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김용호 기자] 낭비할 시간이 없다.
고양 오리온은 지난 14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와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89-67로 승리했다. 그야말로 죽다 살아났다. 홈에서 1,2차전을 모두 패했던 오리온은 원정길을 떠나 시리즈 첫 승을 거뒀고, 4차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나, 오리온은 3차전 승리를 만끽할 수 없었다. 여전히 시리즈에서는 1-2로 열세에 처해있어 4차전을 지면 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더욱 큰 문제도 생겼다. 골칫덩어리 외국선수 데빈 윌리엄스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애초 강을준 감독은 3차전을 앞두고 윌리엄스에 대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한다. 오늘(3차전) 뭔가 해주면 땡큐인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땡큐를 외칠 일은 없었다.
윌리엄스는 3차전에서 10분 59분 출전, 4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차전까지 넣은 득점의 두 배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팀이 대승을 거두는 과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2쿼터 작전타임 도중 강을준 감독에게 지적을 받은 이후 선수단과 멀찍이 떨어져 작전 지시를 듣지 않는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 후에도 윌리엄스의 돌발행동에 대해 말을 전했다. 강 감독은 “윌리엄스에게 그 행동은 계약 위반이라고,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조나단 모트리는 리바운드 경합 후 빠르게 백코트를 하고 있는데, 본인은 리바운드에 참여하느라 백코트를 느리게 했다고 하더라. 경기 막판에 던진 슛도 정말 성의 없었다. 본인도 계약 위반을 했다고 인정했다”라며 가감 없이 윌리엄스와의 이야기를 밝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강을준 감독이 넌지시 던진 말이 있었다. “전자랜드보다 데빈과 싸운 것 같다. 상대 팀하고 싸워야 하는데, 아군하고 싸우고 있다”라는 멘트였다.
윌리엄스가 코트와 벤치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다만, 이 말이 이미 시리즈가 절반 이상 지난 3차전 종료 후에 나왔어야 할 말이었을까.
오리온은 갈 길이 멀다. 4강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5전 3선승제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역대 최초의 역스윕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 번을 이겼는데, 두 번을 더 이겨야 한다. 당장 선수단의 사기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팀을 이끌어야 할 강을준 감독은 공개적으로 선수와 싸우고 있다.
물론 당장 외국선수를 교체할 방법도 사실상 없고, 디드릭 로슨이 매 경기 40분을 뛸 수도 없는 사정은 있다. 그러나 코트 위에서 결코 플러스 요인이 되지 못하는 윌리엄스에게 3경기 평균 무려 11분여의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1차전을 허탈하게 내줬던 오리온은 2차전에서 국내선수들의 확실한 경기력 회복을 확인했다. 그러나 윌리엄스의 ‘빵점 활약’에 또 패배했고, 분투한 국내선수들이 3차전을 승리로 이끄는 동안 윌리엄스는 또 팀에 해가 됐다.
윌리엄스와는 달리 3차전 최다 득점으로 승리를 이끈 로슨은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특정 선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감독과 선수 간에 불화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지금 우리는 경기에 뛰는 선수들이 합심을 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리온에게는 더 이상 마이너스 요인을 끌고 갈 여유가 없다. 발목 부상 재활 중인 이승현은 매 경기 복귀를 타진하며 팀에 플러스가 되고자 하는 상황에서 윌리엄스의 행동은 선수단의 사기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선수단이 되레 이 상황에 역효과로 집중력을 끌어올리길 바라는 건 그저 바람일 뿐일 수도 있다.
강을준 감독과 오리온에게는 더 날카로운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4차전을 승리하더라도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5차전에도 위험 요소를 안고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