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팀은 패했지만 손흥민(29)은 4골에 모두 관여하는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네 번째 골 장면에서는 번뜩이는 순간 판단이 돋보였다.
토트넘은 11일(한국시간) 오전 영국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튼과 2020~21 잉글랜드 FA컵 16강전(5라운드)에서 연장 120분 승부 끝에 4-5로 패했다.
토트넘은 전반 시작 4분 만에 산체스가 손흥민의 도움을 받아 헤더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후 수비 불안 속에 내리 3골을 허용했다.(1-3) 전반 막판 라멜라가 한 골을 만회한 뒤 후반 12분 동점을 이뤄낸 토트넘은 후반 23분 히샬리송에게 역전골을 얻어맞았다.
팀이 3-4로 뒤진 상황. 이때 진가를 발휘한 건 역시 '손-케 듀오'였다. 후반 38분, 코너킥 이후 손흥민이 왼쪽에서 재차 공을 잡았다. 에버튼 선수들은 손을 들며 손흥민이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톰 데이비스(23)를 앞에 둔 채 스텝 오버를 시도한 손흥민이 골 라인 쪽으로 드리블을 쳤다. 여기서 손흥민의 순간 판단이 빛났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릴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문전에 있는 맷 도허티와 다빈손 산체스가 잽싸게 발을 갖다 대거나 혹은 에버튼 수비수들을 맞고 골문 안으로 굴절되는 걸 기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손흥민의 선택은 반대쪽으로 높게 왼발로 감아 차올리는 크로스였다. 공을 잡는 순간, 순간적으로 손흥민의 앞쪽 시야에는 에버튼 수비수들이 일렬로 4명, 골키퍼까지 포함하면 5명이 서 있었다. 케인은 저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손흥민의 위치에서는 사실상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손흥민의 크로스 궤적이 기가 막혔다. 여기에 마치 볼이 올 줄 알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수비수를 떼놓는 케인의 순간적인 움직임도 좋았다. 손흥민의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 머리 위를 지나 절묘하게 빈 공간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 공을 향해 케인이 다이빙 헤더 골로 연결했다.
둘의 호흡을 설명할 때마다 외신은 '텔레파시를 쓰는 것 같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번 골 장면은 정말 텔레파시라도 쓴 듯한 환상적인 패턴 플레이였다. 앞서 볼 트래핑을 하는 순간, 미리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서로가 수년 간 같은 팀에서 함께 훈련하고 호흡을 맞췄기에 가능한 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