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도 못 쉬게 만들어 주자”라는 말한 ‘주장’ 손흥민(토트넘)의 발언이 그라운드 위에서 실현됐다. 손흥민이 중국의 온갖 비매너 속에서도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중국 관중을 침묵시켰다. 클린스만호는 공식전 5연승을 질주했다. 다음 무대는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24위)은 21일 오후 9시(한국시간) 중국 광둥성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중국(79위)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2차전에서 3-0으로 이겼다.
승리의 주역은 단연 손흥민이었다. 그는 전반 10분 페널티킥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제골을 터뜨렸다. 킥오프 전 애국가 제창 당시 야유를 보낸 중국 팬들을 향해 ‘쉿’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전반 막바지엔 이강인의 코너킥을 머리로 연결해 멀티 골을 완성했다. 후반에는 플레이메이킹에 힘을 쓰며 다재다능함도 뽐냈다. 손흥민은 국가대표 3경기 연속 득점 포함, A매치 41호 골 고지를 밟았다. 후반에는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돕기도 했다. 말 그대로 손흥민이 한 수 위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역시 자신의 기세를 이어갔다. 전반 막바지 손흥민의 헤더 골을 도우며 A매치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공한증’은 이번에도 이어진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만 최근 4연승을 기록했다. 통산 상대 전적에서도 22승 13무 2패로 차이를 더욱 벌렸다.
이날 경기는 월드컵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자, 내년 1월 열리는 AFC 아시안컵을 앞둔 마지막 시험대이기도 했다. 싱가포르와의 C조 1차전에서는 5-0으로 이겼는데, 이날도 3골을 기록하며 공격력을 다시 한번 뽐냈다. 한국은 최근 공식전 5연승을 질주했는데, 이 기간 19득점 무실점을 기록했다.클린스만 감독은 이번에도 4-4-2 전형을 내세웠다. 조규성(미트윌란)과 손흥민이 전방에 서고, 황희찬(울버햄프턴)과 이강인이 측면을 맡았다. 중원은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박용우(알 아인). 백4는 이기제(수원)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김태환(이상 울산), 골키퍼 장갑은 김승규(알 샤밥)가 꼈다.
지난 싱가포르와의 1차전과 비교한다면 중원과 수비진에 차이가 있다. 클린스만호 출범 후 9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이재성(마인츠)은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른쪽 수비수 설영우 대신 김태환(이상 울산)이 선발로 발탁된 것이 눈에 띈다. 이외 정승현은 8경기 연속, 조규성은 7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김민재·이기제 역시 나란히 6경기 연속 A매치에 선발로 나섰다.
이에 맞선 알렉산드르 얀코비치(세르비아) 중국 감독은 5-4-1 전형으로 맞섰다. 전방에 탄롱이 섰다. 이어 우레이·웨이시하오·왕샹위안·우 시가 뒤를 받쳤다. 수비진은 뤼양·주천제·장셩롱·장린펑·류빈빈, 골키퍼 장갑은 옌준링이 꼈다.전반 초반, 중국 팬들의 거센 응원은 예상대로였다. 중계 화면을 통해서도 현지 팬들의 응원, 야유 소리가 전해졌다. 한국도 영향을 받은 것일까. 킥오프 직후 한국의 패스는 조금씩 빗나갔다. 중국은 웨이시하오, 왕샹위안이 연이어 스루패스를 시도해 한국의 뒷공간을 노렸다. 하지만 김승규, 이기제가 빠른 판단으로 중국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전반 7분 중국의 패스 플레이가 나오자, 이번에는 김민재가 마지막 패스를 차단한 뒤 역습 전개를 시도했다. 하지만 웨이시하오가 파울로 끊어냈다.
