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을 거야.기억하면 외로워져.

73 0 0 2025-11-19 21:44: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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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치민 울음을 참기 위해 내뱉은 말이 고작 저거였다.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못 배웠다. 

비위를 맞추거나 변명하는 것만이 

내가 배운 삶의 방법인데, 

옷장 밖의 세상에선 저런 말들보다 

고맙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내뱉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셈이다.



사장님은 모른다. 내가 학교에 롤모델로 

'붕어빵 사장님'이라고 적어 낸 것을. 

장래 희망에 '붕어빵 잘 굽는 사장'이라고 적은 것을. 

담당 선생님에게 따로 불려 가 혼나기도 했는데, 

끝까지 고쳐 쓰지 않았다. 

훗날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대학 면접을 볼 때 

'붕어빵 안 터지게 굽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것도, 

우주항공업 면접을 볼 때도 

'우주에서도 붕어빵 구울 수 있게 하겠다'라는 

목표로 합격했다는 것도 사장님은 모른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말하겠거니, 

언젠가는 모든 바람이 이뤄지겠거니 했다. 

아니, 사실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바람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죽길 바라는 존재는 징그럽게 오래 살고, 

영원히 살길 바라는 존재는 

그토록 예고도 없이 빠르게 떠나는 것이 

치사하지만 세상의 법칙이라는 것도.



아빠가 기억하니 괜찮아. 

기억은 한쪽만 가지고 있어도 괜찮아. 

아빠가 엔딩까지 잊지 않으면 돼.




입에 담긴 건 고작 말 한 모금뿐인데, 

그걸 종일 뱉어 내야 하는 하루. 

그 한 모금을 하루 종일 흘려보낼 수 없으니까 

아무거나 막 뱉는 거지. 

세상의 온갖 일들. 

내 머릿속에 있는 온갖 문장들.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엄마에게 

세상을 실어다 주는 마법사가 된 느낌이야. 

내 입에 웅크린 세상이 있어. 

사탕처럼 달콤하고, 단단하고, 

깨지면 혀에 피를 내는, 달고 아픈 세상이.




꼭 날아야만 새인가?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퇴화란 평화의 상징일지도 모르지.

기능 하나쯤 잃어도 

생존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




그 멀미가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거다. 

미치게 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을 바쳐 사랑할 것 같다가, 

어느 한순간 그 존재를 증오하고, 

그 증오가 본인을 향한 혐오가 될 정도로 또다시 사랑한다. 

이것이 온전한 내 삶이라고, 

이번 생은 이렇게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살아야 한다고, 




'같이 가. 거기까지 데려다줄게.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너를 이렇게는 못 보내겠어. 알아. 

우리가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마음 우습다는 거. 

네가 보기에 같잖다는 거. 

오히려 다리가 이렇다 보니 더 걸리적거릴 수도 있겠지.'

'당신 마음 오해 안 해’

’그렇게 안  배웠어‘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노윤이 일을 일일이 다 사과하고 다녀서 되겠어?

뭐만 하면 지레 겁먹어서 사과부터 하는 거, 

안 그래도 돼. 노윤이가 살아가는 건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노윤이 엄마, 가끔 창 밖을 봐. 

도시에도 새가 많거든. 

다 똑같은 새 같겠지만 유심히 보면 

이 새, 저 새, 생김새도, 사는 방식도, 먹이도 다 달라. 

깃털도 다 같지 않고, 나는 방법도 다 달라.




원래 종은 다 다양해. 

아기는 미숙하고, 어린이는 시끄럽고, 

청년은 혼란하고, 노인은 느리고 그런 거지. 

세상살이 대부분을 보면 우리는 

비정상의 범주에 속해있지.'




'저 새가 뭔데?'

'흔히 볼 수 없는 부리 붉은 애. 잘 날고, 많이 먹어.'

'아니, 종이 뭐냐고. 새 중에서도 

비둘기나 학, 두루미, 이런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건 우린 몰라. 

분류하고 나누는 건 인간만 해. 

쟤는 그냥 많이 먹고, 한동안 안 보였어. 

기온이 엉망이라 길을 못 찾는다고 들었어. 

예민한 애야. 종을 알아야만 저게 있다는 걸 인정할 거야? 

모르면 쟤는 존재하는 게 아닌 거야?'

'너는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야.'

'나한테 필요 없는 정보야. 알려주지 마. 

기억하지 않을 거야.기억하면 외로워져.'

'왜?'

'네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으면, 

나는 언젠가 저 예민한 애처럼 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어. 

내 몸은 나른할 땐 숲이 되기도하고, 

헤엄을 칠 땐 파도가 되기도 해. 

등을 말릴 땐 바람이 되기도 하지. 

나는 자유자재로 변하고, 속하고, 벗어날 수 있어. 

하지만 구분 지으면, 선이 생겨. 넘을 수 없는. 

내가 갇혀 있다는 좌절이, 마음을 늙게 해.'

'그게 너희의 장수 비결이야?'

'아니. 이게 원래 지구를 살아가는 방법이야.'




나는 아무래도 너한테 감염되고 싶어. 

내가 이렇게 느끼한 말을 한 걸 알면 

아내가 진절머리를 칠 건데. 그래도 봐주겠니?

낭만적인 멸망을 맞이하자. 

지구를 독차지한 기념으로.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음악 : 2046 Main Theme
영상 : 교보문고 플레이리스트   천선란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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