능성에 밑거름을 더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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