다소 답답한 흐름은 2분 뒤에 깨졌다. 전반 9분 황희찬이 장린펑 앞에서 과감한 드리블 후, 조규성에게 스루패스를 건넸다. 조규성의 슈팅은 막혔지만, 두 선수는 마지막까지 공을 추격했다. 이 과정에서 황희찬이 박스 안에서 장 셩롱에게 걸려 넘어졌고, 페널티킥(PK) 판정이 나왔다.
키커로 나선 건 손흥민이었다. 그는 왼쪽으로 가볍게 차 넣어 A매치 40호 골 고지를 밟았다. 그는 중국 팬들을 향해 ‘쉿’ 세리머니를 펼쳤다. 한국 팬들의 응원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선제골을 허용한 중국은 전반 14분 탄 롱에게 롱 패스를 건넸지만, 그의 왼발 슈팅은 옆 그물로 향했다.
한국은 2분 뒤 이강인의 코너킥 공격에 이은 조규성의 헤더가 나왔으나, 골대 위로 벗어나 아쉬움을 삼켰다. 두 선수는 지난 16일 싱가포르전에서도 선제골을 합작한 바 있는데, 이번 공격은 무산됐다.
이후 점유율을 다시 늘려간 한국은 황인범, 이기제의 중거리 슈팅이 나왔으나 위협적인 장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4분에는 유럽파 공격진의 위력이 나왔다. 손흥민이 황인범과 패스를 주고받은 뒤, 아크 정면에서 왼발 감아차기 슈팅을 시도했다. 골키퍼가 쳐냈으나, 황희찬이 재차 슈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골키퍼 품에 안겼다.
2분 뒤엔 탄롱이 손흥민의 머리를 손으로 가격하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나왔다. 손흥민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와중 팬들의 비매너는 또 나왔다. 키커인 황인범을 향해 레이저를 쏜 것. 황인범은 개의치 않고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는데, 골문 왼쪽으로 살짝 벗어났다.
30분엔 이강인이 황희찬과 패스를 주고받다 역습을 허용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김민재가 있었다. 그는 높은 라인까지 올라와 웨이 시하오로부터 공을 깔끔하게 가져왔다. 4분 뒤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이강인은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궤적이 좋았으나, 장린펑이 몸으로 막아냈다.한국이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자, 중국은 거친 플레이로 응수했다. 전반 38분에는 장셩롱이 무릎으로 황인범을 막아섰다. 파울 판정이 나왔는데, 옐로카드까진 나오지 않았다. 직후엔 황희찬이 류빈빈의 파울에 쓰러져 허리를 부여잡기도 했다.
중국은 최전방에 배치된 탄롱에게 공을 전달하고자 했지만, 이번에도 김민재가 몸싸움으로 막았다. 전반 내내 중국의 공격은 매번 김민재 앞에서 멈췄다. 41분에는 우 시가 역습을 전개하는 듯했으나, 이번에는 박용우가 타이밍 맞게 파울을 범해 공격 흐름을 끊었다.
한국이 위험을 맞이한 건 작은 실수에서 시작됐다. 전반 42분 이기제와 김민재가 패스를 주고받다가 류빈빈에게 공을 뺏겼다. 류 빈빈은 박스 안 탄 롱에게 공을 건넸는데, 그의 오른발 슈팅은 이번에도 옆그물로 향했다. 한국 입장에선 행운이 따른 장면이었다.
한국은 위기 뒤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분 뒤 이강인의 스루패스, 손흥민의 오른발 마무리가 나왔다. 골키퍼 옌 준링이 다리로 막았고, 손흥민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단 1분도 채 되지 않아 이를 만회했다. 이강인의 날카로운 코너킥을, 손흥민이 감각적인 헤더로 연결해 중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헤더 골 비중이 낮은 손흥민이 오랜만에 머리로 골망을 흔든 순간이었다.
