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즌 농구 팬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 팀을 꼽으라면 서울 SK 나이츠를 빼놓을 수 없다. 우승은 7차전 접전 끝에 안양 KGC의 차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6강전부터 달리고 또 달리며 체력을 빼지 않았다면 SK의 몫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타팀 팬들의 시선까지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팬들 사이에서 ’미라클 SK‘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사실 SK가 지난시즌 플레이오프에서 그 정도까지 선전을 거듭할지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지난 시즌 통합우승을 거둔 디펜딩챔피언이기는 했으나 안영준(29‧194.1cm)이 군복무 문제로 자리를 비운 것을 비롯 최준용(29‧200.2cm) 또한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막 전성기에 접어든 젊은 주전 2명이 빠진 것을 비롯 야전사령관 김선형 또한 노장대열에 들어서고 있는지라 쉬어가는 시즌이 될 것이다는 예상 또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저력의 SK 그러한 혹평을 뒤집어놓으며 선전을 거듭했다.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난항을 거듭하는 모습이었으나 중반 이후 김선형의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비록 3위에 그치며 4강직행에는 실패했지만 2위 창원 LG와 승률이 같았으며 1위와도 한게임차이밖에 나지않았다. 조금만 일찍 발동이 걸렸어도 정규시즌 1위까지 욕심낼만했다. 안영준, 최준용없이 그런 성적을 냈다면 그거는 그거대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봄의 돌풍을 이끈 것은 돌격대장 김선형(35‧187cm)이다.
앞선에서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에이스이자 모든 동료들이 신뢰하는 팀내 리더다. 지난 시즌의 그는 한창 젊고 팔팔했던 시절보다 더 무서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놀라운 활약상을 펼쳐보였다. 나이를 먹고서도 특유의 돌파력이 여전한 가운데 손끝 감각이나 상황을 읽는 눈 등이 더욱 노련했다.
예전에는 높은 에너지 레벨과 폭발력으로 상대를 부수고 들어갔다면 지난 시즌의 그는 흐름을 읽고 조절하는 느낌까지 줬다. ‘투사에서 도사가 됐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정도까지 스탭업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전성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기량을 과했다.
KCC와의 6강 플레이오프는 SK 쇼타임의 시작이었다. 부상자들까지 조기복귀시키며 ‘내일은 없다’는 듯 총력전에 나선 KCC를 상대로 단 한경기도 내주지않고 3연승으로 시리즈를 가볍게 마무리지었다. KCC는 김선형과 자밀 워니(30‧199cm)의 원투펀치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김선형은 돌파만 신경쓴다고 막아지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차전(11득점, 10어시스트, 2스틸), 2차전(22득점, 7리바운드, 11어시스트, 2스틸), 3차전(10득점, 8리바운드, 10어시스트)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6강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두자릿수 평균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개인 공격력에 더해 동료들에게 파생되는 다양한 효과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김선형이 미들라인 인근까지 치고 들어오면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언제나 그랬듯이 유려한 스탭으로 벗겨내듯 수비수를 제치고 언더슛을 올려놓던지 아님 점점 정확도를 더하고있는 미들슛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외국인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득점 감각을 지닌 워니와의 이대이 플레이도 경계해야 한다.
이정도만해도 충분히 어렵다. 하지만 6강전에서 보여준 김선형과 SK의 공격루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비진의 시선이 자신과 워니에게 쏠렸다 싶은 순간 어느새 포스트 인근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있는 최부경(34‧200cm)에게 손쉬운 패스가 들어간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사이답게 최부경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빈 공간을 확보하고 김선형의 패스를 잘 받아먹었다.
끝이 아니다. 김선형의 킥아웃패스는 언제든지 외곽의 궁병대 베테랑 허일영(38‧195cm)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 경험많은 노련한 궁수 허일영은 높은 확률로 3점슛을 적중시키는 것을 비롯 순간적으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들어가는 컷인 플레이 등을 통해 톡톡히 화력 지원을 해줬다. 장신 슈터답게 적극적인 골밑플레이 참가를 통한 리바운드 경합, 팁인슛 등도 일품이다.
이렇듯 돌격대장 김선형의 손끝을 중심으로 SK 기사단은 빠르면서도 다채로운 공격 전술을 구사했다. 이곳저곳에서 창을 찔러대고 칼과 도끼를 내리친다. 외곽에서 쏘아오는 화살에 더해 종잡을 수 없는 궤적에서 채찍까지 휘둘러지면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어디서부터 막아내야할지 난감해지기 일쑤다.
기세는 LG를 상대로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정규시즌 2위를 아슬아슬하게 빼앗긴 것을 확실하게 돌려주었다. 아쉬웠던 것은 체력이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KGC를 압도할 때만해도 기세가 이어지는듯 싶었으나 6강을 치른 것과 4강 직행팀은 피로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김선형과 워니의 속공 농구는 알고도 막기 힘들었지만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힘이 떨어졌고 결국 7차전에서 분루를 마시고 말았다.
올시즌을 앞두고 SK팬들은 기대가 많았다. 포워드진의 에이스 안영준이 돌아오는데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던 팀의 간판스타 오세근(37‧199.8cm)까지 합류했기 때문이다. 지난시즌 준우승팀에 2명의 국가대표급 선수가 추가된 것인데 그로인해 시즌전 KCC와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불렸다.
하지만 주축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부상을 당하는 악재속에서 성적은 기대치에 미치지못했다. 김선형, 오세근도 예전같지않아 노쇠화 얘기가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지난시즌 행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플레이오프에서의 SK는 모른다. 베테랑이 많은 구성은 정규시즌에서는 힘겨울지 모르겠지만 단기전에서는 노련함으로 바뀔 수 있다.
SK가 이번 플레이오프 6강에서 맞붙을 상대는 지난 시즌과 동일하게 KCC다. 본인들과 마찬가지로 기대이하의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우승도 충분히 노려볼만한 전력인지라 승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지난시즌 KCC보다 훨씬 강하다. SK가 챔피언결정전을 노린다면 최대한 6강전을 빨리 끝내고 4강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팬들은 지난시즌 보여준 미라클 돌격대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