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로환동(返老還童), 노인이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이르는 말이다. 중국 동진의 갈홍이 쓴 ‘신선전’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도교의 장생술(長生術)과 맥이 통한다. 중국 무협소설에서도 종종 보이곤 한다. 무공의 경지가 극에 달한 노화순청(爐火純靑)의 절정 고수가 젊은 얼굴을 유지하는 비기인 주안술(朱顔術)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카림 벤제마(35, 프랑스)가 회춘하나 보다. 아니 뚜렷하게 나타난 모양새의 개소년(改少年)이다. 갈수록 거센 ‘골 폭풍’을 일으키며 스페인은 물론 유럽 천하까지도 호령하고 있다. 우리 나이 서른여섯, 축구 선수로선 환갑을 넘어선 나이인데도, 오히려 한창때를 능가하는 골 솜씨를 뽐낸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최고 명문인 레알 마드리드가 열망하는 영광 재현은 지금 ‘노익장’ 벤제마의 발놀림에 달려 있다. 유럽 최고봉인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4년 만에 등정의 꿈을 이루려 한다.
이제 정상은 눈앞이다. 오직 한 걸음만 남았다. 물론, 그 인도자는 벤제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치른 준결승전의 주역은 당연히 벤제마였다. 지난달 26일(이하 현지 일자) 1차전(3-4 패배)에서 2득점, 이달 4일 2차전(3-1 승리)에서 1득점 등 모두 세 골을 터뜨리며 역전극을 연출한 존재가 벤제마였다. 특히, 2차전 마지막 득점은 레알 마드리드를 최종 무대로 이끈 역전 결승골이었다.
벤제마가 30대 중반부터 활화산같이 용솟음치는 기세를 떨칠지 그 누가 예상했을까? 왕성했던 시절에 붙여졌던 ‘페널티 지역의 제왕’이라던 별호는 어느덧 사라지고 쓸쓸히 선수로서 황혼길에 접어드는 듯했던 벤제마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나며 2018-2019시즌부터 반등의 기미를 띤 벤제마는 2021-2022시즌 정점을 찍고 있다. 2004-2005시즌 프랑스 리그 1 리용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래 으뜸의 활약을 펼치는 백전노장, 벤제마다.회춘한 벤제마, 절정의 골 감각 뽐내며 ‘극성기’ 열어젖혀
이번 시즌, 벤제마가 얼마만큼 잠재력을 내뿜는지를 분명하게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가늠자가 있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집계해 이달 1일 발표한 2022년 국제 경기 최다 득점자 순위에서, 1위에 오른 인물은 바로 벤제마였다.
올 1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4개월 동안 국가대표팀과 클럽에서 기록한 골을 합산해 내놓은 이번 발표에서, 벤제마는 9골로 가장 윗자리에 자리했다(표 1 참조). 13시즌째 몸담고 있는 둥지인 레알 마드리드를 바탕으로, UCL에서만 9골을 터뜨렸다. 3월 9일 16강(對파리 생제르맹) 2차전(3-1 승리)과 4월 6일 8강(對첼시) 1차전(3-1 승리)에서 각각 연출한 해트트릭이 밑거름됐다.
벤제마는 멕시코 푸마스 UNAM을 보금자리로 한 후안 이그나시오 디네노와 공동 선두였다. 그러나 누적 기간을 늘리면 홀로 선두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벤제마가 4일 UCL 준결승 2차전에서 한 골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디네노 역시 클럽 간 국제 무대에서 9골 모두를 쓸어 담았다. CONCACAF(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를 누비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벤제마가 연부역강하던 20대보다 30대에 들어서서 더 빼어난 활약을 펼침은 기록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프로 무대에서, 벤제마는 이번 시즌까지 18시즌을 뛰놀고 있다. 이 가운데 30골 이상을 터뜨린 시즌은 다섯 번이다(표 2 참조). 다시 이 중 세 번(2018-2019·2020-2021·2021-2022 시즌)은 30대에 기록했다. 반면, 한창 젊음을 구가하던 20대 시절은 두 번(2007-2008·2011-2012 시즌)이었다.

특히, 이번 시즌 기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두드러진다. 43경기에 출장해 43골을 뽑아냈다. 경기당 한 번씩 그물망을 출렁였으니, 실로 돋보이는 기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벤제마의 탁월한 골 수집에,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 일찌감치 라리가 우승 축배를 들 수 있었다.
벤제마는 한때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활약으로 “한물갔다”라는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2016-2017시즌 19골(리그 11골)에 이어 2017-2018시즌엔 12골(리그 5골)에 그치는 하강 곡선을 그리는 등 좀처럼 깊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2018-2019시즌 30골(리그 21골)로 대반전을 보이며 오히려 극성기를 열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번 시즌 생애를 통틀어 최상의 활약상을 펼치며 “전성기는 지금부터”라고 외치는 듯 기염을 떨치고 있다.
지금 ‘벤제마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는 유럽 축구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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