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비우스 윌리엄스가 2년 연속 한국에 남는다.
윌리엄스는 오프시즌에 전주 KCC와 계약했다. 지난 시즌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뛰며 국내 무대에 첫 선을 보인 그는 KGC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KCC에서 뛰기로 했다.
윌리엄스는 보통의 선수와 달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멤피스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학점이 문제였고, 결국 대학 진학이 좌절됐다.
이전에는 고교 졸업 후 NBA 진출이 가능했으나 이후 불가능해졌다. 평균 연령이 한 살 늘어나면서 윌리엄스는 대학이 아닌 다른 무대를 경험하기로 했다.
당시 유명했던 경우가 바로 브랜든 제닝스였다. 제닝스는 고교 졸업 후, NCAA에서 뛰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지난 2009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윌리엄스는 고교 졸업 후, NBA G-리그에 진출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산하인 털사 식스티식서스에서 뛰었다.
털사에서 생활을 바탕으로 그는 이후 NBA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지난 2010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8순위로 마이애미 히트의 부름을 받았다. 지명 직후 그의 지명 권리는 오클라호마시티로 트레이드됐다.
마이애미는 2021 2라운드 지명권(밀란 맥반 지명)을 받기로 하는 대신 윌리엄스의 지명 권리를 넘겼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오클라호마시티 산하 선수로 뛰게 됐다.
그러나 NBA 진출은 하지 못했다. 콜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현재의 NBA와 G-리그를 오가는 계약(투웨이딜)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윌리엄스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09-2010 시즌에 54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20분을 소화하며 8.2점(.560 .071 .634) 7.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듬해에 그는 40경기에서 평균 26.2분 동안 13.1점(.640 .000 .724) 8.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털사에서 두 시즌을 보낸 그는 대서양을 건넜다. 스페인의 호벤투트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주로 스페인에서 뛰면서 명성을 얻었다. 특유의 활동량을 자랑하며 스페인에서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호벤투트를 시작으로 세비야를 거쳐 빌바오에서도 뛰었다. 또 다른 빅리그에서 뛰었고, 오프시즌에는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에서도 뛰면서 경기 감각을 익혔다.
호벤투트에서는 34경기에서 경기당 24.6분을 뛰며 9.6점(.597 .--- .700) 7.1리바운드를 올렸다. 이에 힘입어 스페인에서도 잘 적응했다. 스페인에서 꾸준히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빌바오에서는 주춤했다. 지난 2014-2015 시즌 36경기에 나선 그는 평균 18분을 뛰는데 그쳤다. 7.3점 5.7리바운드에 머물렀다. 주로 벤치에서 나섰던 만큼, 많은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윌리엄스는 G-리그와 ACB리그(스페인)를 거치는 사이 주전급 전력으로 입지를 다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 벤치 출격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 2017-2018 시즌에는 발렌시아에서도 뛰었다. 발렌시아에서 뛴 것을 끝으로 스페인에서 선수생활을 끝냈고,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와 이스라엘 무대를 두루 거쳤다.
그 사이 NBA에서 그의 지명 권리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트레이드가 됐다.
오클라호마시티는 2014-2015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지명권 교환을 단행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이쉬 스미스(샬럿), 2015 2라운드 지명권을 묶어 뉴올리언스로 넘겼다.
뉴올리언스는 2016 2라운드 티켓을 오클라호마시티로 보냈다. 즉, 현재 윌리엄스의 지명 권리는 뉴올리언스가 보유하고 있다.
국내 무대 진출 전에는 이스라엘의 하포엘 홀론과 하포엘 텔아비브에서 뛰었다. 이스라엘 무대 첫 경기에서 23점 14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당시 홀론은 텔아비브와 시즌 첫 경기를 가졌다. 자신을 확실하게 알렸다.
그러나 시즌 중에 홀론과 결별하기로 했고, 텔아비브가 윌리엄스와 계약하기로 했다. 그는 텔아비브에서도 활약했다. 시즌 최다인 25점을 올리기도 하는 등 이스라엘에서도 존재감을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