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박준형 기자]유희관이 눈물을 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1.20 / soul1014@osen.co.kr[OSEN=잠실, 이후광 기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현역 연장 의지가 강했던 101승 투수는 왜 돌연 은퇴를 결심한 것일까.
지난 18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유희관은 현역 시절 두산을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활약했다. 2009년 2차 6라운드 42순위로 입단해 ‘공이 느리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과 싸우며 8년 연속 10승, 통산 101승, 2015시즌 다승 토종 1위(18승) 등을 해냈다.
지난해 현역 연장 의지도 그 누구보다 강했다. 9월 19일 고척 키움전에서 감격의 100승을 달성한 그는 “과분한 기록을 세웠지만 또 이루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장호연 선배의 109승이다. 최대한 끝까지 열심히 해서 두산 베어스의 최다승을 목표로 달리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2022시즌에도 느림의 미학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 지난해 11월 보류선수 명단 포함 이후 최근 구단과 연봉 협상까지 진행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은퇴였다.
20일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희관은 “작년에 많이 부진하면서 2군에 있던 시간이 많았다. 1군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도 빠졌다”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사실 100승을 달성한 2021시즌은 부진의 연속이었다. 잦은 난타와 기복으로 1군과 2군을 자주 오갔고, 10월 10일 창원 NC전을 끝으로 1군에서 자취를 감춘 뒤 포스트시즌 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15경기 4승 7패 평균자책점 7.71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결과였다.
[OSEN=잠실,박준형 기자]유희관이 마운드를 방문한뒤 생각에 잠겨 있다. 2022.01.20 / soul1014@osen.co.kr
유희관은 “가을야구에 뛰는 후배들을 보면서 이제 자리를 물려줘도 된다는 마음이 생겼다. 후배들의 성장이 흐뭇했고, 그들이 명문 두산을 잘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2군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심을 많이 했다. 제2의 인생을 생각한 시기였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렇다면 왜 구단과 연봉을 협상한 것일까. 물론 서로의 조건을 주고받은 건 사실이지만 금액을 떠나 더 이상 공을 던질 자신이 없었다. 다시 말해 느림의 미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예감이 들었다.
유희관은 “연봉 문제 때문에 은퇴하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확신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었다. 예전의 좋은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팀 내 좋은 투수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일 때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유희관은 팬들에게 베어스를 사랑했던 투수로 기억되고 싶다. 그는 “부족한 실력에도 좋은 팀을 만나 많은 걸 이뤘다”며 “이제 더 이상 야구를 못하고 은퇴하지만 팬들께서 두산과 프로야구를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은퇴 기자회견까지 할 수 있는 행복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눈물의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