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수원FC 단장. 사진제공 | 수원FC
“너무 떨려 도저히 못 보겠더라.”
수원FC 김호곤 단장(69)은 그 때 일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 때 일이란 11월 29일 경남FC와 맞붙은 K리그2(2부) 승격 플레이오프(PO)다. 0-1로 뒤진 후반 추가시간 수원FC는 천금같은 페널티킥을 얻었다. 성공하면 승격이고, 실패하면 탈락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점골 장면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김 단장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안병준이 차려는 순간 본부석 뒤편 계단으로 내려가 기다렸는데, 함성이 들려 ‘넣었구나’라고 안도했다”고 회상했다. 2위 수원FC는 3위 경남과 1-1로 비겼고, 리그 순위 어드밴티지로 5년 만에 승격했다.
김 단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축구의 산증인이다. 50여년 축구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고, 1980년대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활약했다. 대학축구와 프로팀,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은 물론이고 대한축구협회 전무·부회장 등 행정 분야도 두루 거쳤다.
그런 그가 지난해 초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 한번 도전에 나섰다. 바로 2부 리그 팀 단장이었다. 수원FC 단장 공모에서 뽑힌 그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1부 승격’ 의지는 강했다. “성적으로 보답 하겠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취임 2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승격을 이뤘다. 김 단장은 “이거(단장) 못 할 일이야. 차라리 감독이 낫지. 감독보다 더 피를 말린다”면서도 “축구인생에 있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자부했다.
김 단장은 승격의 공을 김도균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렸다. 특히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단장은 “난 감독 복이 있다”면서 “우린 마음이 잘 통했다. 빠른 공수전환과 강력한 압박을 하는 팀이 되자는데 의기투합했다”고 전했다. 또 “감독이 선수관리를 참 잘 했다. 친형처럼 다가가면서 성과를 냈다”며 뿌듯해했다.
올해 수원FC가 따뜻한 시선을 받은 것 중 하나가 선수 연봉의 일부를 모아 불우이웃을 도운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기수가 줄어든 가운데 김 감독이 선수들과 대화를 통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런 사회공헌은 K리그에서 수원FC가 유일하다. 김 단장은 “감독이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며 치켜세웠다.
김호곤 수원FC 단장. 사진제공 | 수원FC
김 단장은 소통에 강했다. 감독과 매일 점심을 함께 하며 팀이 나갈 방향에 대해 터놓고 얘기했다. 최종 결정은 감독이 했지만 경험 많은 단장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그는 손자 같은 선수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소통을 통해 현장과 프런트의 벽을 허물며 구단 문화도 바꿔 놓았다.
아울러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합숙소를 없앴다. 열악한 환경의 숙소를 폐지하고 출퇴근 시켰다. 대신 경기 하루 전날 호텔에 모였다. 전용 훈련장을 확보했고, 협소한 물리치료실과 체력 단련실의 환경을 개선했다. 이 모두가 승격의 디딤돌이었다.
기쁨은 잠시, 김 단장은 내년을 걱정했다. 2부와 1부 무대는 차원이 다르다. 수원FC는 2015시즌 승강PO를 통해 힘겹게 1부에 올랐지만 2016시즌 꼴찌로 강등됐다. 그만큼 생존 자체가 어렵다. 김 단장은 “1부와 2부 차이는 엄청나지만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는 지는 안다. 복안이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걸림돌은 예산이다. 대폭 상승이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예산이란 게 뻔하다. 기업 구단과는 경쟁이 안 된다. 잔류를 목표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단장은 “2016년의 악몽을 되풀이 할 순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