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선수-구단-팬들 모두 웃지 못하게 된 기성용 사태, 누구 책임인가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기성용의 K리그 복귀가 결국 무산됐다. 기성용의 매니지먼트사인 '씨투글로벌'은 11일 기성용이 전날 FC서울과 전북 현대에 협상 종료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씨투글로벌에 의하면, "선의로 타진했던 국내 복귀가 두 구단을 비롯해 K리그 전체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사태로 번진 데 유감"을 표시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성용이 올해 K리그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로서 2주 가까이 축구계를 떠들썩하게 달군 기성용의 K리그 복귀설은 승자없는 해프닝으로 마감하게 됐다.
기성용은 지난 1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유나이티드와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한 뒤 자유계약 대상자 신분으로 새로운 이적 팀을 물색해왔고, 최근 K리그 복귀설이 유력하게 거론되며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력과 스타성을 갖춘 기성용의 복귀가 K리그 흥행과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상황이 미묘하게 변했다. 기성용은 친정팀 FC서울을 먼저 고려했으나 협상 과정에서의 의견차이를 드러내며 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전북 현대 입단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기성용이 K리그 타 구단으로 갈 경우 서울에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조건이 뒤늦게 알려지며 제동이 걸렸다.
축구 팬들의 여론은 뜨거웠다. 기성용의 K리그 복귀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친정팀인 FC서울은 유독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구단이 배출한 레전드이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서, K리그 내 타 구단으로의 이적까지 가로막는 발목잡기를 했다는 비판이다. 몇몇 언론을 통하여 기성용이 서울과의 협상과정에서 구단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기성용의 K리그 복귀 가능성이 처음 거론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그림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기성용은 K리그에서 성장해 유럽무대까지 진출했고 국가대표로서도 많은 족적을 남긴 스타 육성의 모범사례였다. 이런 선수가 유럽 커리어를 마감하고 선수 생활 후반기에 K리그로 다시 복귀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스타 선수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길 수가 있었다. 선수와 구단, 팬들 모두가 서로 박수치며 기성용의 복귀를 환영하는 모양새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프로의 세계는 철저한 계산과 계약관계에 의하여 움직이는 비즈니스이고, 인정이나 의리는 그 다음의 문제다. 결국 모든 논란의 핵심은 처음부터 기성용과 서울이 합의 하에 위약금 협상을 맺었다는 것, 그리고 우선협상권을 가졌던 서울이 과연 처음부터 기성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는가. 단 두 가지에 있었다.
기성용은 유럽 진출 당시 "K리그 복귀시 서울과 우선협상에 임하고 타 구단으로 이적할 시에 위약금을 지불한다"는 조항에 동의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조건이지만, 당시 기성용은 해외 진출을 위해 이를 동의했다. 구단이 일방적으로 강요한 게 아닌 이상 이제와 구단이 그 약속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서울은 기성용의 몸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기성용은 뉴캐슬에게 연봉 30억 원 정도를 수령했다. K리그 최고 연봉은 로페즈와 김진수가 받았던 15~16억 원 정도다. 기성용이 K리그 복귀시에 요구할 수 있는 몸값은 그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K리그 규모를 감안할 때 부담스러운 몸값임은 분명하다.
서울 입장에서 봤을 때는 기성용이 K리그로 복귀하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이를 먹고 기량이 다소 떨어졌다고 해도 30대 초반이면 아직 베테랑이라고 할 수 없는 데다, 해외 리그에서 실패하여 K리그에 돌아오는 모양새도 아니라서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줘야 했다. 이미 서울은 다음 시즌 전력구상이 어느 정도 끝난 상황이고 기존 선수단도 정리하는 마당에 굳이 기성용의 포지션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성용을 대놓고 포기하게 되면 팬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다. 기성용의 K리그 복귀를 막는다는 비판도 물론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같은 K리그 내에서 경쟁팀인 전북에 프랜차이즈 선수를 내준다는 것은 서울로서는 도저히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서울이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위약금 조항을 내세우는 것은 꼭 돈을 받겠다는 것보다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전북 이적은 곤란하다'는 메시지에 가까워보인다. 안타깝지만 서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납득이 가지않는 것도 아니다.
전북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위약금은 선수와 구단간의 문제이기에 다른 구단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기성용 영입설이 거론된 또다른 구단인 전북이 기성용의 몸값과 별개로 서울과의 위약금까지 감당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한 대응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서정원 전 수원 삼성 감독은 프랑스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01년 친정팀 안양(현 서울)이 아닌 수원으로 K리그 복귀를 추진하며 위약금 논란이 일어나 법정 소송까지 간 일이 있다. 당시에도 공식적으로는 수원 구단이 아니라 서정원이 개인적으로 서울에 위약금 약 50만 달러(당시 7억)를 지불한 바 있다.
따지고보면 누구도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일이 아니다. 기성용은 K리그에 복귀하고 싶었지만 조건이 잘 맞지 않았고, 서울과 전북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협상을 했을 뿐이다. 팬들은 물론 기성용같은 스타 선수를 K리그에서 보고싶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기성용의 복귀는 협상의 선택지 중 하나일 뿐, 누구에게도 이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다.
프로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성용이 좋은 선수이고 어느 팀에 가던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카드인 것은 맞다. 하지만 기성용 한 명 때문에 서울과 구단이라는 두 간판 클럽, 나아가 K리그 전체가 여론에 끌려다니는 것도 절대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었다.
기성용이 기왕이면 K리그에 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명분과 조건을 모두 맞출 수 없다면 깔끔하게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는게 맞다. 서울도 전북도 기성용을 감당할 여력이 안되거나 구단에 플러스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면 기성용의 답변만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서 이적 논란을 먼저 정리했어야했다. 결과적으로 기성용도 두 구단도, 나아가서는 K리그도 일개 선수의 이적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끌려다니는 우스운 상황이 됐다. 남은 것은 승자없는 소모적인 논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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