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외야수 민병헌은 올 시즌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타율 0.233 2홈런 23타점, 출루율 0.291, 장타율 0.291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3년 데뷔 첫 3할 타율을 친 이후 처음으로 3할 이하의 타율에 그쳤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민병헌은 1년 새 전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민병헌은 올해 KBO리그 10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3를 기록했다. 2012년(0.143) 이후 최저 타율이다. 사진=MK스포츠 DB
일시적인 부진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슬럼프의 문을 연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병헌은 1987년생이다. 만 34세다. 내년이면 35이 된다. 에이징 커브가 시작될 수 있는 시기다.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가 신경이 쓰일 수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데이터에 물었다. 민병헌의 기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데이터의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민병헌은 패스트볼에 특별한 장기가 있는 타자였다. 지난해 패스트볼 공략 타율이 0.335나 됐다. 장타율도 0.521을 기록했고 OPS 역시 0.935를 기록했다.
변화구 중에서는 커브에서만 장점을 보였다. 나머지 변화구들은 대부분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민병헌의 타격 성적에서 패스트볼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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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 시즌엔 바로 이 패스트볼 공략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패스트볼 타율이 0.284로 떨어졌다. 낙폭이 5푼이나 됐다.
변화구의 타율이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패스트볼 공략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다 보니 전체적인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잘 치던 커브까지 무너지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야 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2020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민병헌의 변화는 바로 땅볼 타구 비율의 증가이다. 2019시즌에 비해 헛스윙이 약간 감소하고, 강한 타구 비율은 1% 가량 증가했으나 땅볼 비율이 무려 9%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KBO리그 타자들의 땅볼 비율이 약 40~44%에서 형성되는 것을 볼 때, 민병헌은 2019시즌 평균 이하의 땅볼을 기록한 타자에서 2020시즌 땅볼을 평균보다 많이 기록한 타자로 변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패스트볼에 대한 타율이 떨어지고 땅볼이 늘어났다는 것은 상대 투수의 힘에 민병헌이 밀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타를 만드는 비율이 떨어지고 파워가 떨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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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은 공이 빨라질수록 대처능력이 좋아지는 타자였다. 지난 해 민병헌은 패스트볼 구속이 빨라질수록 좋은 타율을 보여줬다. 특히 150km가 넘는 공에 대해 0.429의 좋은 타율을 기록했다. KBO리그서 일반적으로 빠른 공으로 여겨지는 145km 이상의 공에 대해서도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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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 시즌 민병헌은 공이 빨라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타격을 보여줬다. 150km 이상의 공에 대한 타율은 0.154에 불과했다. 145km가 넘는 공에 대해서도 0.200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은 “전반적으로 모든 지표가 패스트볼 구속이 올라갈수록 나빠졌는데, 특히 패스트볼 구속이 146km가 넘어갈수록 땅볼 비율이 63%에서 75%까지 매우 크게 증가했다. 2020시즌 민병헌의 전체 패스트볼 상대 강한 타구 비율은 약 14.2%로 2019시즌의 약 12.5%에 비해서 오히려 상승했다. 전체 투구 상대 강한 타구 비율 또한 2020시즌 11.7%로 2019시즌 10.8%에 비해 높았다. 이를 볼 때 민병헌의 파워 자체가 감소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패스트볼 구속이 빨라질 수록 타율이 떨어지고 헛스윙과 땅볼 비율이 늘어난 것은 민병헌의 공에 대한 반응속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힘이 떨어져서라기 보다는 반응 속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민병헌은 지난 해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나머지 스트라이크 존에서는 대단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몸쪽 공을 잘 공략했기 때문에 상대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다수 타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몸쪽에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스윙에 힘이 실려 있었음을 뜻한다.
자료=스포츠 데이터 에볼루션 제공
그러나 올 시즌 민병헌은 몸쪽 공에서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 코스의 몸쪽 존 중 3할을 넘긴 것은 한 곳뿐이었다. 몸쪽 높은 존과 낮은 존에서 모두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역시 반응 속도가 그만큼 느려졌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처럼 세부 데이터는 민병헌이 전체적으로 반응 속도가 느려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숙제가 분명해 졌음을 뜻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병헌이 반응 속도를 살려내야만 부활도 가능하다. 둔감해진 반응 속도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다시 타자로서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에이징 커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떨어진 반응 속도를 끌어올려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