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개막전, 강백호는 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했을까 [배지헌의 브러시백]

560 0 0 2021-08-11 13:5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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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강백호, 10일 경기 마스크 쓰고 타석에 등장…대표팀 논란 의식했나
-동메달 결정전 껌 씹는 모습, 커뮤니티와 일부 언론 통해 ‘논란’ 비화…SNS 댓글 창 닫아
-고교 시절부터 겉모습 때문에 부당한 오해 받아…강백호를 아는 사람들 평가는 전혀 달라
-강백호 껌 논란은 본질 아니다, 진짜 문제의 본질 직시해야
 
10일 경기에 마스크를 쓰고 출전한 강백호(사진=중계화면 캡처)
 
[엠스플뉴스]
 
KT 위즈 강백호가 얼굴을 가렸다. 
 
8월 1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T와 키움의 후반기 개막전, 1회 첫 타석에 나선 강백호는 검은색 마스크를 눈 밑까지 바짝 올려 쓴 모습이었다. 검투사 헬멧과 검정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두 눈만이 강백호가 강백호임을 증명했다. 마스크 아래에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강백호는 왜 마스크를 쓰고 타석에 나왔을까.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2천 명을 돌파한 엄중한 시국 때문인가 싶지만, 이날 경기에 나온 KT와 키움 선수 중에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 나온 선수는 강백호 하나뿐이었다. 강백호는 백신 2차 접종까지 끝낸 몸이라 굳이 타석에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할 이유는 없다. 원래 타석에 마스크 쓰고 나오던 선수도 아니다. KT 위즈 구단 사진 자료실에서 강백호가 마스크 쓴 사진을 찾으려면 3월 30일 시범 경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여지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태도 논란 강백호, 알고 보면 깔 게 없는 선수
 
강백호를 멀리서 보기만 하는 사람들의 평가와, 실제로 아는 사람들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사진=KT)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는 익명성을 담보한다. 복면은 신분과 정체성, 얼굴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감추는 수단이다. 강백호는 최근 ‘표정’ 때문에 한바탕 큰 곤욕을 치렀다. 7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팀이 6대 10으로 뒤진 8회, 더그아웃 난간에 기대 껌을 씹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포착됐다.
 
이를 본 박찬호 KBS 해설위원은 “비록 지더라도 우리가 보여줘선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계속 미친 듯이 파이팅을 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딱히 강백호를 비난하려는 의도보다는,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투지를 보여주길 바라는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나 경기 후 강백호의 껌 씹는 모습을 캡처한 사진과 박찬호의 멘트가 각종 커뮤니티에 퍼 날라지고 기사화되면서 강백호의 태도는 ‘논란’으로 비화했다. 온갖 사건·사고로 쑥대밭이 된 프로야구, 메달 획득에 실패한 대표팀을 향한 실망감이 강백호라는 과녁을 향해 집중됐다. 
 
강백호는 졸지에 대표팀 실패의 원흉이 됐고, 선수들의 집중력과 투지 부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 야구 선배와 원로들까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 배에 기름이 꼈다”고 후배들을 비난하는 데 동참했다. 화풀이 대상을 찾아다니는 네티즌들은 강백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고, 결국 강백호는 댓글 창을 차단해야 했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강백호는 대표팀 이전부터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부당한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다. 강백호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멀리서만 보는 사람들은 ‘버릇이 없다’ ‘건방지다’고 비난했다. 반면 실제로 강백호와 함께 생활하는 선배와 지도자들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선후배에게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강백호는 다른 고교생 선수들과 달랐고 보통의 신인 선수들과 달랐다. 어린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미숙하거나 불안하거나 고분고분한 모습을 강백호에게선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상황에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당당한 그 태도가 누군가에겐 건방지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가 잘 모르는 사람에겐 기분 나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땐 선배들에게 꾸중도 들었다. 강백호가 어떤 선수인지 알게 된 지금은 선배들도 뭐라 하지 않는다.
 
