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원했던 보직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책이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을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당장은 ‘마무리 김광현’이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 쉴트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21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갈 5명의 선수를 발표했다. 개막전 선발로 내정된 잭 플라허티를 비롯, 아담 웨인라이트, 다코다 허드슨, 마일스 마이콜라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다. 김광현의 이름은 없었다.
쉴트 감독은 김광현 제외를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누차 강조했다. 쉴트 감독은 “자리가 그것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광현을 넣으려면 5명 중 한 명을 빼야 하는데, 5명은 모두 확실한 실적을 가진 선수들이라 일단 안전하게 로테이션을 꾸렸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광현은 불펜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 단언하면서 마무리 투입 가능성도 열었다. 결코 비중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줄곧 선발로 뛰었다. 마무리로 나선 경험은 있지만, 극소수일뿐더러 포스트시즌과 같은 특이 상황이었다. 하지만 쉴트 감독은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낮은 볼넷 비율과 높은 땅볼 유도 비율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좌우 타자 모두에게 던질 수 있고, 공의 움직임, 그리고 아주 중요한 상황(high-leverage)에서 나선 경험도 갖추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처럼 마무리에 걸맞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이며 마무리론에 무게를 실었다.
김광현은 입단 후 “선발과 불펜 보직을 가리지 않고 팀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누차 밝혔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선발이었지만, 현지에서는 60경기 단축 시즌에서 ‘김광현 마무리’가 매력적이라고 분석한다. 김광현의 능력은 물론, 그가 여전히 미지의 선수라는 점에서도 더 그렇다.
세인트루이스 베테랑 담당기자인 제프 존스는 “그의 구종 조합은 물론 대부분의 MLB 타자들이 김광현을 본 적이 없다”면서 “단축 시즌 상황에서 그의 숨김을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존스는 “그는 몇몇 팀 동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2~3번 돌아 상대하면 그런 경향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시를 들었다.
선발투수는 하루에도 같은 타자들을 2~3번씩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마무리는 그렇지 않다. 1이닝을 던진다고 할 때, 김광현의 공을 직접 타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선수는 제한된다. 마무리가 매일 등판하는 것도 아니니 상대는 김광현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 60경기 단축 시즌이라면 한 시즌 내내 김광현을 만나지 못하는 선수가 많을 수도 있다.
김광현은 빠른 공은 물론 슬라이더·커브·투심 등 다양한 구종을 갖추고 있다. 이런 김광현의 특성을 단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마무리로 뛰면 그런 ‘신선함’을 선발에 비해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마무리 김광현’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올해 불펜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시즌 중간이나 내년 로테이션 합류 가능성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