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지와 피의 길
하늘은 못 박힌 듯 고요했다. 새들은 떠나고 없었다. 공기는 씻은 뼈처럼 희미한 푸른빛을 띠었다.
루아르 남쪽, 전투를 눈앞에 둔 어느 들판이었다. 이름 없는 베르베르 기병은 고개를 들어 텅 빈 하늘을 보았다. 그의 검은 말은 고개를 숙인 채 마른 풀을 잘근거렸다. 며칠을 달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먼지가 폐부에 쌓이고 피 맛이 입가에 맴돌았다.
기병대는 약탈을 멈추라는 전갈을 받았다. 이제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왜 가는지.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명령이 있을 뿐. 그의 손은 오래된 칼자루를 더듬었다. 가죽은 닳아 맨들맨들했다.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 진군
그는 말을 몰았다. 말발굽 아래 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길가에서 아이들이 돌팔매질을 했다. 돌멩이 하나가 그의 철제 투구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길가에 나뒹구는, 머리가 잘린 수도사의 시체를 지나쳤다. 부패한 살점 위로 파리 떼가 윙윙거렸다.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침묵 속에 행군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무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유일한 음악이었다. 햇볕은 뜨거웠고, 물은 부족했다. 때때로 불탄 마을의 잔해를 지났다. 검게 그을린 벽, 텅 빈 창문 구멍.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은 희미했다.
신은 어디 계신가.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질문할 기력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전진할 뿐. 말 잔등 위에서 흔들리며, 끝없이 펼쳐진 이국의 땅을 응시할 뿐이었다.
#. 야영
투르 인근,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곳에 진을 쳤다. 지도자는 병사들을 모았으나 긴 연설은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천국을 말하지 않았다. 오직 검을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쥐어야 할 손에 대해.
병사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딱딱하게 구운 양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기름이 불꽃 위로 떨어지며 치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의 옆에는 아직 앳된 얼굴의 동료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른 고기를 씹어 삼켰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불었다. 풀잎 스치는 소리가 죽은 자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는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땅바닥에 누웠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으나, 그 별빛은 온기를 주지 못했다.
#. 전열
프랑크군은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숲을 등지고, 마치 땅에서 솟아난 바위들처럼 굳건해 보였다. 아침 햇살에 그들의 투구와 창끝이 번뜩였다. 말들은 불안한 듯 콧김을 내뿜고 앞발을 굴렀다. 바람은 싸늘했고,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첫 번째 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북소리가 심장을 두드렸다. 이름 없는 그는 창을 고쳐 잡고 말을 몰아 달렸다. 수백, 수천의 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언덕을 향해 달려들었다. 땅이 울렸다.
프랑크 보병들의 방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대한 철갑의 짐승처럼 그들은 버티고 섰다. 그의 첫 번째 창은 적의 방패에 부딪혀 부러졌다. 두 번째 창은 적의 방패 깊숙이 박혔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말들이 뒤엉키고 비명을 질렀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 함락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지휘관 압둘 라흐만 알-가피키가 전사했다는 소문이 번개처럼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속삭임이었으나, 곧 공포에 질린 외침으로 변했다. 진영 후방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외침도 들려왔다. 혼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병사들은 동요했고, 몇몇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는 휘말리지 않았다. 싸웠다.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의 칼은 적의 살을 베고 뼈를 부쉈다. 적의 칼 또한 그의 갑옷을 찢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고통은 무감각했다.
어느 순간, 거대한 충격과 함께 그는 말에서 떨어졌다. 땅이 그를 받아 안았다. 외마디 비명도 없었다. 다만 풀잎이 피를 받아내기 위해 몸을 굽힐 뿐이었다. 칼날이 그의 어깨를 깊숙이 갈랐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 침묵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죽음과 흡사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싸움은 끝나 있었다. 사방은 시체와 부서진 무기들로 가득했다. 그의 주변에는 까마귀 떼와 차가운 침묵만이 존재했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르렀으나,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어깨의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간신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슬람 진영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철수했다. 그를 남겨두고.
프랑크 땅 한복판에, 그는 이방인으로 홀로 남겨졌다. 그는 이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릿했다.
#. 기도의 부재
그는 숲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며칠을 헤맸는지 알 수 없었다. 굶주림과 갈증, 상처의 고통이 그를 따라다녔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는 잊혀진 존재였다.
어느 해 질 녘, 그는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작은 공터에 다다랐다. 마지막 힘을 다해 메카를 향해 절을 하려 했다. 그러나 방향을 알 수 없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핏빛 노을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모든 방향이 똑같아 보였다. 잊혀진 자에게 동쪽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종교, 전쟁, 민족, 이름, 전설. 그 모든 것이 이제 그의 뒤편으로 아득히 지나가 버렸다.
결국 그는 이름 모를 들판, 비에 젖은 차가운 땅 아래 묻혔다. 무덤도, 비석도 없이. 그의 마지막 숨결은 한 줌 바람이 되어 낯선 땅의 풀잎을 스치고 사라졌다. 하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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