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첫 역전 선두 등극을 노리던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이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만났다. 시즌이 한창인 가운데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장과 감독을 동시 경질했다.
임형준 흥국생명 구단주는 2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여일 단장도 동반 사퇴한다. 일단 흥국생명은 이영수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흥국생명은 “권순찬 감독은 고문 형태로 계속 조언 등을 해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단주 이름으로 감독의 사퇴를 발표하는 것부터 이례적이다. 현재 팀 상황을 보면 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지난 시즌 6위였던 흥국생명은 팀의 3라운드 일정을 마친 이날 현재 리그 2강을 굳히고 있다. 리그 2위(승점 42점·14승4패)로 선두 현대건설(승점 45점·16승2패) 추월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또 2022~2023시즌 V리그 역대급 흥행의 중심에도 있다. 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온 ‘월드 스타’ 김연경을 앞세워 리그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남겼다. 그러나 팬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표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팀 내에서 권순찬 전 감독을 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흥국생명은 이날 오전 권순찬 감독에게 사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도 ‘사퇴’ 형식을 빌었지만, 사실상의 경질이다. 발표까지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올 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에 부임한 권순찬 전 감독은 성공적인 시즌을 이끌면서도 단 9개월, 리그 기준 18경기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단명 사령탑’이 됐다.
임형준 구단주는 보도자료에 “흥국생명을 사랑해주신 팬들께 죄송하고, 지금까지 팀을 이끌어온 권순찬 감독께는 감사드린다”고 했다. 빠른 봉합을 기대하지만, 권순찬 전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 배경을 두고는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다. 배구계에서는 흥국생명의 이날 결정에 권순찬 전 감독과 구단 사이에 의견 충돌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흥국생명은 1위 현대건설이 부상으로 주춤한 가운데 모처럼 잡은 선두 도약 기회에서 내부 혼란으로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게 됐다. 흥국생명은 지난달 28일 3라운드 최종전에서 만난 현대건설을 올 시즌 처음으로 꺾으며 좋은 흐름 속에 있었다. 시즌 중 리더십 교체로 인한 팀 분위기 수습이라는 돌발 변수로 인한 파장이 팀의 이후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