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프로스포츠에서 걸출한 선수 한명이 안겨주는 이른바 ‘스타 파워’는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KBO는 KIA 타이거즈 김도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전국구 인기를 자랑하는 인기 구단인데다 3년차에 접어든 김도영이 잠재력을 제대로 터트리며 구름관중을 몰고다니는 모습이다.
외모, 성격(대외적으로 보이는), 캐릭터 등 인기의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실력이다. 김도영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까지는 잠재력높은 기대주로서 주로 KIA팬들 사이에서만 귀한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지만 올시즌 리그판도를 제대로 흔들어대며 10개 구단 팬 모두에게 주목받는 KBO간판 캐릭터로 떴다.
타율,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등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비롯 호타준족의 상징인 30-30클럽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리그 최초 월간 10-10클럽, 최연소 전반기 20-20클럽, 최소 타석-내추럴 사이클링 히트, 최연소 시즌 100득점 선점, 최소 경기 시즌 100득점 등 각종 굵직한 기록들도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 동시에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시즌 MVP, 30-30클럽, 다관왕 등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았다.
농구 역시 어떤 스포츠보다도 스타 파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슛도사 이충희와 전자슈터 김현준의 라이벌 매치, 허동택 트리오를 앞세운 기아자동차 왕조, 1990년대 초중반 스타군단으로 거듭난 연세대와 대항마 고려대 스토리 등…, 농구가 흥행하던 시기에는 걸출한 스타들이 펄펄 날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로농구화 이후에는 다소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인 질은 높아졌지만 외국인선수 파워가 워낙 거셌던지라 거기에 근접하는 경기력을 보여준 토종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서장훈 김주성 하승진 오세근은 흔치않은 주전급 토종 빅맨으로, 이상민 김승현은 빼어난 패싱센스로 한시대를 호령했다.
농구의 꽃은 득점이다. 어쨌거나 득점을 많이하는 쪽이 이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주득점원에게 에이스, 간판스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아쉽게도 KBL에서는 단한번도 외국인선수외 득점왕이 나온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종 득점왕이다. 2009~10시즌 문태영이 국내선수 득점왕에 오른바있으나 그는 혼혈 선수였다.
만약 순수한 토종 득점왕이 탄생한다면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외국인선수의 전유물인 리바운드(서장훈), 블록슛(김주성)에서는 토종선수의 수상이 나온바있지만 아직까지도 득점왕만큼은 벽이 너무 크고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선수를 꼽으라면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소속 듀얼가드 이정현(25‧187cm)이 있겠다.
이정현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44경기에서 평균 22.80득점(5위), 6.61어시스트(1위), 3.39리바운드, 1.98스틸(1위)을 기록했다. 외국인선수를 포함해도 MVP를 노릴만 했다.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 오르지못한 팀 성적이 발목을 잡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도 MVP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가 이제는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르고 있다는 것 만은 누구나 인정하는 분위기다.
현재 주 포지션은 포인트가드지만 이정현의 최대 무기는 역시 득점력이다. 1차적으로 자신의 공격력을 통해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빈틈을 노려 동료들을 살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선호한다. 리그내 어떤 토종 에이스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않는 득점력을 보유하고있기 때문이다.
과감한 돌파로 끊임없이 림어택을 노리면서도 타이밍을 빼앗는 미드레인지 점퍼로 수비진을 교란한다. 찬스다 싶으면 외곽에서도 거리에 관계없이 3점슛을 던진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보다 작거나 비슷한 사이즈의 상대가 매치업이 되었다싶은 순간에는 탄탄한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포스트업을 치며 공격루트를 넓혀가고 있다.
이정현이 더욱 기대를 받는 것은 이같은 플레이가 국제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통하고있다는 부분이다. 최근 아시아 농구에서는 일본이 가장 핫하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미국과 더불어 우승후보로 꼽히고있던 프랑스에게 연장접전 끝에 아쉽게 패하는 등 탈 아시아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카와무라 유키는 172㎝의 초단신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도 그 기량이 통하고 있다.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큰 장신 선수들을 상대로 스텝백 3점슛을 던지고 돌파를 성공시키는 모습에 해외 팬들도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내 팬들은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이정현이 있다”는 의견을 내고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정현은 지난 일본과의 국가대표 평가전 당시 카와무라 못지않은 퍼포먼스로 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카와무라가 해내고있다면 이정현도 못할 것은 없다. 이정현 또한 워낙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해외로 가고싶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만약 다음 시즌 이정현이 전인미답의 토종 최초 KBL 득점왕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팀 성적을 떠나 상징성때문에라도 MVP를 받을 공산이 크다. 카와무라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키가 작아서, 동양인이라서’라는 말은 이제 의미가 없다. 잘하는 선수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잘한다. 이정현의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