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CC 제공 |
라건아(KCC)의 라스트 댄스는 계속된다.
프로농구 KCC가 확률 0%에 도전한다. 정규리그 5위에 그쳤다. ‘슈퍼 팀’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였다. 봄 농구에선 달랐다. 힘을 모았다. 한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6강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서 SK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포효하더니 정규리그 우승팀 DB까지 잡았다. 4강 PO서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웃었다. 이제 시선은 챔피언결정전으로 향한다. 지금껏 리그 5위 팀이 정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것을 일궈보려고 한다.
슈퍼 팀이라는 명성에 맞게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KCC다. 그 속에서도 단연 센터 라건아에게로 시선이 향한다.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라건아는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PO 7경기서 평균 30분 이상 코트 위를 누비며 23.3득점 13.1리바운드 등을 기록했다. 15일 원주에서 열린 DB와의 4강 PO 1차전은 가히 원맨쇼에 가까웠다. 혼자서 34득점 19리바운드를 책임졌다. 기선제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라건아는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다. 2012~2013시즌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 사실 외인치고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신장(200.5㎝)이었다. 공격 옵션이 페이트 존에 한정되는 등 적응에 애를 먹기도 했다. 경험이 더해지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긴 팔과 엄청난 활동량을 앞세워 코트 위를 장악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슈팅도, 수비력도 더 탄탄해졌다.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 역대 외인 득점 1위(1만1343점)에 빛난다. 국내 선수까지 범위를 넓혀도 서장훈(은퇴·1만3231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큰 무대에도 강하다. 손에 낀 찬란한 반지들이 대변한다. 외인 중 챔프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대모비스서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3연패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8~2019시즌에도 왕좌에 올랐다. PO 통산득점에서 1459점으로 김주성 DB 감독(1502점)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중이다.
사진=KCC 제공 |
2018년 큰 결심을 꾀한다. 특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정식으로 라건아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물론 모든 것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워낙 뛰어난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탓에 제약이 꽤 많았다. KBL은 전력 평균화를 위해 라건아를 규정상 외인으로 분류했다. 1옵션 혹은 2옵션 외인 샐러리캡도 라건아와 소속 구단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라건아는 울산모비스, 삼성 등을 거쳐 KCC에 둥지를 틀었다. 2019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했다. 2021년 계약 연장을 체결, 3년 더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계약기간은 올해 5월까지다. 국가대표도 마찬가지.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다. 시즌 후 어떤 길을 걸을지 미지수다. 다시 시장에 나설지, 나서더라도 손을 내미는 팀이 있을지 알 수 없다. 30대 중반의 나이(1989년생)도 고민을 가중케 하는 부분이다.
라건아의 라스트 댄스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KCC에선 아직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번 챔프전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각오다. 전창진 KCC 감독은 물론 동료들의 기대치도 높다. 송교창은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예상하는 질문에 주저없이 라건아의 이름을 꺼냈다. “모든 분들이 보셨듯이 라건아는 코트 안에서 무서운 영향력을 보여준다. 챔프전에서도 보여준다면 압도적으로 MVP를 받을 것 같다”고 눈빛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