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맹목적으로 열심히만 뛰고 투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똑똑하게 전술적으로, 더 영리하게 뛰다 보면 공격적인 수비를 할 수 있고, 더 공격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한국축구가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한 단계 발전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황희찬(26·울버햄튼)의 한마디였다. 지난 6일(한국시간) 브라질과의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1-4 패배로 월드컵 여정을 마친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다. 쓰라린 패배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른 뒤 그는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 체제에서 달라진 한국축구를 설명했다.
황희찬의 이같은 설명은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성과이기도 했다. 그동안 상대보다 많이 뛰고 투혼과 투지로 맞서는 게 한국의 유일한 무기였다면, 이번 월드컵에선 세계적인 팀들과 전술적으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12년 만에 극적으로 16강으로 향한 결과와 맞물려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지난 11월 17일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 중인 김민재(왼쪽)와 이강인. /사진=뉴시스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쟁력은 특히 젊은 선수들이 보여준 '가능성'과 맞물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도 이어졌다. 첫 월드컵에 나선 '괴물 수비수' 김민재(26·나폴리)는 월드컵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줬고, 미드필더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도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황희찬 역시도 초반 부상으로 빠진 2경기 아쉬움을 포르투갈·브라질전을 통해 풀었다. 1996년생인 이들은 4년 뒤 월드컵에서 만 30세, 그야말로 '최전성기'에 월드컵을 누비게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재능을 마음껏 선보인 '막내' 이강인(21·마요르카)은 4년 후에도 겨우 25살이다. 나이는 적지만 일찌감치 유럽에서 프로 생활을 한 만큼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나이일 수 있다.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며 유럽 진출을 앞둔 조규성(24·전북현대)을 비롯해 정우영(23·프라이부르크)이나 백승호(25·전북) 등도 4년 새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4년 뒤 월드컵 출전 가능성을 직접 열어둔 '에이스' 손흥민(30·토트넘)을 비롯해 김영권(32·울산현대) 이재성(30·마인츠05) 등도 정신적 지주로 4년 뒤 월드컵을 향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ESPN이 이번 월드컵을 토대로 북중중 월드컵을 전망하면서 한국에 'B+' 점수를 준 핵심적인 요소들 역시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인된 재능들의 가능성, 그리고 손흥민 등 베테랑들의 존재였다.지난 3일 카타르 알라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전 승리로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한 뒤 기뻐하고 있는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지난 3일 카타르 알라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결승골을 합작한 뒤 포옹하고 있는 손흥민과 황희찬. /사진=대한축구협회자연스레 팬들과 축구계의 시선은 벌써부터 벤투 감독의 후임 사령탑이 누가 될 것인지에 쏠린다. 벤투 감독은 재계약 협상 결렬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는 게 확정됐다. 이제는 4년 뒤에 꾸려질 이른바 '역대급 전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고,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증명된 한국축구의 경쟁력을 이어갈 만한 '능력 있는' 사령탑이 벤투 감독의 뒤를 잇는 게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무분별한 추측성 보도'로 규정한 연봉 10억 이하의 한국인 지도자 내정설 등 일부 매체들의 보도가 이어졌던 이유, 이와 관련해 팬들이 동요했던 까닭은 그동안 협회가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2002년 한·일 대회 4강 신화, 2010년 남아공 대회 원정 첫 16강의 기세를 그다음 대회로 이어가지 못했던 전례도 같은 맥락이다.
협회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감독 선임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맡게 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향후 우리 대표팀이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타르 월드컵의 성과를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앞서 그랬듯 다시 '퇴보'로 이어질 것인가. 협회가 어떠한 방향을 정립하고, 또 어느 정도 수준의 감독을 후보군에 올리느냐에 4년 뒤 북중미 월드컵, 나아가 한국축구의 미래가 걸렸다.