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마무리훈련도 다 끝난 이후였다. 경기도 이천 LG이천챔피언스파크에서 LG 새 코칭스태프가 뭉쳤다. 새 시즌 팀의 방향성을 잡는 워크숍이었다. 한 박자 늦게 LG 합류가 결정된 이종범 코치도 그날 행사에 참석했다.
워크숍 프로그램 막간에 류지현 LG 새 감독과 이종범 코치의 독대 자리가 마련됐다. 류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새 시즌 작전코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가타부타 얘기할 게 없었다. 류 감독의 제안을, 이종범 코치는 마음으로 받았다.
이종범 코치의 LG 합류 사실이 알려진 뒤로 그의 보직은 작전코치보다는 다른 자리가 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실제 구단에서는 2군 총괄을 비롯한 다른 보직을 폭넓게 검토했다.
3루 코처스 박스를 지키는 ‘작전 코치’는 감독의 브레인이자 수족 같은 자리다. 박빙의 승부처에서 좋든 싫든 가장 자주 조명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서열 문화가 팀 정서에 녹아있는 KBO리그에서 중량감 있는 선배 코치를 작전코치로 기용하는 일이 흔한 경우는 아니다. 더구나 이종범은 얼굴이 곧 명함인 야구인이다.
류 감독은 간단 명료하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가장 잘 한 선수다. 베이스러닝을 최고로 잘 한 선수다. 또 지난 1년간 일본(주니치 드래곤즈) 연수로 지도자로서 공부도 하고 오셨다. 그 모든 부분들을 우리 팀에 접목하고 싶은 건 당연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류 감독(50)이 이 코치(51)를 비롯한 선배 코치 6명과 함께 1군 코칭스태프를 구성한 건 이번 스프링캠프의 화두 중 하나였다. 사실 류 감독의 지난 코치 이력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코치 연수 뒤 2007년부터 LG 코치로 일한 류 감독은 줄 이은 ‘감독 교체사’ 속에서도 작전 또는 수비, 수석코치로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일종의 끈끈함에서 시작되는 ‘사단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걸어왔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자주 부름을 받은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던 류 감독은 코칭스태프 구성에서 나이·친분 등을 불문했다.
이제 평가는 오롯이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류지현-이종범 조합은 베이스러닝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류 감독이 신인이고, 이 코치가 선수 2년생이던 1994년 둘은 도합 135개의 도루를 했다. 해태 이종범이 83개로 독보적인 1위, LG 류지현이 51개로 2위에 올랐다.이종범 코치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설 같은 1990년대의 베이스러닝을 떠올리며 “지금은 도루를 몇 십개 하는 선수가 홈런 열 개 때리는 선수보다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현시대에 야구를 했다면, 옛날처럼 뛰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비지니스적 요소가 또다른 동력이 되는 현대 야구에서 팀 도루 수의 혁명적 변화는 그래서 기대하기 어렵다. 류 감독은 “도루 수는 선수 구성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목표를 잡고 움직일 일은 아니다”고 같은 어조로 얘기했다.
LG는 지난해 팀 도루 수가 83개로, 리그 평균(89개)에 미치지 못하며 전체 7위에 머물렀다. 도루 성공률도 68%로 리그 평균(70%)을 살짝 밑돌았다. 두 자릿수 도루 선수 또한 오지환(20개)과 홍창기(11개)뿐이었다.
류 감독의 시선은 사실 숫자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디테일’에 닿아 있다. 이를테면 적당한 리드 폭으로 상대 배터리와 내야진을 괴롭히거나 정확한 타구 판단으로 한 베이스를 손해 보지 않는 야구다. 이는 선수 시절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꾀돌이’ 류지현이 가장 잘한 야구이기도 하다.
감독이 바뀐다고 코칭스태프가 바뀐다고, 그 팀의 야구가 바로 바뀌기 어렵다는 건 우리 KBO리그 하위 팀 역사에서 입증돼 왔다. 이는 없는 선발투수와 홈런타자를 갑자기 만들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디테일’은 물리적·감각적 노력으로 최대한 바꿀 수 있는 부분이다. 2021년 LG 야구의 관전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