전반전 점유율은 70대30, 한국의 11개 슈팅 중 6개가 중국 골문을 두드렸다. 중국은 8개의 파울로 한국을 저지하려 했지만, 위협적인 공격은 전반 막바지 한국 수비의 실수로 인해 나온 장면뿐이었다. 한국의 압도적인 경기가 펼쳐진 45분이었다.이후 중국은 왼쪽 공격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으나, 한국 진영까지 넘어오진 못했다. 오히려 후반 6분 황희찬이 중국의 오른쪽을 완전히 무너뜨린 뒤 크로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패스가 차단돼 아쉬움을 삼켰다.
한국의 위협적인 공격은 또 나왔다. 박용우가 수비 진영에서 중국의 공을 끊어낸 뒤, 한국의 역습이 시작됐다. 공을 넘겨받은 손흥민은 완전히 열린 상태인 이강인에게 공을 건넸다. 이강인은 여유롭게 골키퍼를 제친 뒤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는데, 장천제가 몸을 던져 막아냈다.
이미 멀티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다시 한번 ‘플레이 메이킹’ 능력을 뽐냈다. 후반 10분 황인범과의 2대1 패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라보나 패스’를 시도했다. 황인범이 받아낸 뒤 어려운 자세에서 크로스를 시도했는데, 받아줄 선수가 없었다. 2분 뒤엔 다시 한번 이강인의 패스가 손흥민에게 향했는데, 이번에는 수비에 막혔다. 후반 13분에는 황희찬-손흥민의 패스에 이은 찬스가 나왔는데, 마지막 수비에 막히며 슈팅까지 시도하지 못했다.
중국은 후반 16분 오랜만에 올라와 크로스 공격을 시도했다. 탄롱, 우레이가 연속 헤더를 시도했는데, 김민재와 정승현이 차례로 막았다. 중국은 직후 우시와 탄롱을 빼고 장위닝과 리커를 투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 기회를 잡은 건 한국이었다. 이강인이 리커 앞에서 손흥민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단숨에 중국의 페널티 박스 앞까지 향했다. 이강인은 멋진 바디 페인팅 후, 과감한 왼발 중거리 슈팅까지 시도했다. 공은 골대 위로 향했으나, 위협적인 장면이었다.
직후 중국의 역습은 황인범에게 끊겼다. 이때 황인범은 머리에 공을 맞아 쓰러졌는데, 이를 두고 우레이가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다 오히려 옐로카드를 받았다.
후반 25분 손흥민의 프리킥에 이은 박용우의 헤더가 나왔으나, 너무 정확하게 맞아 공이 높이 떴다.한편 클린스만 감독도 교체 카드를 꺼냈다. 김태환·황희찬·조규성을 빼고, 설영우·이재성·황의조를 투입했다. 같은 시간 중국은 우레이를 빼고 천푸를 투입했다.
좀처럼 더딘 중국의 공격은 다시 한번 한국의 실수로부터 나왔다. 후반 34분 수비 가담한 손흥민이 백 패스를 시도했는데, 공이 중국에 차단당했다. 다오웨이준이 박스 안에서 슈팅을 시도했는데, 김민재가 몸으로 막았다. 직후 장위닝의 헤더는 골대 왼쪽으로 벗어났다.
한편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38분 이강인을 빼고 정우영을 투입했다. 이강인은 A매치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뒤 임무를 마쳤다.
한국의 체력이 떨어질 시점, 다시 한번 손흥민의 발끝이 빛났다. 후반 42분 손흥민의 간접 프리킥을, 정승현이 깔끔한 헤더로 마무리했다. 정승현의 A매치 첫 골. 중국 관중들은 다시 한번 침묵에 빠졌다.
정승현의 득점은 사실상 경기의 종지부를 찍는 장면이었다. 경기장에서는 ‘대한민국’ 응원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후반 45분, 박진섭이 A매치 데뷔전에 나섰다. 실업팀을 거쳐, 연령별 대표팀은 물론 A대표팀까지 승선한 그의 의미 있는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추가시간은 4분, 반전은 없었다. 한국이 여유롭게 완승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