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긴 공백 탓에 밸런스도 잃었다. 양현종(33·텍사스)이 모처럼의 등판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텍사스 벤치도 양현종의 적절한 활용 방안을 고민할 법한 경기였다.
양현종은 12일(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경기에 0-8로 크게 뒤진 3회 2사 1루에서 등판했다. 이날 텍사스 선발 마이크 폴티네비츠는 1회에만 홈런 세 방을 맞는 등 3회 2사까지만 8실점하고 무너졌다. 경기가 급격하게 어려워진 가운데 텍사스가 양현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되도록 오랜 이닝을 던지며 불펜 소모를 최소화해주길 바랐다.
양현종은 5월 31일 시애틀 원정에서 선발 등판한 이후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텍사스가 양현종을 불펜으로 다시 돌리며 맡긴 임무는 롱릴리프였다. 그런데 그 롱릴리프의 기회가 생각보다 잘 오지 않았고, 양현종은 무려 11일이나 개점휴업을 해야 했다. 불펜 임무에 익숙하지 않은 양현종으로서는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구속이나 회전 수는 시즌 평균과 그렇게 도드라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우려대로 투구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았고, 그 밸런스에서 나오는 공이 정상적일리 없었다. 4회 푸홀스에게 허용한 홈런은 체인지업이 너무나도 높게, 또 덜 떨어졌다. 베테랑 푸홀스가 타이밍을 기다려서 받아칠 수 있을 정도의 실투였다. 양현종의 투구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미스였다.
다저스 타자들의 대처도 뛰어났다. 스미스는 몸쪽 슬라이더를 그대로 잡아 당겨 홈런을 만드는 수준 높은 타격 실력을 보여줬고, 벨린저는 바깥쪽 포심을 그대로 밀어냈다. 그러자 양현종도 당황한 듯 커맨드가 크게 흔들렸다. 테일러에게 안타를 맞은 건 포심이 높았고, 좌완에게 약한 럭스와도 너무 어렵게 승부한 끝에 볼넷을 내줬다. 의도한대로 포심 제구가 되지 않았다.
폴락 타석 때는 2S를 먼저 잡아두고도 연달아 볼 4개를 내주며 만루에 몰렸다. 4구는 슬라이더가 너무 빨리 꺾였고, 5구는 다저스타디움 백네트를 맞힐 정도의 황당한 공이 나왔다. 양현종의 투구 역사에서 저렇게 손에 빠지는 공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모두 변화가 너무 빨라 유인구로서의 임무를 못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너무 제구를 잘 하려는 생각이 오히려 독이 되는 듯했다. 우리가 알던 양현종이 아니었다.
텍사스 벤치는 투구 수 32개를 기록한 양현종을 5회에 뺐다. 이전처럼 한 번 등판하면 3~4이닝 정도를 바랐을 테지만, 일찍 교체한 건 결국 투구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의미와 같다. 이 경기를 텍사스 벤치도 복기할 것이다. 너무 긴 휴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았을 법한데, 그렇다고 자주 내보내자니 양현종은 그런 불펜 경험이 없다. 선발진에는 자리가 마땅치 않기도 하다. 양현종 딜레마가 시작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