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LG에 브렌트 쿡슨이란 외국인 타자가 있었다. LA 다저스 출신 우타 거포 외야수로 2000년 5월 LG 대체 선수로 합류한 뒤 20경기에서 홈런 6개를 쳤지만 타율 2할2푼2리로 고전했다. 손가락 부상까지 당하며 7월에 중도 퇴출됐다.
2000년 당시 LG 투수였던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은 “프리 배팅을 하면 잠실구장 장외로 넘길 만큼 파워가 좋았다. 성실하고 착한 선수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팀에 민폐 끼친 게 너무 미안하다며 떠났었다”고 기억했다. 미안함이 얼마나 컸으면 구단에 잔여 연봉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쿡슨은 2003년 다시 LG와 계약하며 기회를 얻었지만 23경기 타율 2할1푼4리 2홈런 5타점에 그치며 한 팀에서 두 번 중도 퇴출된 진귀한 사례로 남았다.
최원호 감독대행이 20년 전 외국인 선수를 별안간 꺼낸 이유는 현재 한화 외국인 투수 채드벨 때문이었다. 지난해 워윅 서폴드와 함께 한화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재계약에 성공한 채드벨은 올 시즌 팔꿈치 통증 여파로 부진에 빠졌다. 11경기에서 승리 없이 7패 평균자책점 7.01. 한화는 채드벨이 나온 11경기에서 무승부 한 번을 제외한 10경기에서 모두 졌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한화가 지금처럼 압도적인 최하위로 떨어지지 않았거나 대체 선수 구하기가 어려운 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벌써 교체됐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상황, 일각에서는 “채드벨을 쓸 바에야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최원호 대행은 “외국인 선수를 안 쓰면 ‘경기를 지려고 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부상이 없다면 외국인 선수는 웬만해선 써야 한다”며 “팀 내 젊은 선수들이 옆에서 보고 배우는 면도 있다. 외국인 투수들이 등판 전까지 철저히 루틴을 지키며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선수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원호 대행은 “결과가 안 좋아서 그렇지 채드벨은 평소에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다. 팀에 융화되지 못하고, 괴팍한 성격의 외국인 선수들도 있다. 그래서 채드벨 같은 선수를 보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아쉬워했다.
채드벨뿐만이 아니다. 서폴드는 등판 날 다혈질적인 기질이 있지만, 평소 덕아웃에서 응원단장 역할을 하며 움츠러든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는다. 대체 선수로 합류한 타자 브랜든 반즈도 경기 후 나머지 특타를 자청할 만큼 의욕적이다. 최원호 대행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선수다.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반즈는 햄스트링 통증을 호소하며 지난 15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채드벨과 서폴드는 15~16일 나란히 퀄리티 스타트로 호투했지만 반등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성적으로 증명해야 할 외국인 선수들의 숨은 가치는 결과가 나지 않으면 묻히게 된다. 안타깝지만 냉정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