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내 자리에 앉아 있던 LG 박용택(41)이 9회초가 끝나자 더그아웃 앞으로 방망이를 들고 나왔다. LG는 6일 잠실 삼성전 2-1로 앞선 9회초 마무리 고우석이 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한 터였다. 경기 흐름에 따라 하위 타순이 들어서는 9회말 공격에서 박용택의 대타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느새 2222경기째를 맞는 베테랑은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김민성이 삼진으로 물러났어도 박용택의 방망이는 멈추지 않았다. 더그아웃 한 구석에서 매섭게 방망이를 휘두르며 몸을 데웠다.
1사 뒤 유강남이 볼넷을 골랐고, 대기 타석의 구본혁이 물러났다. 대타 박용택이 타석을 향해 걸어왔다.
18년전인 2002년 4월16일 문학 SK전에서 프로 데뷔 첫 안타를 때렸다. 우익수 뒤를 넘기는 2루타였다. 이후 2000경기 넘게 치르는 동안 쌓인 안타가 2499개였다. 팀이 가을야구 진출을 두고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고, 박용택은 대타로 매 경기 기다리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9년 1000안타를, 2016년에는 2000안타를 때렸다. 2018년 6월23일 잠실 롯데전에서는 양준혁의 2318안타를 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박용택의 이후 안타 하나하나가 모두 KBO리그 개인 통산 안타의 신기록이었다.
마운드에는 삼성 우완 이승현이 올라와 있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초구와 2구를, 박용택은 침착하게 지켜봤다.
박용택은 2002년 이후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KBO리그를 지켰다. 매년 2008년(86안타)을 빼고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6시즌 동안 3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KBO리그 최초로 10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 꾸준히 쌓은 기록은 누구나,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그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아주 특별하다. 오랜 평범함은 오히려 그 평범함 속에 가려진 수많은 노력과 인내를 증명한다.
1루주자는 발빠른 신민재로 바뀐 터였다. 3구째 존을 통과하는 143㎞ 짜리 속구를, KBO리그 통산 9120번째 타석에 들어선 박용택이 놓치지 않았다. 2500번째 안타 타구는 묘하게도, 18년전 첫 안타 때와 똑같은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였다. 박용택은 주저없이 달려 2루에 멈췄다. 1루주자 신민재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대기록 달성 안타는 짜릿한 끝내기 안타가 될 뻔 했다.
잠실구장 전광판에 2500안타를 축하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투수가 교체되는 동안, 박용택은 2루에서 잠시 떨어져 전광판을 지켜봤다. 2222경기, 9120타석에서 만들어낸 2500개의 안타, 440개의 2루타. 숫자의 크기만으로도 묵직한 기록이다. 박용택이 2루에 서 있을 때 삼성 유격수 김호재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김호재의 통산 안타는 30개. 박용택의 2500안타를 지켜 본 김호재는 연장 10회초 안타를 더해 31개로 늘렸다. 2002년 박용택의 첫 안타가 그랬던 것처럼 김호재의 야구도언제까지 길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박용택은 홈을 밟지 못했다. LG는 이어진 1사 만루에서 내야 뜬공과 외야 뜬공으로 이닝을 마쳤고 박용택의 득점은 1259점에 머물렀다. 9회말이 끝난 뒤 작은 기념식이 열렸다. 삼성 허삼영 감독도 꽃다발을 건넸다. 기념식 동안 멋쩍은 웃음을 짓던 박용택은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병규 타격 코치와 힘껏 끌어안았다. 팬들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잠실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