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수베로 감독-워싱턴 코치 /한화 이글스 제공
[OSEN=이상학 기자] 지난 2009년 LA 다저스 산하 상위 싱글A 인랜드 엠파이어 소속 내야수 조니 워싱턴(36)은 카를로스 수베로(48) 감독을 찾아가 솔직한 의견을 구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방출돼 독립리그를 전전하다 다시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빅리그를 꿈꾸던 ‘25세 청년’ 워싱턴에겐 빅리그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수베로 감독은 워싱턴을 잘 알고 있었다. 2006년 텍사스 산하 상위 싱글A 베이커필드 감독으로 워싱턴을 처음 만났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은 인정했지만 선수로서의 성장 가능성은 낮게 봤다. 수베로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고, 워싱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러면서 수베로 감독은 “항상 물어보고 공부하는 네 모습은 코치에 잘 어울린다”고 위로했다. 마침 다저스 팜 디렉터도 워싱턴의 코치로서 자질을 눈여겨보고 있던 터였다. 은퇴를 하기에 너무 젊은 나이라 플레잉코치를 제안했지만 워싱턴은 금세 선수보다 코치 임무에 몰입했다. 선수를 그만두게 한 수베로 감독 밑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이 일화는 지난 2019년 3월 미국 ‘디 애슬레틱’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만 35세 워싱턴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역대 최연소 메인 타격코치로 주목받았다. 다저스 마이너에서 작 피더슨, 코디 벨린저, 코리 시거 등 유망주 육성 능력을 인정받아 빅리그까지 올랐다. 수베로 감독은 “워싱턴은 매우 총명하고 똑똑하다. 코치 일을 시작한 뒤로 그 일에 푹 빠졌다. 낮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서번트 리더십’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베로 감독은 “워싱턴은 훌륭한 리스너로 작은 디테일에도 귀를 기울인다.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선수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언젠가는 메이저리그 감독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조니 워싱턴 타격 코치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감독과 선수, 감독과 코치로 함께한 두 사람이 2021년 다시 한 배를 탔다. 깊은 암흑기에 빠진 KBO리그 꼴찌 한화를 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베로 감독은 한화 사령탑에 취임한 뒤 구단이 요청한 타격코치 후보로 워싱턴을 추천했다. 빅리그에서 인정받는 코치를 데려오기 쉽지 않았지만 수베로 감독 전화 한 통이면 어렵지 않았다.
한화 구단이 면접을 진행했지만 샌디에이고와 계약이 남은 워싱턴 코치를 설득하며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협상 중 수베로 감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구단의 노력에 고마움을 나타낸 수베로 감독은 워싱턴 코치와 직접 통화를 했다. 바로 다음날 워싱턴 코치는 한화 구단에 연락을 취해 “한국에 가겠다”는 구두 답변을 했다.
샌디에이고와 계약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한화는 “변심하면 안 된다”는 당부를 했다. 이에 워싱턴 코치는 “수베로와 난 그런 관계 아니다. 그가 가는 곳은 무조건 따라갈 수 있다. 아내도 설득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워싱턴 코치의 한국행 결정에 샌디에이고 구단 등 현지 관계자들도 놀라워했다는 후문.
멘토 같은 존재인 수베로 감독이 아니었다면 워싱턴 코치가 한국까지 올 리 없었다. 타자 리빌딩 실패로 몇 년째 타격 지표가 하위권인 한화에서 타격코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인정한 워싱턴 코치가 한화 타자 유망주들도 육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