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공은 고려의 제22대 국왕인 강종.
강종은 1152년에 태어나 1211년에 왕위에 올랐으니 자그마치 60년 동안 잠저에 있었던 셈인데, 고려 역대 국왕들의 평균 수명이 42세, 평균 즉위 연령이 26세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로 압도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세간에 '늙은 태자'라는 조롱이 나돌 정도였다고 하니...
中外賀天禧節. 太子受賀, 遂朝於王, 王問民間之語, 對曰, “人皆笑臣爲老太子.” 王曰, “寡人之久生, 亦過也.” 太子失色. 太子之意, 稱美王之壽考, 然語涉疑諱故也.
전국에서 천희절(天禧節, 태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태자가 하례를 받은 후 왕을 찾아갔더니, 왕이 요즘 민간에 어떤 말들이 떠도는가 물었다. 태자가, “사람들이 다들 저를 두고 늙은 태자라고 웃더이다.”하고 대답하자 왕은, “과인이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구나.”라고 말하니 태자가 황송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태자는 왕이 장수를 누리는 것을 칭송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나, 자칫 망발로 들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 명종 세가
강종이 이토록 뒤늦게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부왕 명종이 장수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신집권기의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강종의 왕위 계승 과정이 순탄치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강종의 아버지 명종은 본래 인종의 삼남으로서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무신정변(1170)이 터지고 형 의종이 폐위됨에 따라 불혹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고, 따라서 강종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최충헌이 정권을 장악하고 명종을 폐위시키면서 강종 역시 강화도로 축출되었고, 그곳에서 14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최충헌 암살 미수 사건(1211)으로 희종이 폐위되면서 강종은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 때 그의 나이는 환갑을 앞둔 60세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비록 강종은 왕 노릇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허무하게 죽고 말았지만, 훗날 고종이 되는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고려의 왕통은 공양왕이 옹립될 때까지 강종의 직계 후손들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 한편 강종의 딸은 최충헌에게 출가하여 정화택주에 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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