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이정후. AP연합뉴스
아트 데블린, 필 웨인트라웁, 조지 마이야트, 빌 리그니.
자이언츠가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아직 뉴욕에 연고지를 두고 있던 시절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선수들이다. 백과사전이나 통계 사이트를 통해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들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 달러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이정후는 성공적인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쳐 개막전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나서고 있다.
23일까지 22경기에 출전한 이정후는 타율 0.284(88타수25안타), 2홈런, 7타점, 10득점, 8볼넷, 9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출루율은 0.343, OPS(출루율+장타율)는 0.730으로 신인 선수의 데뷔 첫 시즌 치고는 준수하다.
샌프란시스코 역사에서, 이정후처럼 메이저리그 커리어의 첫 스타트를 잘 끊은 선수도 드물다. 뉴욕 시절을 모두 합쳐, 이정후처럼 메이저리그 데뷔 첫 22경기에서 25개의 안타와 10득점, 5볼넷을 기록하고 삼진을 10개 미만으로 당한 선수는 이정후를 합쳐 14명에 불과하다. 연고지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1958년 이후로는 레온 와그너, 조 스트레인, 빌 뮐러와 이정후 4명 뿐이다. 나머지 10명은 전부 뉴욕 시절 선수들로, 이정후가 얼마나 대단한 출발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타격하는 이정후. AFP연합뉴스
시즌 개막 후 잠깐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다가 스스로 일어나 다시 질주하고 있는 이정후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는 놀라움이 서려있다. 밥 멜빈 감독은 지난 21일 이정후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에이스 잭 갤런을 상대로 시즌 2호이자 홈구장 오라클파크에서의 첫 홈런을 치고 난 뒤 “이정후의 홈런으로 불이 붙었다. 1회초 한 점을 허용한 뒤 갤런을 상대로 곧바로 홈런을 터뜨린 건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경기 내내 큰 추진력이 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뉴욕 메츠를 상대한 23일 경기에서는 3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기술적인 스윙으로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러브를 잡아당겨 우전안타를 만들자 현지 중계진이 “완벽하게 제구된 공을 정타로 만들었다. 우리가 이정후에게 주목하는 이유”라며 감탄했다.
언젠가는 이정후에게 다시 한 번 슬럼프가 올 때가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22일 애리조나전에서 2타수 무안타 1볼넷에 몸맞는공 1개를 얻어 연속 안타 행진이 11경기에서 중단된 이정후는 연속 출루 기록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정후는 23일 메츠전에서 3타수1안타 1볼넷 1득점으로 ‘멀티 출루’에 성공하면서 연속 출루 기록을 13경기로 늘렸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데뷔 시즌 최장 연속 출루 기록은 2015년 강정호(당시 피츠버그)가 기록한 17경기다. 지금의 이정후라면, 강정호를 따라잡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