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감독은 오른손에 휘슬을 든 채 분주하게 코트 위를 헤집고 다녔다. 반바지 차림으로 코치들과 격의 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눴고, 선수들에겐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공격에 성공한 센터 조재영(29)에게 “라이트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농담을 던지자 선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속공 훈련이 시작되자 이내 표정이 진지해졌다. 선수들 하나하나를 불러가며 토스의 높이, 블로킹 동작 등을 세밀하게 지도했다. V리그에서만 12시즌을 보낸 베테랑 세터 한선수(35)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8일 경기 용인시 대한항공 체육관에서 열린 로베르토 산틸리 신임 감독(55)의 첫 훈련 현장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산틸리 감독은 V리그 남자부 첫 외국인 사령탑이다. 세터 출신의 산틸리 감독은 호주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프로팀 등을 지도했다. 선진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선수단에 새로운 변화를 꾀한다는 게 구단 측이 밝힌 영입 배경이었다. 대한항공은 감독과 선수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 요원도 새롭게 채용했다.
지난달 24일 입국해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마치고 이날 선수단과 첫 인사를 나눈 산틸리 감독은 “부담감이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부담감을 즐긴다. 한국에 온 것 자체가 나에게 도전”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여자부 KGC인삼공사의 외국인 선수 디우프의 조언도 좋은 참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