강백호는 무덤덤한 표정 뒤에 누구보다 강한 투지와 야구에 대한 열정을 감추고 있다. 꼭 미간 가득 인상을 쓰고, 간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야 정신력이 강하고 투지가 강한 건 아니다. 애초에 정신력이 약한 선수였다면 데뷔하자마자 프로 무대를 초토화하지도, 4할 타율을 넘나들 수도 없었다. ‘껌 질겅질겅’ 장면만 부각 돼서 그렇지 대표팀에서 강백호는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보여줬다. 역전타를 치고 동료들을 향해 포효하기도 했고,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있었다. 강백호는 누구보다 간절했다. 
 
강백호는 KT 팬들에게 ‘연쇄싸인마’로 불린다. 팬들에게 누구보다 사인 잘 해주고 사진 잘 찍어주는 선수가 강백호다. 구단 영상에선 착한 얼굴로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해놓고 뒤에선 소가 닭 보듯 하는 선수들과는 다르다. 강백호는 음주도 거의 하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어떤 선수들은 ‘숙소에선 잔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방역수칙 위반 술판을 벌여 물의를 빚었다. 신사적이고 가정적인 이미지의 선수가 대마초 성분이 함유된 전자담배를 수입하려다 퇴출당한 사례도 있다. 
 
강백호가 언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행동을 한 적이 있었나. 프로야구 선수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적이 있나. 자기는 현역 시절 온갖 일탈을 하고서 후배들 욕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라도 했나. 단지 올림픽 7경기 동안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못 했을 뿐이고, 4시간짜리 경기 시간 중에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보기에 안 좋은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애절하고 간절한 표정을 짓지 않은 괘씸죄로 분풀이 대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진 것뿐이다.
 
누구보다 강백호를 잘 아는 KT 이강철 감독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감독은 10일 경기전 인터뷰에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다. 변명할 수는 없는 일이고, 받아들이는 분들마다 다 생각이 다를 거다. 백호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나 역시 죄송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본인이 지금 가장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보시는 분들과 백호 본인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의 아니게 그런 표정이 나온 것뿐이지, 백호가 TV나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도 없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TV에 순간적으로 비추는 한 장면,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었을 강백호, 마스크로 표정 감췄다
 
강백호를 제물 삼은 소모적 논란은 한국야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사진=KT)
 
온갖 도를 넘은 비난이 강백호에게 쏟아지는 사이에, 한국야구와 대표팀의 진짜 문제는 어느새 뒷전이 됐다. 
 
기록으로 남지도 않고 트랙맨에 찍히지도 않는 정신력, 투지를 중계화면 캡처 하나만 갖고 싸잡아 비난할 때가 아니다. 한국야구를 지금의 위기로 만든 근본적인 원인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후배들 열심히 욕하는 선배 야구인들부터 이어져 온 모럴 해저드, KBO의 무능력과 무사안일, 10개 구단의 이기주의와 승리 지상주의가 쌓이고 쌓여 한때 환호의 대상이었던 야구를 ‘극혐’으로 만들었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처절하게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 많다. 야구 원로라는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선수들과 후배들을 비난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든다. KBO나 힘 있는 사람들에겐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만만한 게 후배들이다. 본질은 못 건드리고 비난은 해야겠으니 애꿎은 강백호 태도나 정신력, 투지 타령만 고장 난 라디오처럼 되풀이한다. 
 
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해설위원은 “선배님들이 후배들 욕 좀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본인들 젊은 시절 생각하면 그런 비난을 하실 수 있나. 후배들한테 손가락질 하기 전에 우리부터 반성하는 게 먼저다. 후배들 욕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익명을 전제로 말했다. 
 
지방구단 관계자는 “선수들도 결코 잘한 건 없지만 지금의 사태를 부른 가장 큰 책임은 리그 중단이란 치명적 오판을 저지른 KBO와 10개 구단이 져야 한다. 대표팀의 실패도 따지고 보면 준비 과정, 선수 구성에서 드러난 KBO의 안일함이 가장 문제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꼬집었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광기 어린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강백호는 말도 안 되는 비난에 해명하거나 맞서는 대신, 얼굴을 감추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나선 첫 타석, 강백호는 3루 땅볼을 치고 전력으로 질주해 1루에 세이프됐다.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추가한 강백호는 이날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강백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마스크 속에선 성난 군중의 요구대로 죄송해하고 자책하는 듯한, 간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강백호다운 모습을 보였다가 괜한 욕을 먹을 필요도 없다. 어쩌면 검은 마스크는 이 흉흉한 시절에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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