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인기 모두 잡아가던 흥국생명이 단장·감독을 사실상 경질, 베테랑들과 배구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흥국생명은 2일 보도자료를 통해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했다. 김여일 단장도 동반 사퇴하기로 결정했다"며 "(흥국생명)핑크스파이더스를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지금까지 팀을 이끌어온 권순찬 감독께는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권순찬 감독은 고문 형태로 계속 조언 등을 해줄 예정이다"라고 덧붙이며 이영수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사퇴'라는 표현을 썼지만, 경질에 더 가깝다. 권순찬 전 감독은 2023년 새해 첫날을 보낸 다음 날 물러나게 됐다. 9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된 권순찬 전 감독은 18경기(정규리그)만 지휘한 뒤 팀을 떠났다.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이 없었다면 지난 시즌 꼴찌였던 흥국생명의 평균 관중은 400~500명 수준에 그쳤다.
이번 시즌은 확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22일 개막한 2022-23 V리그에서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을 앞세워 관중 동원 1위·정규리그 2위를 질주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 마지막 경기에서는 ‘1강’ 현대건설까지 꺾는 파란을 일으킨 뒤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 “우승에 도전하자!”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해왔다.
극과 극의 비교를 해도 모자랄 정도로 이번 시즌 모든 면에서 향상된 흥국생명이 이 시점에 갑자기 단장과 감독을 경질한다는 것은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김연경을 비롯한 베테랑들이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다.일각에서는 “윗선에서 선수 기용에 깊이 개입하려 했고, 권순찬 감독이 이를 거부하면서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며 혀를 차고 있다. 구단 수뇌부 개입을 놓고 "김연경이라는 큰 선수가 있을 때, 어린 선수들을 더 육성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에 구단 수뇌부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건강하고 탄탄하게 발전한 팀을 놓고 방향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관중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꼴찌를 향해가야 방향성이 맞는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렵사리 현대건설과 양강구도까지 만든 흥국생명은 '우승 도전'에 앞서 당장 팀 분위기 수습에 나서야 하는 어이없는 과제를 안고 새해를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