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욱(왼쪽)이 지난 2017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헤딩슛하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경색되며 양국 정치와는 무관한 스포츠의 지형도까지 바꾸고 있다.
스포츠에서 한일전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당장 올해 12월 부산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여자는 북한)이 참가하는 동아시안컵은 사실 비중이 큰 대회는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캘린더에 포함되지 않은 대회라 손흥민(27·토트넘)과 황의조(27·보르도)를 비롯한 유럽파가 뛸 수 없다. 객관적인 전력만 따진다면 1.5군 정도가 맞붙다보니 맥빠진 무대라는 얘기도 나왔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이지만 지상파 중계가 빠졌을 정도다.
그런데 반일 감정이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과 일본이 맞붙는 12월18일 동아시안컵 최종전은 벌써 광고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태극마크를 달고 일본과 맞붙는 첫 국제대회, 그것도 우승을 다투는 진검승부라는 점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이 나왔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은 역대 일본과의 전적에서 41승23무14패로 일방적으로 앞선다. 그러나 동아시안컵에선 2승2무2패로 팽팽하다. 2년 전인 2017년 일본 도쿄에선 김신욱의 멀티골(2골)에 힘입어 4-1로 웃었으나 정작 서울 잠실에서 열린 2013년 맞대결에선 1-2로 졌다. 반일을 넘어 극일의 무대로 바뀐 동아시안컵을 둘러싼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게 축구의 숙명”이라고 덧붙였다.
달라진 한일전의 무게가 파울루 벤투 감독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 포르투갈 출신의 명장인 그는 올해초 우승을 노렸던 아시안컵에서 8강에서 탈락했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지 얼마 안 된 상태인 ‘허니문’의 힘으로 버텼다. 그러나 벤투 감독이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에 진다면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 맺은 장기 계약도 흔들릴 수 있다. 벤투 감독을 지지하는 여론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한국이 FIFA 랭킹 37위로 이란(23위)과 일본(33위)에 이어 세 번째인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내년 카타르월드컵 3차예선에서 한일전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한국과 일본이 만날 확률은 50 대 50”이라며 “만약 성사된다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1997년 11월 1일)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벤투호의 운명을 가르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