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18세에 K리그에서 뛰었다면 과연 경기에 나갈 수 있었겠는가.”
싱가포르, 중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을 앞둔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프로축구 K리그가 어린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클린스만 감독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K리그와 한국축구를 비판했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4강을 이룬 어린 유망주들이 K리그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 클린스만 감독은 “브렌트퍼드(잉글랜드) 등 해외로 나간 김지수 등도 있지만, 그 많은 선수들 가운데 지금 몇 명이나 K리그에서 뛰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한국에선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얻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강인이 18세에 K리그에서 뛰었다면 과연 경기에 나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그가 스페인에 있었기에 지금처럼 성장한 이강인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부터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클린스만 감독이 국내 축구 시스템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그는 한국 축구에 대해 최대한 쓴소리를 자제하려고 노력해왔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보면 주드 벨링엄(레알 마드리드), 크리스천 풀리식(AC밀란) 등 좋은 유망주를 성장시켜서 팔기도 한다”며 “그런데 한국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최근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세르비아 노비 파자르로 임대 이적한 조진호를 언급하면서 유망주의 성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조진호는 U-20 월드컵 최종명단에 들지 못했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이런 어린 유망주들이 얼마나 더 커나가는 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대표팀이 세대 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히 했다. 특히 취약 포지션으로 거론되는 양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대한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기제, 김태환, 김진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의 나이를 감안해 수비형 미드필더도 어린 선수들로 변화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포지션 모두 내부적으로 고민을 이어가겠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대책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9월 두 번째 A매치인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첫 승리(1-0)를 거둔 데 이어 10월 튀니지(4-0)와 베트남(6-0)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갔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대표팀은 오는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싱가포르(155위)와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1차전을 치른다. 이어 21일엔 중국(79위)과 원정 2차전을 갖는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싱가포르와 중국은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에서 K리그 팀들이 싱가포르의 라이언 시티 등 동남아 팀들에게 패배한 결과를 언급하며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전에 대해선 거친 경기를 예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쟁 뒤 월드컵(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독일 우승을 지휘한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늘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며 “축구에 쉬운 경기는 없고, 항상 ‘다음 경기’가 늘 가장 어려운 경기”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 감독 이후 8개월 간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이강인을 대표적인 예로 꼽은 클린스만 감독은 “6개월 전 이강인과 지금의 이강인은 완전히 다른 선수”라며 “파리 생제르맹(PSG)이 이강인을 영입한 것도 달라진 실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중요한 사실은 이강인이 꾸준히 실전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강인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 특히 공격수들에게, 더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저돌적으로 움직이라고 요구한다”며 “손흥민, 황희찬이 잘해주는 가운데 정우영도 슈투트가르트(독일)에서 계속 출전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편, 반복되는 ‘재택근무’ 논란에 대해선 “그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재택근무는)축구협회와 처음부터 얘기가 된 부분이다. 협회도 내가 일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며 “대표팀 명단을 보면 70%가 유럽 팀에서 뛰고 있다. 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 국내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축구협회도 나의 업무수행 방식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감독을 선임했을 것”이라며 “내 일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전달했고 아무런 오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 대표팀에 있을 때도 6년 동안 늘 출장을 다녔다. 상대 팀 자체뿐 아니라 원정 경기를 치를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유럽 구단 감독들과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축구도 지속해서 배워서 지식을 쌓고,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제적인 시야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