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부산)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에 꽤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아닌 이가 골키퍼로 나서 골문을 지켰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날리는 날카로운 슛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그는 누구일까?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27일 오전 10시 30분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전지훈련 4일차 일정을 진행했다. 이날 훈련에서 벨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 역습시 수적 우세 상황을 활용하는 반면 수비수들은 수적 열세 상황을 극복하는 훈련을 소화했다.
이날 훈련에서 벨 감독은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할 것없이 수적 상황을 활용해 최대한 날카롭고 지능적으로 역습을 진행하고, 반대로 수비하는 훈련을 1시간 30분 가량 진행했다. 벨 감독은 선수단을 두 조로 나눈 후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에서 이와 같은 훈련을 진행했는데, 이 훈련을 하려면 골키퍼는 네 명, 그리고 골문도 네 개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은 국가대표팀 훈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현재 여자축구 대표팀에 소집된 골키퍼는 세 명이다. 따라서 골키퍼가 한 명이 비게 되는 것이다.
필드 선수들의 미니게임 훈련일 경우 보통 갓 현역에서 은퇴해 지도자가 된 막내 코치가 시쳇말로 ‘깍두기’로 훈련에 합류해 머릿수가 부족한 팀의 한 부분을 채우게 된다. 하지만 골키퍼는 그럴 수 없다.
물론 골키퍼 코치가 있긴 하지만, 단 한 명인 골키퍼 코치는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의 경기력과 훈련 자세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에 몸을 던질 수 없는 처지다. 실제로 이날 정유석 여자축구 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운동장 밖에서 김정미 등 골키퍼들의 몸 상태를 면밀히 체크했다.
그렇다면 이 결원을 어떻게 채웠을까? 그 공백은 흥미롭게도 오명일 대한축구협회 홍보팀 과장이 메웠다. 여자축구 대표팀 담당 미디어 오피서인 오 과장은 26일 늦은 밤 코칭스태프로부터 골키퍼로 뛸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팀에 보탬이 되고자 생각지도 못하게 여자축구 대표팀 훈련에서 문지기로 나서게 된 것이다.
협회 직원이 대표팀 정식 훈련을 직접 수행하는 건 처음보는 광경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물론 완전히 ‘일반인’이기에 아무래도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훈련에 보탬이 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선수들의 슛을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번은 여민지의 슛을 막아내기도 했는데, 이때 밖에서 보던 코칭스태프의 말이 걸작이다. “아니, 그냥 아저씨에게 막히면 어떻게 해?”
오 과장 덕분에 여자축구 대표팀의 훈련장 분위기는 무척이나 밝을 수밖에 없었다. 정 골키퍼 코치는 “프로에 가면 한 5번 골키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잘한다”라고 웃었다. 반대편 골문에서 오 과장과 정면대결한(?) 국가대표 수문장 김정미는 <베스트 일레븐>과 인터뷰에서 “멀리서 봤는데 완전 슈퍼 세이브를 하더라. 최고였다. 나중에 한수 알려달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오 과장 때문에 자칫 고된 훈련을 소화하던 선수들의 표정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 과장에게 오늘 훈련 어떠했느냐고 묻자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오 과장은 “시키면, 다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직무가 아니긴 해도, 팀에 보탬이 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떠한 보직이든 수행하려는 모습이 꽤나 멋져보였다. 콜린 벨호가 선수단은 물론 주변에서 돕는 사람들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 있다는 걸 확인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